퇴사 80일 근황 보고

퇴사자 생존 신고

by 작업공방 디렉터

22년 7월 5일 13년 4개월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SNS로 연결된 이들은 대략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다. 이 글은 퇴사 이후 겪은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정리 두고 자 쓰는 것이다. '10년 뒤에 이 글도 내 인생에 한 페이지가 되겠지' 하는 감상을 더해본다.

사직서를 써 본 적이 없어 구글에 검색했다



하고 싶었던 일, 직장인이라면 부담되었을 일을 바로 시작했다.

1. 새벽 수영

출처 구글링 '수영'

7월 5일 퇴사를 했지만 나는 6월 말에 새벽 수영을 등록했다. 퇴사 이후 직장 동료들이 출근할 때 집에 늘어져 퍼져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수영은 석 달째 접어들었다. 새벽 수영의 이점은 전날 밤늦게까지 일탈을 하지 않고 일찍 잠들 충분한 이유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7월은 월화수목금 주 5회 + 토요 수영, 8월은 월수금 주 3회, 9월은 월수금 주 3회 + 토요 자유수영으로 내 컨디션을 고려하고 다른 활동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절하고 있다. 잠이 더 필요하다 느낄 때는 오늘처럼 깔끔하게 빼먹고 푹 쉬기도 한다.


2. 테니스

출처 구글링 '테니스 선수'

8월에 테니스를 시작했다. 퇴사 전 직장 동료들 몇몇이 테니스를 배우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미 마음이 끌렸던 운동이다. 첫 주 두 번의 레슨을 받고 손에 물집이 잡혔는데 이후 프랑스 여행으로 3주를 빼먹었다. 껍질이 벗어진 후로는 그립이 대체로 안정을 찾았다.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레슨과 여섯 번의 개인 연습을 거듭하며 테니스 유저로 거듭나고 있다. 현재 스텝을 밟으며 치는 포핸드, 백핸드를 훈련하고 있다. 나랑 잘 맞는 운동 같다. 아마추어 대회 출전을 목표로 세우고 연습을 꾸준히 해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꿈은 크지만 아직 실외에서 체를 휘둘러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3. 저글링

팔로우하고 있는 저글링 인스타 계정

인스타에서 저글링 채널을 팔로우했다. 저글링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떤 계획도 각오도 없이 쿠팡에서 저글링 볼을 검색하고 9월 10일 구매했다. 그렇게 저글링 볼 3개로 기본 저글링 연습을 시작했다. 물론 매일 꾸준히 한 것도 아니고 생각날 때, 눈에 보일 때 거실에서 5-10분 연습한 게 다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하다. 학교에 간 아이들이 집에 가면 좋아하는 게임을 할 생각에 마음이 들뜬 아이들처럼 저글링을 할 생각을 하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집중을 많이 해야 해서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 이것만 하고 저글링 연습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활동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큰 위안이 된다.


나는 공 세 개만 있으면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 나중에 작업 공방에서 저글링 기본반을 만들어서 한 달 동안 연습해서 서로 공유하는 모임을 해도 재밌겠다.


4. 프랑스 여행

8월 22일-9월 2일(11일) 일정으로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목적은 WFOT 학술제 참여와 프랑스 자체를 보고 즐기는 것이었다. 몽쉔미쉘, 에트르타, 퐁텐블로, 모네의 정원 등 일행과 렌트한 차로 이동하며 비교적 편안하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학술제도 좋았지만 함께 한 한국의 일행들과 한국에서 나누지 못한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들도 나누고 작업치료에 대한 진지하게 나눴던 대화가 가장 좋았다. 프랑스 여행 전에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을 실제로 완성하고 온 기분이다. 이번에 연결된 인연들과 서로의 성장을 위한 의미 있는 연결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5. 법인등록(사회적 기업 공부)

소셜 밥터디 공고문과 서류심사 결과 발표

주변에서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확장해서 사업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차치하고 나는 사업 자체도 잘 모른다. 그래서 법인등록을 무료로 해준다는 업체를 통해 등기까지 완료를 했지만 사업자 등록은 미뤄둔 상태이다. 정확히 무얼 해야 잘할 수 있을지 사업의 방향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속도를 늦추더라도 배우면서 차근차근 가기로 하고 은평구에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사회적 경제 허브라는 곳에서 지원하는 스터디 공모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어 올 12월까지 100만 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받아 사회적 기업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내일 대면 심사가 남았다)


공부 모임을 하면서 먼저 사회적 기업을 준비해 본 선 경험자들의 강의도 듣고 실제 벤치마킹될 만한 기업도 찾아가 문을 두드려볼까 한다. 계속 두드리다 보면 문이 열리지 않을까?


6. 자문료 수입

프랑스에 있을 때 메일로 자문의뢰를 받음. 자문료 책정 화면.

리멤버라는 명함관리 앱 회사가 있다. 초기에는 명함 정보를 무료로 디지털화 작업을 해주면서 고객을 어마 무시하게 모집했고 지금은 기업들의 요구를 또 다른 기업과 전문가에게 연결하는 에이전스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에 있을 때 메일로 연락이 왔는데 이전 직장 이력을 보고 내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입국 후 코로나 양성으로 격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비대면으로 2시간 자문을 해주고 60만 원을 받았다. 대면으로 했더라면 90만으로 자문료가 책정되어 있었다.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자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물론 퇴사를 하지 않았어도 프랑스에 갈 수 있고 위에 말한 것들도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더라면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에 붙들려 있어야 하는 직장인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퇴사를 했고 직장인이라는 딱지 대신 개인사업가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들쑥날쑥한 사업소득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현실 문제도 있지만 직장 밖에서 만나는 다양한 도전을 마주하는 게 싫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과 배움의 연속일 테지만 나는 이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즐길 것이다.


다음 퇴사 생존 보고는 100일 차 즈음에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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