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느끼고 사유하기
일의 특성상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고 휴대폰을 자주 확인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만이 병'에 걸린 것이 의심 되었다. 휴대폰으로 습관적으로 사이트 관리페이지를 눌러본다든지, 인스타 새로운 알림을 눌러 확인한다. 말 그대로 산만하다. 최근 이런 자각이 일었고 뭔가 처방이 필요함을 직감했다. 해서 세 가지 셀프 처방을 내렸다.
첫째,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20년도 육아휴직 때였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 선생님의 책 '이제 몸을 챙깁니다'를 읽고서 계획에 없던 요가를 시작했다. 할 때마다 누적일을 기록했는데 300일 넘기며 꽤나 오래 지속했다. 워낙 몸을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운동을 주로 해왔던 나에게 천천히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코끝에 호흡에 집중하라는 요가는 낯설었지만 말 그대로 '몸을 느낄 수 있는' 최선의 활동이었다.
타이밍이란 게 있는 걸까. 1년 넘게 해 오던 수영장이 내부 공사일정으로 강제 휴관을 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출근과 등교를 한 후 혼자 애정하는 '에일린 선생님'을 유튜브 화면과 함께 소환했다. 그렇게 언 1년 반 만에 요가를 통해 나의 호흡을 느끼고 굳어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좋은 걸 왜 이렇게 오래 쉬었나...' 생각이 들었다.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둘째, 걸었다. 산만한 정신 상태와 더불어 몸도 좀 쉬라는 아우성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고 편두통도 가끔 찾아온다. 오전에 역시나 컴퓨터를 두드리면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점심을 먹고 아내가 퇴근하는 시간 무작정 밖으로 나가 우산을 쓰고 걸었다.
우산에 튕겨 들리는 빗소리와 흙을 비비며 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5km 정도를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과하지 않게 따뜻해진 몸과 가벼운 근육통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셋째, 생각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책을 골랐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열두 발자국' 두 책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워낙 유명한 분들이고 각 분야의 고수로서 또한 사유하는 분들 책이기 때문에 지금 산만한 병에 걸린 나에게 딱 적절한 처방이라고 생각했다.
[열두 발자국] 중 첫 번째 발자국 '선택하는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시작부터 끌리는 제목이다. 현재 치매어르신 돌봄 기관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서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가고 있다. 때문에 뇌과학적으로 '선택'의 의미를 더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가지면서 읽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글에서 소개하겠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암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예외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죽음'을 중심에 두고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이들에게 '삶'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이다. 오늘 읽은 부분 한 꼭지를 가져와봤다.
"인간은 암 앞에서 결국 죽게 된다네. 이길 수 없어. 다만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말을 하겠다는 거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나가면 그게 암을 이기는 거 아니겠나. 방사는 치료받고 머리털 빠지며 이삼 년 더 산다 해도 정신이 다 헤쳐지면 무슨 소용인가. 그 뒤에 더 산 건 '그냥' 산 거야. 죽음을 피해 산 거지. 세 사람 중 한 명은 걸려서 죽는다는 그 위력적인 암 앞에서 '누군가는 저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그 모습을 남은 시간 동안 보여주려 하네"
이어령 선생님의 삶의 결기가 느껴지는 말이다. 마지막 인터뷰에 담길 내용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천히 읽으며 이어령 선생님의 조언을 곱씹으며 '죽음' 앞에서 허무가 아닌 '의미'의 삶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발견대로 살아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