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업공방 디렉터 Oct 24. 2019

가족 중 한 명이 뇌졸중 진단을 받으면 생기는 일 1편

작업치료사의 목격담

최근에 내가 담당했던 환자분(가명/재활님)의 이야기다. 사실 간혹 겪는 일이지만 이 경험이 제공하는 공유할 만한 메시지가 있어 글을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활님과의 초기 치료

나를 만났을 때 재활님은 뇌졸중 진단을 받은 지 2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다. 초기 상담을 보호자와 함께 진행하고 작업치료 목표는 샤워하기, (걸어서) 산책하기, 탁구, 운전으로 비교적 명확한 목표 과제가 상담 마친 후 정리되었다. 뿐만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치료사 세 사람이 협력관계가 초기 상담 때 잘 만들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은 10년 동안 해오던 프로세스대로 목표 과제를 관찰 분석하고 세부 목표를 세운 다음 단계적으로 치료를 해 나갔다.


환자 보호자와 의사소통도 잘 되고 치료의 목표 달성도 생각보다 더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초기 목표 달성 후 추가로 요구되거나 필요할 과제들을 예상해보며 더 큰 치료적인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리게 되었다.


갑자기 퇴원이라니!!!!

그런데!!!

한글날 휴일을 앞둔 전 날 업무를 마치려는 시간즘 원무과로부터 재활님이 퇴원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것도 딱 일주일 뒤에...


당황한 나는 퇴근 준비를 한 후 병실로 올라갔다. 마침 복도에서 보호자와 마주쳤다.

"어머님, 어떻게 되신 거예요? 퇴원이라뇨!"

(아차, 하는 표정;;) "아,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뭐.. 저한테 죄송할 건 아닌데... 재활님은 방에 계세요?"

(병실로 이동하면서...) "퇴근길에 메시지 보고 좀 당황스러워서 얘기 좀 들어보려고 올라왔습니다."

(재활님은 뻘쭘하게 웃으며 대화 지켜보고 있음) "오늘 오후에 00 병원에서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와서..."

"아, 거기가 집이랑 가깝긴 하죠..."

"네 맞아요... 아 그런데 정말 죄송해요. 제가 선생님 딱 올라오시는 것 보고 아차 했습니다."

"그런데 재활님은 아셨어요?"

"저도 치료 마치고 병실 올라오니까 말을 하더라고요."

(보호자 옆에서 입을 막으며 뻘쭘하게 지켜 봄)"괜찮으세요? 옮기는 거?"

"뭐 제가 힘이 있나요..? 아내가 병원 생활하면서 몸도 안 좋고 하니까 하자는 대로 따라야지요..."


"보통 이렇게 통보를 받으면 치료사 입장에서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냥 보낼 드릴 수밖에 없는데요. 아쉬운 점이 뭐냐면 병원을 옮기는 부분에 대해서 치료의 주 대상자인 재활님과 상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는 거예요. "


"치료사는 뭐....(쩝;;)"

"맞아요.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고... 또 선생님한테도 너무 죄송하네요. 잘해주셨는데..."

(허허허 헛웃음 농담 반 진담 반) "그럼 내일 쉬시니까 다시 한번 상의해보시고 결정하셔요~~"

(얼굴 화끈거리듯)"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쉬시고 모레 뵙겠습니다."


참 유별난 치료사

이렇게 돌아섰는데 찜찜한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다. 잠들기 전에도 일어나서도....

결국 한글날 외부로 나갈 일정을 앞두고 보호자에게 아래와 같이 문자를 보냈다.

보호자에게 보낸 문자


애프터서비스

결론만 말하자면 재활님과는 원무팀에서 공지된 날짜 하루 뒤에 퇴원을 했다. 다행히 그 사이 초기에 세웠던 운전까지 주치의 허락하에 내 범퍼카로 경험해 본 후 자신감 가득 채워서 퇴원했다. 그리고 보호자와 개인적인 상담 시간을 갖고 퇴원 결정의 뒷얘기와 또 재활님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말씀드리면서 혹여 이 결정으로 인해 남아있을 찜찜함을 제거하고 마음을 안심시켜드렸다.


재활님의 사례를 요약

가족 중에 한 사람이 특히 가장이라도 아프고 나면 의사결정권을 대부분 빼앗겨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재활님의 경우도 아프기 전에는 재활님이 결정하면 아내는 믿고 따라가는 아내의 키다리 아저씨 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프고 나서는 모든 결정권을 아내가 가져가면서 입는 것, 먹는 것, 치료의 내용과 병원을 옮기는 것까지 모든 의사결정을 아내가 주도했다고 한다. 그러니 몸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겠다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뇌졸중 진단을 받은 가족의 건강상태가 어떠함에 따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의사결정의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초기에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을 때 시작했던 일방적인 의사결정은 건강이 호전 되었을 때에도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을 본다.

의사결정을 하는데 상대를 참여시키는 태도에는 당사자의 현재 건강상태가 어떠함이 기준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함에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아프기 때문에 보호받고 치료받고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역할이 주를 이루는 환자로 보느냐 아니면 환자복을 입긴 했지만 여전히 나의 키다리 아저씨이고 자녀들의 아버지이고 장인 장모님의 듬직한 사위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연히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의사결정에 참여해본 적이 있나요?

내가 어떤 결정에 의견을 보태거나 동의해서 결정이 되고 나면 어떤가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거기에는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고민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참여한 만큼 그 일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재활에 종사하는 치료사의 어떠함

재활은 다시 나의 생활로 돌아가는 훈련이고 연습이다. 만약 내가 치료를 몇 개월 했는데 내 치료를 그저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패턴을 만들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자주 돌아보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치료를 제공했더라도 클라이언트가 치료 자체에 의존하게 되었거나 자기가 결정하고 주도하는 삶의 영역이 (비록 병원이더라도) 좁아졌다면 결코 좋은 작업치료를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작업은 확장되는 성질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 고유의 삶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가 치료에 동기가 없어서 힘들다는 말은 많이 듣는다." 당장 작업적인 치료의 모양이 갖춰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조금 불안하고 조금 답답하더라도 기다려주면서 자신이 받고 있는 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치료의 내용을 결정하고 조율하는데 참여하도록 치료사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재활 과정을 함께 하는 가족들의 어떠함

가족들도 병원을 결정하는 문제와 같이 중요한 결정뿐 아니라 병실 생활에서 먹는 것, 입는 것, 도움을 주는 정도에 있어서도 당자사에게 귀를 기울여 함께해 나간다는 느낌이 들도록 대화에 포함시켜주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든 일에 기초가 중요하듯 이러한 생각과 관점은 재활서비스라는 어떤 활동을 담아내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고 믿는다.


'재활=운동'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우리 사회




매거진의 이전글 꿈꾸는 OT들의 독서모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