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통해 얻는 인사이트
페이스북 포스팅에 댓글이 달렸다. 경험수집잡화점 대표 피터김이 커피 한잔을 제안해주셨다. 나는 이 기회를 놓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 금요일로 11시 홍대로 약속을 확정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로 학교 못 가고 집에 아들 녀석을 혼자 두고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아내의 코멘트를 수용하고 피터 김 점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아들과 함께 약속 장소에 나갔다. 결과적으로 오늘은 나에게 특별한 하루로 기록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피터와 인연은 페이스북 친구의 친구로 시작된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페친 1차 친구도 오프라인에서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페친이다. 그렇게 피터와 경수점과 삶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멀리서 관망만 해왔다. 그러다 언제인지 경수점 15분 독서모임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더 가까워지거나 할 계기가 없어 이 정도 선을 유지하며 또 시간을 한참 지났다.
그러면서도 경수점 모임 이야기와 피터의 삶의 이야기를 피터의 페이스북 게시글과 경수점에서 발송하는 뉴스레터 등을 통해 계속 접하고 있었다. 육아휴직을 계기로 경수점의 온/오프 모임에 좀 더 참여했고 7월에 처음 오프모임에서 얼굴을 봤다. 육아휴직자의 경력 단절을 막아내기 위해 자기 계발 차원에서 경수점 모임을 참여한 것인데 점점 경수점과 피터를 알게 될수록 끌리는 무엇이 있었다. 피터이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졌고 때문에 언제부턴가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 자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9월부터 경수점 GK로 합류하면서 좀 더 자주 온라인에서 피터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그리고 오늘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피터가 조언해 준 인생 이야기는 모두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였다.
여운으로 남겨진 이야기를 언급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자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먼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 때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지 못한 상태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찾고 있다면 인생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많은 이들이 이런 함정에 빠져 살고 있다. 그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급급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자 하는가?'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방법과 기능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날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방향이 정해지지 않고서 여러 스펙들로 날아오르게 한들 하늘에서 방황만 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2
나를 먼저 돌보고 찾는 것이 우선이다. 위 1번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도 많은 사람들이 놓이고 있는 부분이다. 나의 역할과 책임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나고 내 역할과 책임은 그 내 역할과 책임이다. 분리될 수 없지만 구분할 수 있는 객관화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피터는 조언한다. "내 역할과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을 통해 1번에서의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라고 말이다. 이미 여러 역할과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에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이 시간은 필요하고 나뿐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똑같이 필요하다. 이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가자 중요한 타인 가족과 자주 대화해야 한다. 결국엔 각자의 역할을 벗어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서로가 서로에게 제공해야 한다. 나만의 시간, 아내만의 시간을 갖는 일을 시스템화해야 한다.
3
가정에서 이런 소통을 통해 안정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정에서 내 역할과 내 존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화하고 불편하다면 밖에서 최상의 나로 살아내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잘하고 안에서 못하는 것은 결국 못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피터는 '엉킨 매듭을 푸는 것'으로 비유해 말했다. 매듭은 밖에서부터 푸는 게 아니라 안에서 나 자신에서부터 풀어야 하고 나와 가장 맞닿아 있는 관계인 가정에서부터 풀어야 한다고 했다. 백퍼 공감되는 말이다. 사실 내가 문제라고 이해하는 대부분의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는 통찰이 이런 결론에 이르게 했다. 내 안에서부터 자유롭고 가정에서부터 자유롭고 조화로워야 외부로부터 자유롭고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
10년 동안 사람을 만나는 일을 했다. 질병으로 자신이 의미 있게 해왔던 일이 중단된 이들에게 아주 사소한 일상을 시작하게 함으로써 장애라는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발견하고 일상에서의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왔다. 나는 이 10년의 경험이 어떻게 일반화될 수 있을지 고민했고 피터에게 말했다.
5
피터가 나에게 조언한 미래의 전문직은 라이프코칭이었다. 곧 잉여 시간이 많아 힘들어하는 이들을 돕는 일이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고 이 분야의 전문가를 사회는 필요로 할 것인데(책-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진 않아) 10년의 작업치료 경험이 라이프코칭의 삶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돌아와서 이 말을 곱씹어 보니 라이프코칭 전문가가 하는 일이나 내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치료라는 전문성으로 보였던 원리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개인이 가진 제한보다는 가능성을 보는데서 시작한다는 것, 정형화된 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가이드하고 행동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6
오늘 피터 김과의 만남은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다.
1) 양보다 질적인 삶을 살아야겠다. 2) 속도보다 방향이 맞는지 늘 점검하면 살아야겠다. 3) 이런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스스로에게 주어야겠다. 4) 피터와 가까이 있어야겠다.
5개월 뒤 작업치료사 본업으로 복귀하겠지만 이 일이 이 나에게 남겨준 경험을 일반화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 다운' 자기만의 삶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렇기 위해 나부터 '나 다운' 삶을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