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의 엄마이자 너의 외할머니 이야기.
알콩아, 너의 외할머니는 싱글맘이었단다.
남편 없이 엄마를 혼자서 키웠어.
요즘에는 싱글맘, 한부모 가족, 비혼모라는 단어가 생겼지만
그 당시는 오직 '미혼모' '사생아'란 단어 밖에 존재하지 않아서 너의 외할머니와 엄마는 설 자리가 별로 없었어. 미혼모와 사생아란 무언지 정상 궤도에 서지 못한 사람들처럼 느껴졌거든.
게다가 외할머니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줄 기회가 적었고,
그 당시 어른들은 사랑을 표현하길 부끄러워했고,
특히 외할머니와 엄마 사이에는 비밀이 존재해서 소통하기 어려웠어.
엄마는 그래서 좀 외로웠어.
특히 아빠의 부재에 대해 툭 까놓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홀로 고립되고 점 차 엄마도 어렵고 힘든 일을 혼자 삭히는 버릇이 생겼지.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큰 부채가 있다고 느꼈던 거 같아.
엄마는 외할머니가 엄마를 낳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고 불행한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있잖아. 그게 아니래. 외할머니는 엄마 때문에 더 행복했대.
엄마는 늘 혼자서 날 키우느라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했는데
외할머니는 오히려 엄마가 있어서 그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었대.
밖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서 내 얼굴만 봐도 그 힘듦이 싹 잊혔다더라.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나도 아이를 가져보니까 정말 알겠어.
정말 생명은 너무 위대해.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참 속으로 많이 삭혔다.
엄마는 가끔 그런 바람을 해.
네 할머니가 좀 더 예민하게 엄마의 마음에 관심 갖고 반응해 주고 소통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외할머니는 본인이 너무 좋아서 엄마가 외로웠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네?
나를 왜 낳았냐고 물으니 '태몽이 좋아서 낳았다'고 하니 말 다했지.
하긴 그렇게 해맑으니 혼자서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하는 거겠지. 그지?
근데 있잖아. 외할머니도 본인이 줄 수 있는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했어.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리고 외할머니도 엄마가 처음이잖아.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어.
누구에게도 인생은 처음이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배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에 대한 가치는 부여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부여하는 거라고.
‘근데 네 할머니 정말 참 곱고 예쁘다.
이렇게 고운 젊은 할머니를 보자니
할머니의 존재 자체도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어!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 없다.
조금 실수하고 잘 몰랐어도
누구에게나 인생은 처음이니까’
외할머니가 어느 날 너의 외할아버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어. 엄마에게는 아빠 되는 사람이지.
외할머니와 데이트를 하는 사진이었는데
엄마의 시선은 평생 궁금했던 외할아버지가 아닌 그토록 아름다운 외할머니의 모습에 꽂히더라.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빠의 얼굴보다는 오로지 외할머니만 보이더라.
‘외할머니는 본인의 아름다운 청춘 대신 엄마를 선택한 거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 엄청 슬펐네.
그러고 보니 결혼을 한 지금까지 엄마의 냉장고를 채우는 수많은 반찬.
그것도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준 사랑이구나 싶어.
엄마도 결혼을 해보니 일과 가사와 양육을 함께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더라.
외할머니는 그걸 나 때문에 해냈구나 싶어 뒤늦게 울컥함이 밀려왔어.
아빠를 찾고 싶었는데 엄마를 찾은 느낌이었어.
엄마는 아주 다행히도 외할머니에게 정말 깊은 사랑을 받았어.
나의 존귀함을 증명받는 느낌처럼 소중하고 고맙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외할머니와 외 할아버지의 사랑과 헤어짐도 지극히 평범하고 납득 가능한 일이더라고.
‘연애로 만나 서로 4년을 사랑했지만 당시 고졸 출신을 반대했던 시댁. 남자는 회사 생활을 하며 관계가 점점 멀어졌고, 여자는 헤어진 뒤에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홀로 서울로 오게 된 이야기.’
엄마 나이쯤 되면 흔하고 흔한 이야기지.
다행히도 엄마는 생각했던 것보단 납득 가능한 좋은(?) 과거와 이유를 지녔지만 만약 엄마에게 슬픈 과거가 있었다면 엄마는 엄마의 모든 삶이 부정당하고 슬퍼해야 할까?
아니 가치를 정하는 건 언제나 자신이고 선택이야.
엄마는 지금의 존재 자체를 감사해.
내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것만큼 너의 존재도 감사하고 소중한 거야.
언제나 과거가, 타인이, 가족이 너의 가치를 정해주는 건 아니란다.
설사 이유 없는 사랑을 받지 않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삶을 긍정하는 것이 내 가치인 것!
내 인생을, 내 삶을 내가 존중함으로..
‘누군가 아이가 내게 무슨 의미냐 묻는다면
그냥 언젠가 내 곁을 떠난다 해도
그 어떤 보상이 없어도
설사 내게 비난이 돌아온다 하여도
온전히 널 사랑하고 지지하는 것
때론 정말 위기의 순간 너와 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무 이유 없이
기꺼이
널 선택하는 것.
그렇게 내가 태어났고,
내가 존귀한 만큼 너를 위해 나를 내어주는 것.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
사랑하는 데에 내 것을 내어주는 데에 이유가 없는 것.
너는 바로 그것이다.
나 또한 그런 이유 없는 사랑이 받았기에
더 아낌없이 내어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