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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 Jan 17. 2020

요가 반다와 아사나에 대하여

요가 이야기

우디아나 반다, 잘란다라반다, 물라반다. ‘반다가 되어야 해요.' '반다를 사용하세요.' 요가 수업에 참여하면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그때 나는 반다가 무엇인지? 왜 반다를 사용해야 하는지? 그 개념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그저 반다를 하라고 하니 대략 이 위치인가 하는 곳에 힘을 주었고, 선생님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따라 할 뿐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반다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냐고 물어봤지만 선생님은 ‘비슷하다’ 고 대답하곤 웃으셨다. 그때 나는 아마도 아사나를 더 잘하고 싶어서 반다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의 수련이 이루어지는 곳


요가 학원은 굉장히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한 수업에 들어온다. 요가를 몇 개월 혹은 몇 년 이상 수련한 사람과 이제 막 새로 요가를 시작하는 사람 모두 한 수업을 들으니, 요가 강사가 그 수준을 딱 평균으로 맞춰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요가의 개념이나 철학, 혹은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반다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기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더 깊은 공부를 하지 않고 그대로 학원에만 계속 다녔더라면 아마도 이미 진즉에 요가와는 이별했을 것이다.


정확하고 바르게 알고 난 후 나의 수련의 깊이와 요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요가를 정확하게 잘 가르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반다를 말하기 전에 요가 아사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허리를 있는 힘껏 뒤로 젖혀 후굴을 완성하고, 다리를 벌리고 찢어 하누만 자세를 만든다. 수많은 시행착오, 고통과 인내를 동반한 이것을 왜 하는 것일까? 허리에 도움이 되는 자세라서? 다리가 길어지고 다이어트가 되라고? 아니면 아름다운 아사나 완성의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요가 아사나를 통해서 오는 혈액 순환, 자세 교정, 근력 향상, 지구력 향상 등 그 이점들은 말로 다 할 수없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아사나를 하는 것을 요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사나가 요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외부로 향하는 우리의 의식을 보다 내면으로, 나에게로 가져와야 하는 요가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많은 요가 학원과 강사들은 아사나를 중점에 두고 가르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아마도 그래야 운동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요가 센터로 유입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사나만을 중요시하는 요가 학원은 절대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딱 3개월만 체험해보고 끝낼게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그렇게 체험하고 요가가 안 맞다고 하는 사람도 안타깝긴 하다.)

                                      

아사나를 잘하면 요가를 잘하는 사람? 아니다. 요가를 한 번도 배워보지 않아도 아사나를 잘하는 사람은 많다. 타고나게 유연한 사람 혹은 어렸을 때부터 발레나 무용을 전공했던 사람들이 그렇다. 이 사람들은 반다에 대해서 반다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를 수 있다. 그래도 아사나를 잘한다. 나 역시 타고나길 보다 유연한 사람으로서 반다를 사용하지 않고 제대로 몰랐을 때도 요가 아사나들을 곧 잘 따라 했었다. 잘 버티고 참고 견디면서 아사나를 해냈고, 더 멋진 아사나 자세들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사나를 쫓다 보니 통증과 부상은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답답했다.


요가 자세들을 하면 왜 몸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아플까? 학원에 가면 선생님에게 내가 하는 얘기는 늘 똑같았다. '여기가 아파요' '이 동작이 잘 안돼요' 그러면 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도 항상 비슷했다. '요가를 하다 보면 아픈 부위가 더 드러나게 되어있다' '계속하다 보면 잘 된다' 정성껏 대답해 주신 거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요가를 포기하라고 해준 대답 같다. 처음 화두에 말했듯이 '반다를 해야 이 자세가 잘 된다'라고 말한 선생님도 있었다.


그럼 반다가 뭐지? 어떻게 하는 거지? 아사나에 어떻게 적용시키는 거지? 의문은 끝이 없었다. 선생님을 붙잡고 늘어질 수가 없으니 스스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찾아봤다. 뭔가 가르쳐 줄듯 말 듯 끝나버리는 블로그 광고 글, 심오하고 멋있긴 한데 너무 어려운 책의 내용들을 접하고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그렇게 헤매고 해메이다 결국 지금의 진짜 구루(*guru)를 만나게 되었다. 개인 레슨을 받으며 호흡부터 제대로 수련하며 그 과정 속에 반다를 만났고 알아내고야 말았다.

*구루(guru) 요가에서 일컫는 스승으로 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교육자를 지칭한다.


우리가 반다를 잘 사용하고 그 감각을 알아야 더 깊은 난이도의 아사나들을 부상 없이 잘하게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사나를 잘하기 위해 반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반다를 하기 위해 아사나를 하는 것이다. 아사나가 반다를 돕는 격이다. 그렇다면 요가에서 반다는 왜 하는 것일까? 요가의 반다는 쿤달리니 각성을 위해 하는 것이다.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요가의 목적은 쿤달리니 상승으로 인한 의식의 확장과 상승이다. 더불어 그로 인해 변화되는 신체 근육의 이완이나 생리적 기능의 향상과 집중력, 사고력의 범주로 제시되는 명상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파탄잘리 요가 8단계에서 아사나는 3번째, 그다음 네 번째는 호흡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째  끝은 사마디 Samadhi : 초월 단계다.

                                    

우리가 요가를 수련하면서 혹은 요가를 가르치면서 절대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 아닌가 싶다. 주객전도 현상. 목적과 핵심 그 본질을 잃어버리면 과정은 의미가 없어진다. 아사나를 쫒는 요가가 아닌 아사나를 통한 요가를 해야 한다. 아사나를 위한 반다가 아닌 아사나를 통한 반다가 이루어져야 한다.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요가 강사'가 되고 싶어서 지속되는 나의 수련과 공부, 생각들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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