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혼자 가는 제주도
과거로 돌아가야만 앞서 갈 수 있는 상황 like a sling shot
스윙스 <스윙스 2007> 중에서
내가 살고 있는 곳엔 반려동물 동반 가능한 식당이나 카페가 거의 없다.
가능한 곳도 실내 입장은 불가하며 테라스에서만 동반이 가능한데, 그마저도 대부분 도로변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개조카 김믕을 데리고 어딘가에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제주도는 비교적 반려동물 동반 가능한 곳이 많은데, 이렇다 보니 김믕과 함께하는 제주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되었다. 물론 믕이가 교통수단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한다. (개조카와 함께하는 엉망진창 일상 #3 버킷 리스트 편 참고)
견주 마음은 다 같다고 과거에 비해 제주도에 방문하는 댕댕이 여행객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공항 입구에서부터 주인 손 잡고 탑승할 비행기를 기다리는 댕댕이들이 드물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했던 곳들도 대부분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했는데 '문쏘' 도 그중 하나였다.
둘째 날 행선지로 문쏘를 택한 이유도 결국엔 반려동물 동반 가능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여행지에서의 로망.
옆 테이블 혹은 건너 테이블 손님과 아찔한 눈 마주침, 오고 가는 시선.
여행지에서의 두근거리는 만남에 대한 로망이 있어 동물 동반 가능 식당인지 아닌지는 나에게 꽤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이러한 만남은 산책하는 댕댕이들에게도 해당되는데, 간혹 견주분들 중에 이러한 눈 마주침을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 웬만하면 적극적인 눈 마주침은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오후 2시 25분.
점심시간을 피해 가서 그런지 가게 안은 한산 했다.
다행인가 싶었는데 웬걸.
강아지 손님이 없네.
매장 안쪽까지 살펴보니 한 테이블 정도.
주인의 식사를 얌전히 구경하는 강아지 친구가 있어 같은 방으로 배정받길 내심 기대했지만 내 자리는 그들과는 멀리 떨어진 다른 방이었다.
나는 강아지랑 한 공간에서 밥 먹어도 상관없는데...
문쏘의 주력상품은 매콤한 카레 위에 황게가 큼직하게 올라가 있는 '황게 카레'인데, 제주도에 와서 무슨 카레를 먹냐 싶겠지만 워낙 게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도 게 한 마리는 먹어줘야 제주도에 온 기분이 나기 때문에 이 메뉴를 선택했다.
잘 알려진 대로 황게는 다른 게들처럼 살점이 가득 차있지는 않다. 그래서 황게를 먹는 음식보다는 고명 정도로 생각하고 먹었는데, 일행이 있었다면 다양한 메뉴를 맛보았을 텐데 그런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창 밖을 보며 먹는 점심.
빡빡한 일정에 쫓기는 여행이 아닌 한번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해 보고 잠깐 멈춰 서 보기도 하는 여유로운 여행이 있다.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놀러 온 것인데 오히려 평소보다 더 빡빡한 일정 때문에 짜증만 잔뜩인 여행을 얼마나 보내왔던가.
이번 여행을 계기로 나의 여행 관도 조금은 바뀌게 된 것 같다.
문쏘에서 여유로웠던 휴식은 사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오늘은 전날 새치기를 했던 그곳에 재방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이야기)
전 날 우무 푸딩을 방문했던 나는, 웨이팅 줄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매장 안으로 들어가 새치기 주문을 하는 만행을 벌이고야 말았는데...
그랬다 12회는 다른 사람에게 새치기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아닌, 본인이 다른 사람을 새치기했다는 고해의 내용이다.
전 날 새치기를 하고도 뻔뻔하게 이곳에 재방문하려는 이유는 난 지금 어디여 #15 온기가 필요해에 나와있듯 이들의 제품이 제주 해녀들이 채집하는 '우뭇가사리'로 푸딩을 만든다는 이유도 있지만, 환경오염을 줄이고 제주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더불어 사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경영철학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특정 향유층만이 창작자의 제작 철학을 따져 구매했다면 오늘날은 대다수 소비자의 전반적인 의식 향상으로 인해 창작자가 당대의 시대정신에 얼마만큼의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소비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트렌드로 변화하게 된 것같다.
우무 푸딩은 좋은 제품을 매일 똑같은 수준으로 유지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한다는 원칙을 3년째 고수하고 있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직접 금형을 제작하여 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별도의 용기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돈쭐을 내주기 위해 '우무 UMU 푸딩'으로 향했다.
전날 새치기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 있어 도착하자마자 웨이팅 줄이 어디인지부터 체크했다.
아! 있다.
다행히 웨이팅 줄이 길었다. 오늘은 본의 아니게 새치기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정정당당하게 줄을 서니 마음이 한 결 여유로워졌다.
잠깐의 대기 끝에 들어가게 된 매장 안.
어제 먹었던 것은 구좌 당근 푸딩과 커스터드푸딩.
오늘의 선택은 말차, 초코, 얼그레이, 커스터드푸딩이다.
전날 먹었던 커스터드푸딩이 생각나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었다.
우무의 말차 푸딩은 제주도 성읍에서 난 말차이며, 커스터드푸딩은 제주의 무항생제 계란을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우무에서는 우도 땅콩 푸딩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내가 방문한 본점이 아닌 제주 원도심에 있는 2호점에서만 판다고 하여 아쉽게도 맛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푸딩을 포장해 주는 끈!
우무는 직접 금형 제작할 만큼 포장 용기에 진심인 편인데, 포장 끈마저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신경을 썼다고 한다. 메뉴에 따라 깔맞춤 한 색색깔의 포장끈을 머리 묶을 때 사용해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일별로 영수증을 정리할 때나 폴라로이드 필름을 날짜별로 정리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지점마다 메뉴가 약간 다르다 보니, 구좌 당근 푸딩 주황색 포장끈은 본점만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우무는 다른 업체와 달리 한 번에 한 팀만 입장 가능한데, 코로나 방역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님 한 분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성스럽게 응대하고자 하는 그들의 센스가 엿보이는 영업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물건을 고르고 여유롭게 기다리는데, 직원분께서 몇 개의 수저를 넣어드리면 될까요. 라 질문하셨다.
어제 방문했을 때 받았던 수저 하나가 남았기에 굳이 받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안 주셔도 돼요.
어, 정말 괜찮으세요?
어제 왔을 때 받은 수저가 아직 남아있어서.
직원분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제도 오셨었나요? ㅎㅎ
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감사 표현에 갑자기 쑥스러워졌다.
에이, 뭘요~ 히.
저야말로.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원분과 인사를 나누고 가게 문을 나섰다.
전날과는 달리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