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혼자 가는 제주도
하늘에 계신 할매 보고 있습니까
조금 늦었습니다
저 뱀들을 물리치느라
쇼미 더 머니 9 <VVS> 중에서
나는 지금 오차원의 공간에 서있다.
인생은 선택과 후회의 연속.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나는 웬만하면 내가 한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는 편이다.
당시엔 그 선택이 최선이었으므로.
우무 UMU 푸딩에서의 즐거운 만남 후,
전날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해 아쉬웠던 '가르송티미드'로 몸을 돌렸다.
두 상점의 거리는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주인장은 '가르송티미드' 라는 브랜드를 구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핸드폰을 아이폰으로 바꾸게 되면서 다양한 케이스를 써봤지만 자신의 마음에 맞는 케이스를 찾지 못했고 결국 디자인과 제작을 직접 하게 되었다는 것.
그렇게 시작된 그의 브랜드. 현재는 오프라인 매장은 제주도 한림읍에만 있어 벼르고 별러 들렀던 곳이었다. 어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구경을 조금밖에 하지 않았으니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된 쇼핑을 해 볼 작정이었다.
'아...앙대... 그만둬.'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철컥.
어차피 내일도 매장에 올 건데 굳이 지금 다 살 필요가 있겠어?
아...앙대... 그만둬.
나는 지금 오차원의 공간에 서있다.
하지만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다.
철컥.
??? 닫혔다?
점심시간인가 싶어 시계를 봤다.
현재 시간 오후 3시 18분. 점심시간은 아까 지났다.
그때 문에 붙은 안내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금일 ~~ 한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쉽니다. 죄송합니다.
"아아아아앙대!!!!!"
키키키킼ㅋㅋㅋㅋ.
나의 절규에 옆에 계신 여자분들이 웃으셨다.
나보다 먼저 절망의 감정을 경험하신 두 분이었다.
"어휴, 이것만 사면 되는데. 왜 하필 오늘 닫냐고."
"보이지 않는데라도 있던가. 이 코 앞에 있는걸 못 가져가네."
내 마음 같은 아쉬운 소리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왔다.
어제까지 열려있던 가게가 오늘 갑자기 휴무일 줄이야.
다 큰 으른 셋이 쪼르르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아쉬운 입맛만 다셔댔다.
* 제주도 언어로 '내일'이란, 함부로 기약해서는 안 되는 날을 의미한다.
꼬는 없지만 꼬무룩하고야 말았다.
터덜터덜.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늘엔 여행객을 실은 비행기가 수도 없이 오고 갔다. 나는 방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중.
한 번 걸어본 길이었지만 아까보다는 힘들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아까는 왜 그리 쉬웠는지.
날은 춥고, 속은 허전하고, 장시간 서서 이동하다 보니 다리는 아프고 괜히 왔나 하는 배부른 생각만 계속.
사고 싶었던 것을 사지 못했다고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다.
방금 왔던 길에 달라진 것은 그저 내 마음뿐이었다.
줄인다고 줄였건만,
어느새 많아진 짐에 이것을 모두 캐리어에 넣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지로 보낼 짐을 선별해 숙소 근처의 협재 우체국으로 향했다.
내가 작성한 송장은 두장이다.
소포의 수신인은 두 명.
하나는 미래의 나 자신,
그리고 하나는
나의 할머니.
나는 다시 오차원의 공간에 서 있다.
인생은 선택과 후회의 연속.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나는 웬만하면 내가 한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는 편이다.
당시엔 그 선택이 최선이었으므로.
그런데도 단 한순간.
단 한순간만은 돌이키고 싶다.
바로 우리 할머니.
친할머니가 살아계셨던 그 순간으로 말이다.
할머니는 평생을 시골에서 사셨던 여느 시골 할머니 같은 그런 분이셨다.
할머니는 그 당시에도 너무 일렀던 60대 초반에 돌아가셨다. 지금 우리 아빠의 나이보다 더 어린 나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길어봤자 일이 년 전,
평생을 허름한 옛날 한옥에 사셨던 할머니가 마음에 걸리셨던 아빠는 제 손으로 모아 장만한 아파트에 할머니를 모시고 오셨다. 잠깐이라도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 모시고 싶었던 자식 된 마음. 길어야 2주 정도였을 기간.
당시 나는 유치원생이었다.
아파트 생활은 처음이었으니, 할머니는 불편해하셨고 모든 게 서투르셨다.
2중 잠금장치를 걸어 가족 모두 집 밖에서 오들오들 떨게 하신 적도 있었다.
실수가 반복되고 불편함이 이어질수록 우리 사이의 간극은 점점 넓어져 갔다.
불편함이 길어질수록 고의가 아닌 실수가 반복될수록 할머니에 대한 나의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지금은 OTT 서비스가 잘 되어있지만, 그 당시에 만화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비디오밖에 없었다. 내가 즐겨보던 만화 영화 비디오는 언제나 종이 케이스가 껴져 있었다.
그날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비디오 케이스가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비디오 케이스와 한참의 씨름 끝에 나의 짜증은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할머니가 또 만지신 거 아니야?'
곧장 수화기를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옆에 할머니가 듣고 있든 말든 말든 철없는 나의 투정은 계속되었다.
할머니가 만진 것 같다고, 그래서 비디오가 안 빠지는 것 같다고.
엄마는 그럴 리 없다며 나를 달랬다.
엄마 말이 맞았을 거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심통이 잔뜩 난 나는 해서는 안될 말을 꺼내 버렸다.
"할머니! 집에 가버렸으면 좋겠어!!!"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다.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엄마는 할머니를 곱디 고운 분으로 기억하신다.
'할머니도 마음고생만 하시다 가셨지.'
송장에 우리 집 주소를 작성한 뒤, 남은 송장 하나에 외할머니 댁 주소를 적어 내려갔다.
지금은 받을 수 없는 친할머니가 아닌 나에게 남은 유일한 할머니. 외할머니 주소를 말이다.
사실 제주도에 여행 오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외할머니께 소포로 무언갈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신 것을 싫어하시니 당연히 한라봉과 같은 제주 특산품은 안될 말이고.
자주 찾아뵙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지만 그마저도 코로나로 여의치 않았던 상황.
그러던 중 친한 지인 분의 할머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가시게 될 줄 몰랐다는 그분의 말에 자연스럽게 나의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살아계시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모른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두 분 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사랑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다.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철없던 마음에 느껴볼 새도 마음도 없이 끝나버렸다.
그래서 써 내려간 외할머니께 보내는 편지.
영영 보내지 못할 소포가 되기 전에 변변치 않은 것이라도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내가 지금 얼마나 할머니가 보고 싶은지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는지 편지에 꾹꾹 담아 눌러썼다.
보내고 싶은 마음과 보낼 수 있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