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숙소가 가까우면 좋은 점

-또?! 혼자 가는 제주도

by 일필


지난 이야기)



셀카봉 없이 협재해변을 헤매던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는데...










-저기요.



-네?



-아,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같이 가실래요?












는 나의 상상.




남들은 여행 와서 썸도 타고 그런다던데 나는 왜...














- 저기요.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안 가시더라고요. 혹시 사진 몇 장 더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협재 해변 오는 길에 사진 찍어주셨던 그분이다.
















아! 당연히 되죠.

그것이 '약속' 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저도 사진 찍어줄 분 찾고 있었는데 아무도 안 계셔서...



반가운 마음에 쓸데없는 부연설명을 지껄여 본다.








필요한 순간에 나타났던 귀인 덕분에 협재해변에서 한 컷을 제대로 건질 수 있었다.






협재해변엔 풔어rrrrㄹ














이번 여행이 지난 나의 여행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동거리가 아닐까 싶다.







뚜벅이로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기동력이 떨어지게 되고 몸이 고생을 하게 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플러깅 할 때를 제외하곤 숙소 근처만 다니는 코스이다 보니 남는 게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투민족의 후예답게 웬만한 이동거리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래서 어떻게든 시간 내에서 뽕을 뽑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이 이런 니즈를 충족한 게 아닐까 싶다.




이동거리가 길면 긴 대로 뽕을 뽑을 수 있는 나름의 해결책이 있는데 그게 바로 관광버스 안에서의 '음주가무' 다. 음주는 그렇다 쳐도 버스 안에서 가무를 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안전상의 이유로 버스 안에서 음주가무를 하면 안 된다.



내가 어렸던 그 시절만 하더라도 버스 여행에서 음주가무는 절대 빠질 수 없는 행사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돌아가면서 하는 노래자랑 시간이 끔찍이도 싫었다. 지금도 노래방은 절대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마이크를 잡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소름 끼치는 정적과 오디오를 통해 나오는 낯선 내 목소리가 듣기 싫은 것도 있지만 누군가한테 주목과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힘들게 했다. 아이돌 센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춤을 출 때는 누구한테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너나 할 것 없이 즐기는 행사이다 보니 노래하는 것은 싫어했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관절이 부서져라 몸을 털어대는 것은 내가 참 좋아하던 행사였다.



물론 클럽에서 털어보진 못했다.












그것은 아빠와의 '약속' 이니까.



아빠 혼자서 한 '약속'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변한다던데 혼자 여행을 좋아하던 나조차도 이번 여행은 유달리 춥고, 외로웠다.




나도 껴줘. 몸 터는 거 자신 있어.




다들 하하호호 이 순간을 즐기기에 바쁜데, 나 홀로 협재해변에 덩그러니 있자니 쓸쓸해져서 숙소로 돌아갔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혼자 있기는 싫은데, 혼자 있고는 싶다.


누구랑 여행 가고 싶은데, 같이 가기는 싫다.





맞춰주기 힘든 나자식 어쩌라는 걸까.









오후 1시 20분.




이번 여행은 이례적으로 숙소 근처만 다녔던 여행이다 보니, 숙소가 여행지와 가까워서 좋았던 몇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




하나. 추위를 피해 도망칠 수 있다.


둘. 추우면 옷 갈아입으러 돌아올 수 있다.


셋. 협재 바다를 춥지 않게 볼 수 있다.







결론은 좋았다.





숙소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이 여행기에 써먹을 내용이 없으니 마지못해 나가기로 한다.





다음 목적지는 어제 갔던 우무 푸딩과 가르송티미드,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할 '문쏘'.



전날 걸었던 길이라 굳이 지도를 펼쳐 볼 필요가 없었다.



지도에 코를 박고 다음 목적지를 찾아다녔던 지난날과는 달랐다.




하늘엔 여행객을 실은 비행기가 수도 없이 오고 갔다. 나는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중.




한 번 걸어본 길이라 어제만큼 힘들지 않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어제는 왜 그리 힘들었는지.


날은 덥고, 배는 고프고, 장시간 앉아서 이동하다 보니 몸은 아프고 괜히 왔나 하는 배부른 생각만 계속.




좋은 곳에서 하루 쉬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어제 왔던 길에 달라진 것은 그저 내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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