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 장만 찍어주세요

-또?! 혼자 가는 제주도

by 일필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잘 찍는 편은 아니지만 기록 그 자체로의 사진을 좋아한다.



기억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작이 되거나 잊히지만 사진엔 당시의 감정과 햇살과 향기가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2015년 여행 당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종달리
2015년 제주여행 당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이중섭거리




제주 여행을 갔다 온 지 벌써 2달이 다 되어간다. 제주 대하드라마를 쓰려고 사진을 뒤적이다 보면 그때 생각이 소록소록 난다. 협재해변의 공기와 햇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추워. 개추워.





제주도 사진만 보면 춥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제주도는 신기한 곳이다. 햇살이 저렇게 좋은데 어떻게 이렇게 추울 수가 있지?



날 엄청 좋아 보이는 마법



2015년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도 사실 날조된 사진이다. 사진엔 굉장히 따뜻해 보이지만 현실은 혹한기 추위였다.

딱 요즘 날씨처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여행 한 번 갔다 오면 폴더에 1,000장 이상의 사진과 영상이 저장된다. 덕분에 icloud는 늘 포화상태라 저장 용량을 2TB 요금제로 변경할까 생각 중이다.







200GB도 부족한 내 사진과 영상들.

분명 핸드폰 용량 자체도 128GB인데 왜 이리 부족한 걸까.




물론 외장 메모리에 옮길 것은 다 옮겨놓은 상태다.



이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 1,207장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맥북을 사게 됐는데,


스타벅스에서는 삼성이나 LG 노트북을 사용하면 경찰에 신고당할 수도 있다고 해서 맥북을 산 게 아니라 이 엄청난 사진을 관리하려면 네이버 클라우드보다는 icloud가 편할 것 같은데 그것을 동기화하는 데는 맥북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ㄷ ㅏ 해봤다.

네이버 클라우드, 기타 등등을 이용해 사진을 제대로 저장했다고 생각했다.





옮겼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수리센터에서 핸드폰 초기화를 하고 집에 가니 사진이 절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 지난날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아... 그랬다.

동기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난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한다.

사용한 지 3년 가까이 되는 내 핸드폰의 기능을 아직도 잘 모른다.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답이 없다.

그냥 돈으로 때우는 수밖에.







나도 핸드폰 폴더에 사진 몇 장 없으면 굳이 맥북 안사고 LG 그램 샀을 텐데...

가벼운 게 최고다.



후... 방 하나 제대로 못 치우는 내가.

폴더 정리가 가능할 리 없지.








맥북을 살 때 주의점. 윈도우와 한글 문서 작업하려면 맥북 프로를 사야 한다. 나는 그런 걸 모르고 맥북 에어도 당연히 지원되는 줄 알고 에어로 샀는데 에어는 윈도우 병행사용이 안되고 OS만 된다. ㅠㅜㅠㅜㅠㅜㅠ 그런 것도 모르고 산 진정한 기계 바보.















돈으로 보관한 사진








사진 한 장에 추억과

사진 한 장에 사랑과

사진 한 장에 쓸쓸함과

사진 한 장에 동경과

사진 한 장에 추위와

사진 한 장에 추워, 추워, 개추워.









하지만 추운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나홀로 여행이 서러울 때가 언제인 줄 아는가.





혼자 밥 먹을 때?



아니.




혼자 잠을 잘 때?




아니.








바로 셀카봉을 두고 왔을 때다.







사진 찍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셀카봉을 두고 왔다. 쥐쟈스.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꼭 셀카를 찍지 않아도 셀카봉은 풍경을 찍을 때도 좋은 아이템이다.







필요한 거 빼고 다 챙겨 온 나의 캐리어.







물론 난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다. 다행히 미니 삼각대는 챙겨 왔다.

미니 삼각대는 챙겨 왔으면서 왜 셀카봉은 잊었을까.












미니 삼각대... 갖고 왔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하지만 캐리어에서 꺼내자마자 목이 부러졌다.


뽀각.



2015년 우도 서빈백사에서



2015년에 처음 장만한 삼각대. 그리고 그 후로도 나의 여행을 도와주었던 빨간 삼각대.



2021년 제주로 돌아와 그 영광을 재현해 보려 하였는데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이쯤 되면 삼각대 스스로...









작년 울릉도, 독도 여행에서도


중학교 때부터 17년을 써 온 고데기가 하필 여행 둘째 날 망가졌다.

둘째 날의 법칙인가.










넌 좋은 고데기였어.




이쯤 되면 고데기 스스로...









그래서 셀카봉, 삼각대 없이 협재 해변 구석에 홀로 앉아 청승을 떨고 있었다.


자연인






내가 뭐 그리 큰 것을 바란 것도 아니고. 훌쩍.

그냥 협재해변과 함께 한 장 찍고 싶었는데. 훌쩍.













누가 나 좀 찍어쥬라




하필 협재 해변엔 제주도에서 그 흔하다는 나홀로 여행객이 없었다.




그래서 #18 나는 다 계획이 없다에 나와있듯 협재 해변 구석에 앉아 멍 때리고 있었던 것.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재충전을 한 뒤,



내가 아웃사이더라고 해변까지 아웃사이더에 앉아 있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인류가 모여 있는 중심지로 향했다.







그렇게 협재 해변 중심지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샤랄라 원피스를 입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홀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근 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그분께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는 아니고.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부탁에 그분 또한 흔쾌히 응해 주셨다.




찍어주셨으니 나 또한 찍어드리는 것이 이 세계의 상도덕.










폴라로이드는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에 좋은 선물이다.




지난 울릉도 독도 여행에선 2박 3일 동안 나와 같은 투어를 다녔던 어르신들께 폴라로이드로 가족사진을 찍어 선물로 드리기도 했는데, 내색은 안 하셨어도 특별한 선물에 고마워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도 시간을 내어 내 사진을 찍어준 분께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고마워요. / 저도요.





여행지에선 우리 모두 친구 칭긔.













협재 해변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강풍으로 인해 사람들의 머리는 초사이언 인으로 변해있었고, 내 머리도 곧 승천할 것 같아 집개로 머리를

야무지게 묶었다.





인싸들은 사진을 찍으며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지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홀로 뚝딱거리고 있었다.









뚝딱뚝딱.










뚝딱뚝딱.










지나가던 시민들












사진 좀 찍어달라는 말이 뭐 그리 어렵다고 엄마 잃은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여행객 대부분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으니 괜히 말 걸기가 더 어려웠다.









신체의 일부라도 기록에 남기기 위해

그렇게 발가락 사진만 열심히 찍어댔다.













그때였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