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혼자 가는 제주도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잘 찍는 편은 아니지만 기록 그 자체로의 사진을 좋아한다.
기억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작이 되거나 잊히지만 사진엔 당시의 감정과 햇살과 향기가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제주 여행을 갔다 온 지 벌써 2달이 다 되어간다. 제주 대하드라마를 쓰려고 사진을 뒤적이다 보면 그때 생각이 소록소록 난다. 협재해변의 공기와 햇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추워. 개추워.
제주도 사진만 보면 춥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제주도는 신기한 곳이다. 햇살이 저렇게 좋은데 어떻게 이렇게 추울 수가 있지?
2015년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도 사실 날조된 사진이다. 사진엔 굉장히 따뜻해 보이지만 현실은 혹한기 추위였다.
딱 요즘 날씨처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여행 한 번 갔다 오면 폴더에 1,000장 이상의 사진과 영상이 저장된다. 덕분에 icloud는 늘 포화상태라 저장 용량을 2TB 요금제로 변경할까 생각 중이다.
200GB도 부족한 내 사진과 영상들.
분명 핸드폰 용량 자체도 128GB인데 왜 이리 부족한 걸까.
물론 외장 메모리에 옮길 것은 다 옮겨놓은 상태다.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맥북을 사게 됐는데,
스타벅스에서는 삼성이나 LG 노트북을 사용하면 경찰에 신고당할 수도 있다고 해서 맥북을 산 게 아니라 이 엄청난 사진을 관리하려면 네이버 클라우드보다는 icloud가 편할 것 같은데 그것을 동기화하는 데는 맥북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ㄷ ㅏ 해봤다.
네이버 클라우드, 기타 등등을 이용해 사진을 제대로 저장했다고 생각했다.
옮겼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수리센터에서 핸드폰 초기화를 하고 집에 가니 사진이 절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 지난날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아... 그랬다.
동기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난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한다.
사용한 지 3년 가까이 되는 내 핸드폰의 기능을 아직도 잘 모른다.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답이 없다.
그냥 돈으로 때우는 수밖에.
나도 핸드폰 폴더에 사진 몇 장 없으면 굳이 맥북 안사고 LG 그램 샀을 텐데...
가벼운 게 최고다.
후... 방 하나 제대로 못 치우는 내가.
폴더 정리가 가능할 리 없지.
맥북을 살 때 주의점. 윈도우와 한글 문서 작업하려면 맥북 프로를 사야 한다. 나는 그런 걸 모르고 맥북 에어도 당연히 지원되는 줄 알고 에어로 샀는데 에어는 윈도우 병행사용이 안되고 OS만 된다. ㅠㅜㅠㅜㅠㅜㅠ 그런 것도 모르고 산 진정한 기계 바보.
사진 한 장에 추억과
사진 한 장에 사랑과
사진 한 장에 쓸쓸함과
사진 한 장에 동경과
사진 한 장에 추위와
사진 한 장에 추워, 추워, 개추워.
하지만 추운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나홀로 여행이 서러울 때가 언제인 줄 아는가.
혼자 밥 먹을 때?
아니.
혼자 잠을 잘 때?
아니.
바로 셀카봉을 두고 왔을 때다.
사진 찍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셀카봉을 두고 왔다. 쥐쟈스.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꼭 셀카를 찍지 않아도 셀카봉은 풍경을 찍을 때도 좋은 아이템이다.
필요한 거 빼고 다 챙겨 온 나의 캐리어.
물론 난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다. 다행히 미니 삼각대는 챙겨 왔다.
미니 삼각대는 챙겨 왔으면서 왜 셀카봉은 잊었을까.
미니 삼각대... 갖고 왔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하지만 캐리어에서 꺼내자마자 목이 부러졌다.
뽀각.
2015년에 처음 장만한 삼각대. 그리고 그 후로도 나의 여행을 도와주었던 빨간 삼각대.
2021년 제주로 돌아와 그 영광을 재현해 보려 하였는데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이쯤 되면 삼각대 스스로...
작년 울릉도, 독도 여행에서도
중학교 때부터 17년을 써 온 고데기가 하필 여행 둘째 날 망가졌다.
둘째 날의 법칙인가.
이쯤 되면 고데기 스스로...
그래서 셀카봉, 삼각대 없이 협재 해변 구석에 홀로 앉아 청승을 떨고 있었다.
내가 뭐 그리 큰 것을 바란 것도 아니고. 훌쩍.
그냥 협재해변과 함께 한 장 찍고 싶었는데. 훌쩍.
하필 협재 해변엔 제주도에서 그 흔하다는 나홀로 여행객이 없었다.
그래서 #18 나는 다 계획이 없다에 나와있듯 협재 해변 구석에 앉아 멍 때리고 있었던 것.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재충전을 한 뒤,
내가 아웃사이더라고 해변까지 아웃사이더에 앉아 있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인류가 모여 있는 중심지로 향했다.
그렇게 협재 해변 중심지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샤랄라 원피스를 입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홀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근 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그분께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는 아니고.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부탁에 그분 또한 흔쾌히 응해 주셨다.
찍어주셨으니 나 또한 찍어드리는 것이 이 세계의 상도덕.
폴라로이드는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에 좋은 선물이다.
지난 울릉도 독도 여행에선 2박 3일 동안 나와 같은 투어를 다녔던 어르신들께 폴라로이드로 가족사진을 찍어 선물로 드리기도 했는데, 내색은 안 하셨어도 특별한 선물에 고마워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도 시간을 내어 내 사진을 찍어준 분께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여행지에선 우리 모두 친구 칭긔.
협재 해변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강풍으로 인해 사람들의 머리는 초사이언 인으로 변해있었고, 내 머리도 곧 승천할 것 같아 집개로 머리를
야무지게 묶었다.
인싸들은 사진을 찍으며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지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홀로 뚝딱거리고 있었다.
뚝딱뚝딱.
뚝딱뚝딱.
사진 좀 찍어달라는 말이 뭐 그리 어렵다고 엄마 잃은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여행객 대부분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으니 괜히 말 걸기가 더 어려웠다.
신체의 일부라도 기록에 남기기 위해
그렇게 발가락 사진만 열심히 찍어댔다.
그때였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