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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May 09. 2022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그런데 아니었더라.

김선남 작가님의 ZOOM 강연을 듣고







나무를 알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나무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겨나 그 무수한 세월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노트 중에서












 시작은 단순했다.



 비거니즘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연을 덜 훼손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강원도에 산불이 났다. 허무했다. 인재로 벌어진 참극이지만 더 화가 났던 것은 언젠가 똑같은 일이 또 반복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누군가는 그 노력을 비웃고 보란 듯이 파괴한다.



 분노도 잠시, 곧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미 벌어진 일에 에너지를 쏟은들 다 타버린 녀석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남아있는 녀석들을 재건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참상을 만든 사람에게 그에 합당을 벌을 내리도록 관심을 갖는 것이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는 해보고 싶었다.







 때는 4월 5일 식목일.

 공휴일 지정이 되어있지 않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날은 보통 평일과 다름없는 날.



 산불로 시작했던 해라 그랬던 걸까. 나에겐 이번 식목일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무 심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비건 관련된 책만 뒤적이던 중.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뭐길래.

 생태 서점 호수 책장(@hosubookshelves)에 김선남 작가님 강연 안내 피드가 떴다.






 그림책?

 일 때문에 그림책은 늘 보지만 나무에 관한 전문 그림책은 처음이다.


 일정은 맞았지만 혹시 몰라 신청을 미루고 미루다 뒤늦게야 신청 폼을 작성했다.













 책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겉모습일 것이다.

 겉모습만 보고는 책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책 표지를 보고 읽을 책을 결정하는 것을 보면 진짜 외모가 중요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난 뒤 겉표지에 숨어있는 암호를 푸는 것을 좋아한다.

 폰트, 크기와 위치. 어떤 게 더 책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 일지 하나하나 고민했을 책 표지 작가의 고뇌.

 작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알쏭달쏭한 시그널.



 그렇기 때문에 판매에만 몰두해 책의 내용과 상관없는 겉모습만 화려한 책을 볼 때면 양심 없는 자본의 노예가 또 으뜸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망쳤다며 욕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림책은 다르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 모두 한 명의 작가가 짜 놓은 한 편의 시나리오기 때문에 자본의 손길로부터 비교적 작품의 본모습을 훼손시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느껴진다.















그림책은 겉표지에서부터 작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의 겉표지엔 제목 그대로 생김새가 다른 나무들이 그려져 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조차도 다 다른 크기와 모양 그리고 색으로 자신의 개성과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우리 동네 나무들의 생김새가 궁금해졌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로를 탐방하는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동네에 살고 있는 나무들의 얼굴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년이 넘게 산 나의 동네, 매일같이 보던 녀석들이 이렇게나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을 줄이야.






 이 녀석은 춤을 추고 있어.

 이 녀석은 키가 제일 크네. 대장 나무인가 봐.

 얘는 삐뚤게 자랐네. 피사의 사탑 같아.

 너는 머리숱이 풍성하구나. 앞으로 머리 걱정은 없겠어.

 너는 큰 나무들 등쌀에 밀려 숨어있었구나.







 몰랐다.
 우리 동네 이렇게나 많은 개성 강한 녀석들이 있었을 줄이야.



 책을 읽기 전엔 우리 동네 나무들이 다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을 거라고, 그저 나무 1, 나무 2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무들마다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을 줄이야.






우리나라에는 사전으로 내도 될 정도의 다양한 나무들이 살고 있다.










 2022년 04월 29일 금요일. 김선남 작가님 ZOOM 강연일.




 널찍한 카페의 편한 자리를 골라 ZOOM 강연을 들을 준비를 했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를 읽고 궁금해진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 <은행나무>.


 은행나무 두 그루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이 작품은 암나무와 수나무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며 마음을 전달하는지 보여주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은행나무에 대한 작가님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은, 경기도의 모 지자체에서 은행나무 열매 냄새가 지독하는 민원을 받기 싫어 암나무에 강제로 피임약을 주입해 예정된 날짜에 열매가 떨어지게끔(조기낙과)했던 만행에 관한 것이다.


 은행나무 냄새를 피하려고 강제로 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리고 수거하는 것도 무식한 행동인데, 강제로 약품을 주입하다니.


 게다가 냄새나는 열매를 맺는 건 암나무니, 암나무를 심지 말고 수나무만 심자는 기가 막힌 주장도 있다. 그럼 수나무가 뿌리는 주인 잃은 꽃가루는 누구의 입과 코에 들어가겠는가. 그때 가서 꽃가루를 날리는 수나무도 베어버리자 주장을 할 것인가. (수나무가 뿌리는 꽃가루는 암나무에게 가 열매를 맺게 한다.)




 순리대로 살자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인간답게 머리를 쓴 나름의 도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친환경 열매 수거 장치'.


 우산을 거꾸로 뒤집은 듯한 이 장치는 열매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 그물망 역할을 해준다. 떨어진 열매로 인해 불편했던 시민과 은행나무의 타고난 본성을 잘 지켜줄 수 있는 지성의 장치.


 앞으로도 지성이 있는 인간답게 머리를 썼으면 좋겠다.





 강연의 키워드는 ''에 관한 것이었다.

 같은 나라, 같은 고장, 같은 성별, 같은 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개별적인 개성을 갖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다.



 내가 더 우월하니까. 내가 더 많이 갖고 있으니까. 내가 더 똑똑하니까. 나와 다른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그 차이를 말살하려는 천박한 사고방식.




 우리는 왜 우리와 다른 고유성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고 헐뜯고 마는 것일까.











 나무는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에 있는 영양분까지 끌어 모은다고 한다.

 가지에 있는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뿌리까지, 온몸의 힘을 다해야지만 피울 수 있는 것이 '꽃'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의 각오로 노력하고 있었을까.




 매년 4월마다 봤던 벚꽃과 은행나무 꽃, 5월마다 볼 수 있는 이팝나무 꽃.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당연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매년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강연 며칠 후, 택배가 도착했다.

 강연 중에 했던 퀴즈를 맞춘 사람에게 주는 작가님의 특별 선물이었다.

 포장마저 섬세하게 해 주셨던 작가님 ㅠㅜㅜㅠㅠㅠ






 좋은 강연해주셨던 작가님,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강연 만들어주셨던 호수 책장에 감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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