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딸은 식물을 키우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피스텔의 구조 특성상 도로변을 향해 큰 유리창만 있어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식물들은 적당한 광량과 수분, 그리고 환기가 이루어져야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수분 공급은 제때 해 준다고 해도 광량과 공기 흐름이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주거 공간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딸이 집으로 오면서 수박 페페와 자스민오렌지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줄기의 대부분이 녹아버린 채 겨우 목숨만 연명한 수박페페는 줄기가 3개에서 7개로 늘었습니다. 오렌지자스민도 아침 저녁으로 창틀에 올려 놓고 오며 가며 "자스민~" 하고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지극 정성으로 관리를 하였더니 어느 날 하얀 꽃 한 송이를 피웠습니다. 오렌지자스민 꽃 한 송이의 향기는 거실 한 켠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이 작은 꽃이 어찌 이리 강한 향기를 내는 것일까요?
솔직히 오렌지자스민의 꽃향기를 오래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 피웠던 꽃은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꽃이 스러지면서 향기도 사라졌습니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스러져야 하는 운명의 두려움을 알기에 더 향기를 뿜었던 것은 아닐까요?
인간도 때때로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을 겪어야 한층 성숙해 지고 내면의 깊이도 깊어진다고 합니다. 저는 대신 오렌지자스민의 외로움과 향기를 훔치기로 하였습니다. 내일도 딱 한 송이만 피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