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특히 좋아하는 말 중에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그 문장을 볼 때마다 ‘아, 맞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정함을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그 말은 이상하게도 현실적이었다.
정말 지쳐 있는 날의 나는 전혀 다정하지 않다. 잠이 부족한 아침, 해야 할 일은 끝이 보이지 않고 마음까지 바닥으로 꺼져 있는 날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날이 선다. 그 사람이 나를 공격한 게 아닌데도 이상하게 먼저 방어부터 하게 된다.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앞선다.
그럴 때 나는 나를 지키는 데 급급하다. 내 기분, 내 체력, 내 하루를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타인의 감정까지 품을 자리가 없다. 몸이 먼저 무너진 날에는 마음도 쉽게 좁아진다. 여유가 없다는 건, 결국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알게 됐다. 다정함은 감정이 아니라 여백이라는 걸. 그리고 그 여백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걸.
마음과 체력이 덜 소모된 날에만 비로소 생기는 작은 공간. 당장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힘, 조금 더 듣고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힘. 몸이 버텨줄 때에야 비로소 생기는 한 박자의 멈춤. 그 멈춤이 다정함의 시작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체력이 받쳐주는 날은 확실히 다르다. 누군가의 서툰 말과 행동을 날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저래’ 대신 ‘오늘 많이 힘들었나 보다’가 먼저 떠오른다. 같은 상황인데도 내 상태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결국 다정함은 마음의 넓이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정한 사람이 좋다.
크게 티 나지 않아도 조용히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 누군가의 서툰 하루를 굳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 말수가 많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안심이 되는 사람. 내가 말을 더듬어도 급하게 정리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 주는 사람. 괜찮은 척 웃고 있는 얼굴 뒤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피곤함을 모른 척하지 않는 사람. 위로를 거창하게 건네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마음을 조금 낮춰 주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숨이 편해진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저 사람은 분명,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 사람이겠구나 하고.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아주 무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괜히 한 번 더 묻고, 괜히 한 번 더 신경 쓰는 쪽에 가까웠다. 다만 지쳐 있을 때 그 마음을 쉽게 접어 버렸을 뿐이다. 버틸 힘이 없을 때는 다정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다정함을 남에게서만 기다리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체력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보고 있다. 아주 작은 범위라도, 내가 닿는 곳만큼은 바꿔내다 보면 언젠가는 다정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서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