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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정 Mar 17. 2019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제5도살장을 읽고

 제5도살장은 커트 보니것의 반전소설로 드레스덴 폭격 사건을 모티브로 전쟁에 대한 비판을 블랙유머와 몽환적 SF과학을 가미하여 엮은 작품이다.


제5도살장에는 죽음이라는 소설의 키워드를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소재처럼 다룬다. 이를 위해 정신분열증과 공상과학적인 설정을 활용한다. 이 정도의 장치가 있어야만 13만 명이 피살된 드레스덴 폭격이라는 인류 최대의 살인극을 독자들의 거부감 없이 안정된 블랙유머의 톤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듯하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겪었던 저자가 온전한 정신으로 그가 목도했던 죽음을 복기하여 이야기로 쓴다는 것은 무척 고역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작가의 전쟁의 트라우마가 이 소설을 리서치나 상상력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세기의 작품으로 격상시켰음은 분명하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은 주인공 빌리 필그림과 함께 트랄파마도어 동물원에 갇힌 몬태나의 목걸이에 새겨진 말에 있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주인공 빌리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종류의 죽음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너무나 흔해버린 주변인과 가족의 죽음은 그의 삶을 관통하는 일상이 되어버린다. 결국 빌리는 죽음을 ‘영생을 사는 것’이라는 논리로 주장하는 트랄파마도어인의 말을 믿음으로서 주변인의 죽음으로 인한 어떠한 감정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는 ‘그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한 군인으로서 처해진 위기를 모면하거나 남을 도와주거나 심지어 본인의 누명을 벗는 것에도 작은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없이 그의 정신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별하지 못한 채 수억 광년 떨어진 트랄파마도어라는 가상의 외계행성을 만들어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합리화한다.


비록 빌리는 그렇게 미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전쟁이라고 하는 극한의 참혹함을 겪는다면 더군다나 히로시마 원폭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를 낸 인류 최악의 폭격지 드레스덴에서 지옥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참전용사였다면 과연 하느님께 위와 같은 기도를 드리지 않을 인간이 있을까.

생명의 존재가 하나씩 꺼져가는 동안 빌리 역시 어쩔 수 없는 전쟁의 피폭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빌리는 그 어떤 소설 속 주인공보다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처럼 비치지만 실상은 가장 현실적이고 입체적이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캐릭터인 것이다. 저자는 자신을 포함해 살아남았던 이 세상의 모든 빌리를 위해 외친다.


전쟁에서 영웅이란 없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빌리와 같이 전쟁의 트라우마를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겨내기를 바란다. 따라서 그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지길 기도한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소설 속의 이야기 형식은 트랄파마도어인의 행성으로 빌이 납치되면서 시간여행을 하는 식으로 짜여 있다. 이 행성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행성인데 4차원의 세상이다. 그들은 시간을 공간(3차원)과 함께 느낀다. 아래의 그림은 4차원 도형에 제5도살장의 이야기를 대입시킨 것이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형식이 트랄파마도어인의 4차원이 아녔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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