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시간 맞춰 도착했는데 웬일인지 실장님이 출근 전이었다. 6년째 우리 가족의 머리를 맡아주신 분이다. 5분 되니 급하게 문 열고 들어오신다.
미용가운을 입고 나부터 자리에 앉았다.
"혹시, 괜찮으시면 따님 커트는 다른 디자이너님께 맡겨도 될까요?"
지금껏 우리 가족 손질을 다른 분께 맡긴 적이 없어 살짝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커트만 하는 것이니 끝나는 시간도 맞추고 나쁘지 않겠다 싶어 "네"라고 말했다.
대각선 뒤에 앉은 딸을 고개 돌려 봤다.
딸의 요구사항은 두 가지였다.
어깨선 닿게 해 주세요.
머리 묶일 수 있게 해 주세요.
먼저 끝낸 나는 가운을 벗고 왼쪽 오른쪽 고개를 돌리며 거울로 상태를 체크했다. 머리를 손질했을 뿐인데 마음까지 후련해지는 듯 가벼웠다. 돌아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잔뜩 딸은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마에 '완전 짜증'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쓰여있는 듯했다.
무슨 일이지?
재빨리 아이를 스캔했다.
디자이너 샘은 뒷 머리카락을 손질하느라 집중하고 계셨다.
분명 나도 들어 아는데,
딸의 머리 스타일은 정확히 요구사항과 반대였다.
어깨선 근처에는 오지도 않는,
반묶음을 해야 겨우 묶일 정도로 짧았다.
'아 망했다.' 속으로 뱉으며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할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창가 의자에 앉아 고민했다.
평소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타입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큰일이 아니면 '다시 안 오면 되지' 생각하고 발길을 끊는 식이다. 남편은 타인을 배려하는 게 나보다 더 심하다. 이런 내 성격이 나는 답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속시원히 불만을 얘기하고 싶다. 더 나아가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웃으며 할 말 다 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속앓이만 하고 돌아선다.
미용실 실장님 성격이 좋아서, 매일 볼 사이라, 무엇보다 아이에게 잘 어울려서 이번에도 아무 말 못 했다.
그러나, 미용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투덜대는 딸을 보니 '한마디 할걸.' 후회가 밀려들었다. 내 마음에 들어도 당사자의 요구사항 두 개를 모두 따르지 않은 건 분명 문제였다.
언젠가 백종원이 TV에서 가게 사장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장사를 할 때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군줄아세요? '맛없다' '이것이 별로다' 피드백 주는 고객이에요. 사장 입장에서는 피드팩 하나가 귀한 데 애정이 있어야 그렇게 말도 해주는 거다. 앞에선 친절하게 인사하고 속으로 '다음부터 안 오면 돼'라는 사람들이 무서운 거다."
뒤돌아 후회하고, 속으로 꿍하고 담아놓고 싶지 않다.
"잘 어울리게 잘라 주셨는데 아이가 요구한 어깨까지, 묶이게 잘라달라는 건 왜 안 됐을까요?"라고 당당하게 표현하고 싶다. 그분을 위해서도, 내 마음을 위해서도, 내 딸을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