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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Aug 23. 2024

채우지 말고 비워라



 처음 미니멀라이프를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인 것 같다. 그 당시 좁은 평수의 방이 2개인 아파트에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짐이 정말 너무도 많았다. 큰방은 소파, 티브이장, 옷장 등이 모두 들어 있어 사방이 꽉 들어차 있었다. 작은방의 한쪽 벽은 행거에 옷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반대편은 책상과 책꽂이, 둘 곳이 없어 놓아둔 큰상까지 짐을 쑤셔 넣어 두었다. 



 물건이 많아지자 물건이 놓인 공간이 좁아 보이고 정리를 해보겠다고 수납용품을 더 구입하여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집안에 들어오면 숨이 막혔다. 아무리 하얗고 새것인 가구를 들여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냥 과잉이었다. 미니멀에 관한 책을 읽고 비움이 시작되었다. 경비실에서 이사를 가냐고 여러 번 물어봤던 것 같다. 수차례 옷과 책을 박스로 기부하고 재활용을 하기 위해 다리가 아플 정도로 집을 오르내렸다. 



 그렇게 물건을 비우면 다시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차츰 많은 물건들이 사라졌다. 물건을 채우는 것에는 좋은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건을 채우는 것에 좋은 점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근래 다시 물건들이 가득 찼다. 나는 한동안 시험 준비 때문에 집안일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너무 없어서 물건을 사는 일에 신경을 쓸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 틈이 날 때마다 물건을 잔뜩 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비운 물건도 많고 집안이 깨끗하게 유지되었으므로 겉으로 보기에 집안은 크게 변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차츰 내 주변은 물건 과잉 상태가 되었다. 



 늘어난 물건들은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고 해서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빈 공간 없이 꽉 막힌 포화상태가 된다. 우리는 물건을 다량으로 구매하여 쌓아 두거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또 사곤 한다. 세일을 하는 상품을 싸게 사기 위해서 혹은 쇼핑을 할 때 나오는 호르몬 때문에 잘못된 소비를 하는 경우도 많다. 



 내 마음대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공부의 성과는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알 수 없었고, 열심히 집안일을 한 대가로 월급을 받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풀 수 있는 것이 쇼핑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품절되면 오히려 좋아

 


  그런데 또 가진 돈이 별로 없으니 ‘핫딜’에 신경이 곤두섰다. 쉽게 조리해 먹을 볶음밥 20개 대량구매, 두루마기 휴지도 쌀 때 2+1, 세제도 종류별로 가득 샀다. 세제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세탁세제, 주방세제, 비누,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 곰팡이 제거제, 욕실청소제, 주방소독제 등등.



 그렇게 물건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싼 가격에 구매하면 ‘최고의 절약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잠시 든다. 택배박스가 쌓이고 이 박스들을 하나하나 뜯어 수납하다 보면 ‘현타’가 밀려온다. 물건들은 이미 있는데 또 샀거나 너무 많아서 놓을 곳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온 보관 상품이면 오히려 나은데 냉장고 보관 식품은 자리가 없으면 정말 난감하다. 상품이 품절되어 주문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오히려 반가울 때도 있었다.







각성하고 비우자

 


 이제 다시 이 물건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상에 결핍을 느끼고 있던 나는 알고 보니 아주 풍요롭게 살고 있었다. 집안에 내가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정말 많은 물건들이 있다.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물건 과잉이고 과소비다. 



 물건이 쌓여 있으면 절약해서 쓰지를 못한다. 1000ml 샴푸는 다 쓰기가 너무 지겨워 여러 개를 동시에 늘어놓고 헤프게 쓰게 된다. 나는 유통기한보다 더 긴 기간 사용해도 크게 문제가 없는 것들은 기간이 지나더라도 오래 사용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쓰지 못해 괜히 몸에 여러 번 바른 화장품도 많다. ‘괜찮아, 또 있어’라고 하기엔 가정경제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각성하고 물건들을 다시 비우려고 한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 절약이다. 처음에는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비우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혹독한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 내가 가진 물건을 모두 꺼내어 재고조사를 해야 한다. 당분간 전혀 쇼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무심코 구입한 물건으로 많은 돈이 낭비되었음을 직시하고 반성하였다. 물건들이 빠지고 그 자리에 틈이 생기면 내 마음에도 빈 공간이 생길 것이다. 빈 곳은 채우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비워둔다. 



 이제 물건들이 줄어들면서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절약될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관리하기 위해 힘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이 내가 물건을 비우려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는 집생활자이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해야 할 집안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면 내가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나는 그동안 물건들을 많이 사들인 것에 대해 한참을 후회했다. 단지 2년 남짓 손을 놓았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물건이 쌓이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결과였다. 앞으로는 채우지 않겠다. 채울 필요도 없다. 이미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많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잘 선별해서 비울 차례다. 텅 빈 공간이 주는 안락함을 다시 느낄 차례다.







비우는 것이 일상이 되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물건 비우기를 진행 중이다. 하루 1개 비우기, 1000개 비우기 등 물건 비우기를 결심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방법을 정하면 된다. 최근 2년간 나는 다른 일에 몰두하여 집안을 잘 돌보지 못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오래도록 실천해 왔다고 자부했는데 금세 물건의 개수가 늘었다. 필수품부터 시작해서 잡동사니까지 물건들이 너무 많아 항상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는 호기롭게 물건 비우기를 시작했다. 하루 하나씩 비우는 방식도 좋으나 현재 물건이 과잉 상태이며 벼르고 있던 비움이었기에 개수에 상관없이 당장 실천에 옮겼다. 예전에도 물건을 많이 비워본 적이 있다. 그렇게 많이 비우고도 비울 물건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물건이 쌓였다는 뜻이다.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체력과 시간을 아껴서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와 책 읽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매일 주변을 둘러보며 평범한 집안일을 하듯이 비우기를 실천하려 한다. 처음부터 집안 전체를 비우기는 힘들 것이다. 공간을 정해 오늘은 주방 선반 한 칸, 내일은 책상 첫 번째 서랍, 주말엔 화장대 등등 차근차근 비움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공간부터 정리를 시작하니 마음이 너무 상쾌했다. 하나의 공간이 깔끔하게 바뀌자 다른 공간도 얼른 정리하고 싶어졌다. ‘나비효과’라고 했던가.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우는 것이 일상이 되면 감히 함부로 물건을 들일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또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는데 무작정 물건을 들이려는 수고를 하지 않게 된다. 



 나는 사실 중고거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을 팔기도 한다. 물건을 비울 때는 아무래도 눈앞에서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물건을 들이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물건을 비우다 보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물건을 사는데 지출한 돈이 아까울 뿐 아니라 버리는 수고를 겪고 보면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우는 것이 끝이 아니다




 비우는 것도 결국 낭비다. 애초에 사지 않았더라면, 주변인들에게서 얻어오지 않았더라면, 무료로 받아오지 않았더라면 이 물건들은 필요한 사람들이 잘 사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물건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비우다 보면 이 물건들은 그저 내 눈앞에서 사라졌을 뿐 지구 어딘가로 쌓여 많은 생명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비운다고 끝이 아니다. 



 나는 비우는 습관을 통해 물건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끝까지 사용하지 못하고 비우게 되는 물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니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물건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다짐했다. 쓰지 않는 물건은 주인을 찾아주고, 쓰임이 다 한 물건은 내보낸다. 물건을 신나게 비우다가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이제 물건을 끝까지 다 사용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물건을 비우도록 노력한다. 알뜰히 짜 쓰다가 박박 긁어서 쓰고, 가위로 반을 갈라 끝까지 사용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쓰임이 다 한 물건을 방치하지 않고 바로바로 비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건전지함에 다 쓴 건전지를 넣고, 안내문이나 영수증은 기간이 지난 뒤 바로 처분해서 쌓이지 않도록 한다. 쓰임에 맞게 끝까지 사용하고 즉시 비워 공간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습관이 내가 바라는 비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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