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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Mar 10. 2022

버리기 강박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물건을 비우는 것이다. 시중에 있는 많은 서적에서 비우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장소를 정해서 비우기, 물건을 분류해서 비우기 등 물건을 비우기로 마음먹었다면 가장 큰 사이즈의 쓰레기봉투가 여러 개 나올 만큼 어마어마한 양을 비우게 된다. 그만큼 집안 곳곳에 쌓아 두었던 물건이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사 가세요?



 나 역시 미니멀리즘을 처음 접하고 정말 많은 물건을 비웠다. 처음 물건을 비울 때는 두 손 가득 든 쓰레기봉투를 보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분이 이사 가냐고 물었다. 아름다운 가게에도 몇 박스나 기증했다. 책 세트를 비롯해서 옷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기부영수증까지 받으니 뿌듯했다. 물건을 많이 비우자 집안 곳곳 공간이 생기고 마음이 후련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비움이 수시로 진행되었다. 분기별로 아니면 책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비우기도 했다. 이사를 할 때마다 큼지막한 가구들도 비울 수 있었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


 

 미니멀라이프를 위해 집을 치우다 보면 많은 물건을 비우게 된다. 물건이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지 집안 꼴이 엉망일 때 정리를 싹 하고 싶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비울 물건이 없다. 이렇게 물건이 가득 찼는데도 하나같이 다 쓸모 있고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리한 티도 안 나고 답답함이 느껴진다. 비우려고 열었던 서랍장을 도로 닫아 버리고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동안 많이 비웠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왠지 비움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는 정리를 그만둔다. 계속 쳐다보고 있어 봤자 답답함만 쌓인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 다시 들여다본다. 신기하게도 매일 다르게 비울 물건이 나온다. 비움을 결심한 순간 많이 비우면 좋겠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을 때는 한숨 돌린다.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기분은 왔다 갔다 한다. 어떤 날은 무심코 지나가다가도 쿨하게 물건을 수십 개도 비우게 된다. 또 어떤 날은 물건이 다 너무 소중하고 안타까워 하나도 비우지 못한다. 당장이 아니라도 다른 날 같은 공간을 다시 보면 신기하게 비울 물건이 생긴다. 그러니 잘 안 풀린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 다시 같은 곳을 보기로 한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 너무 비우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

 


 최근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지구의 자연재해를 접하니 걱정이 앞선다. 열돔현상이 일어나 온도가 치솟고, 대홍수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니 겁이 난다. 미니멀라이프를 한답시고 멀쩡한 물건을 내다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사서 세팅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많은 것들을 하고 사는 것 같다. 인테리어가 굳이 필요 없어 보이는데도 리모델링 열풍이 불어 집을 고치고 많은 폐기물을 쏟아낸다. 패스트 패션의 시대라 옷의 질이 낮아도 한 철 입고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광고에 매료되어 모방소비를 하고 명품에 열광한다.



 미니멀라이프를 위해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비우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물건을 버리는 행위가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건을 버리기 위해서 미니멀리즘을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위해서 일종의 ‘버리기 강박’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유명한 미니멀리스트의 집에는 가구도 없고 물건이 거의 없어 보인다.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게 초라하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가족이 있고, 나 나름의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필요한 물건은 저마다 다르다. 남들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무작정 따라 할 필요가 없다. 멀쩡한 물건을 없애고 깔끔한 화이트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물건은 비우는 과정에서 버리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건이 쌓이는 것도 한순간이라 수시로 집안 곳곳을 체크한다. 하지만 쓸 수 있는 물건까지 내다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물건을 살 때 신중하게 사는 것에 더 신경 쓰게 되었다. 이제 남아있는 물건을 책임감 있게 끝까지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혹여나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이 있더라도 쓰임이 있다면 비우지 않는다. 같은 용도의 물건을 다시 사기 위해 이전에 쓰던 물건을 버리지도 않아야 한다.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무엇이 중요한 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버리기 강박에 사로잡혀 쓸 수 있는 물건까지 버리지 않기로 다짐한다. 아무리 아끼고 산다고 해도 우리들은 매일 물건을 사고 또 비우게 된다. 버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용하는 물건을 쓰임이 다 할 때까지 사용하고 비우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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