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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Apr 20. 2022

잘 버리는 여자



 나는 어릴 때부터 정리를 곧잘 하곤 했다. 어질러진 공간을 다시 바르게 정돈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있는 물건을 꺼내어 다시 반듯하게 놓는다고 해서 깔끔한 공간이 되지 않는다. 금방 다시 어질러진다. 잡동사니가 많으면 물건이 쌓이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내가 살림을 해 보니 물건의 가짓수를 줄이고 오히려 없이 사는 것이 편하다.




물건은 적을수록 편하다



 물건을 줄이면 그만큼 정리가 쉬워진다. 치울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서 많은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얼마 없으니 물건을 찾는데 드는 시간이 줄어든다. 알맞은 장소에 물건을 보관하기 때문에 동선도 편리하다. 물건마다 각자의 자리를 찾게 되고 제자리에 놓이게 된다.



 물건이 적으면 적을수록 편리하다는 것은 이사할 때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 나는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지난 12년 동안 총 7번을 이사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8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 이사할 때마다 비우게 되는 잡동사니가 꽤 많다. 가구나 가전 같은 큼지막한 물건들도 버리는 찬스(?)가 된다.



 짐이 없으면 이사비용이 적게 든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고 난 이후부터 이사를 할 때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짧은 시간에 금방 이사를 마쳤다.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는 경우에도 이사가 금방 마무리되었다. 이삿짐 직원들은 짐이 많이 없다고 좋아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처음 독립했던 집보다 짐이 반은 줄어든 것 같다.



 물건이 줄어들면 물욕이 줄어든다. 물건을 비우는데 생고생을 해봤기 때문에 물건을 새로 들일 때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신기한 경험이다. 물건을 줄일수록 욕심이 사라진다. 물건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있는 물건도 아껴 쓰게 되니 자동적으로 돈이 절약된다.



 적게 가지고 더 편리해지는 경험이 일상에서 확대된다. 깔끔한 책상에서 책을 볼 때도 빈 바닥을 청소기로 밀 때도 마음은 가벼워진다. 물건이 많을수록 편리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비로소 찾아온 여유로움이 좋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는 거침없이 비움을 많이 진행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 갖다 버릴 거냐며 장난스레 묻곤 했다. 나는 잘 버리는 여자이다. 미니멀리즘을 알게 되고 정말로 많은 물건들을 비웠다. 미니멀과 관련된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면서 나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우울했던 이유들이 밝혀졌다. 살림살이로 힘들었던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들을 의미 없는 소비로 풀고 있었다. 채울 수 없는 허한 마음을 대신해 물건들이 집안 곳곳을 채웠고, 꽉 찬 물건들이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처음에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쓸모없는 물건들을 골라내고 비웠을 때 그 어마어마한 양에 입이 떡 벌어졌다. 단순히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을 비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 아무 쓸모가 없는 물건들을 쌓아 놓고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집이 작아서,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가득 품고 살았다. 고장이 나고 부서져 누구에게 줄 수도 없는 것들, 이미 사용기한이 지난 식재료, 나오지 않는 볼펜, 영수증 등등을 비워 나갔다.



 그렇게 많은 쓰레기들을 비운 후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둘러보았다. 하나의 용도로 쓰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많았다. 뒤집개도, 그릇도, 운동화도 나는 한 종류만 쓰는데 너무 가짓수가 많았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생각하는 것만큼 필요가 없다. 생각보다 반찬통, 화장품, 롤백, 세제들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쟁여 놓고 쌓아 두고 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용하는 물건들만 남겼다. 취향은 아니지만 선물 받아서 그냥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기부하거나 중고로 처분했다. 여분의 물건을 더 이상 축적하지 않고 쓰임에 맞는 하나의 물건을 남기자 물건과 나에게 모두 좋았다. 물건은 각자의 소임을 다해서 쓰였고, 나는 복잡하지 않은 공간에 살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남기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나는 단순한 것이 좋아서 그런지 몇 가지 입는 옷과 신는 신발만 신는 편이다. 새것도 좋지만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나에게 맞게 잘 길들여진 옷차림이 나를 더 편안하게 한다. 관리만 잘하면 생각보다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다. 분기별로 새 옷을 사며 멀쩡할 옷을 비울 필요가 없다. 이제는 옷을 잘 관리해서 깔끔하게, 오래 잘 입겠다고 다짐한다.



 잘 사용하는 것을 남기고 다 사용할 때쯤 새것을 채우니 빈 공간이 생긴다. 생각보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물건에게만큼은 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용하는 물건이, 필요한 것들이 적다. 적을수록 더 편안해진다.



 처음에는 비우는 것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신나게 비우고 몸살이 나도 그저 좋았다. 그러다가 자괴감이 몰려왔다. 비싼 돈을 들여서 이 많은 쓰레기들을 왜 샀는지 후회했다. 부피가 큰 물건들은 비우는 일에는 추가로 돈이 들었다.



 쓸만한 물건들은 중고거래를 했다. 금방 거래되면 좋겠지만 계속 거래되지 않고 남은 물건들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나눔을 하든 중고로 팔든 모르는 사람들과 거래하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다.








이제는 비우는 것이 불편하다



 그런데 이제는 비우는 것이 꺼려진다. 가장 큰 이유는 환경문제일 것이다.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한들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로 가서 쌓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또 짐이 될지도 모른다. 여러 차례 물건을 비운 후에는 비우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미 많은 물건을 없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쉽게 물건을 비워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임이 다 한 물건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처음 미니멀리즘을 접했을 때는 나중에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미련해 보이지 않는다. 나와 가족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건이 제대로 쓰이게 될 자리를 찾는다.



 조금은 귀찮더라도 그냥 버리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물건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면 쉽게 들이기가 어려워진다. 이제는 무언가 사고 싶은 마음을 비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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