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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친구와 일본 나고야 여행 vol.1

오타쿠지만 일본은 처음입니다.

by 세상에없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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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한일 외교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다녀온 것임을 알립니다




"난 나중에 일본 여자랑 결혼하는 게 꿈이야" 이런 말을 자주 하던 친구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은 진골 오타쿠로 우리 사이에서 유명하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만나온 친구 K. K는 학생 때부터 일본 펑크락, 만화, 영화, 연예인을 섭렵하며 일본어까지 어느 정도 구사했다.


우리는 당연히 이 녀석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일본에 다녀오는 프로 오타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실. "나 한 번도 일본 가본 적 없어". 홍철 없는 홍철팀을 본 듯 우리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놈은 호주의 피지섬까지 다녀 올 정도로 은근 여행을 자주 가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이런 녀석이 자신의 쀄이보륏 국가인 일본을 가지 않았다니.


그런데 마침 회사에서 일본 나고야 여행 상품을 기획 중이라 2박 3일 단독 출장을 지시받았다. 넌지시 K에게 이를 이야기하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혹시 나도 가도 됨?"이라 물었다. 미끼를 물었구만. 나는 속으로 웃으며 짐짓 곤란한 척 이야기했다. "글쎄... 공무로 가는 거라 괜찮으려나?" 하지만 이미 난 처음부터 K를 짐꾼 및 통역사로 활용할 계획을 70개 정도 세워 놓은 상태.


일부러 시간은 조금 두고 "회사에서 어차피 호텔방 자리도 남으니 너랑 나 둘이 다녀오래. 대신 같이 사진 열심히 찍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연하지!!! 와!!! 드디어 나도 일본을 가본다!!!" K는 신나 했고 나도 일손을 덜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이때까진 몰랐다. 진짜 친한 친구 녀석과 해외를 단 둘이 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나고야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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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K씨와 함께 향한 일본 나고야 여행. 나고야는 한국으로 치면 대전 정도 되는 일본의 중부 도시다. 도쿄와 교토의 중간이라는 의미로 '주쿄(중경)'이라고도 불렸다. 일본 제3의 도시로 여겨질 만큼 도시의 규모도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겐 그리 친숙한 여행지는 아니다. 워낙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해 북해도, 오키나와 등 여행지가 많은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 전체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만큼 교통의 요지로 뽑힌다. 정말 우리나라의 대전과 많이 닮았다. 흔히 대전은 관광자원이 부족해 '노잼'도시라는 오명을 가진다. 나고야도 사실 비슷하다. 도시 중심보다는 보통 자동차로 1~2시간 떨어진 근교에 더 볼거리가 많다.


일본 나고야 여행은 시내 지하철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그러나 근교 여행은 렌터카 없이 거의 불가능하다. 패키지여행이면 상관없지만 우리처럼 자유여행자라면 꼭 렌탈을 하자.




나고야 주부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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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여러분 우리 항공기는 곧 나고야 주부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익숙한 비행기 안내멘트가 나오고 나는 슬슬 일어날 준비를 했다. 2시간여의 짧은 비행이지만 전날 과음으로 깜빡 잠든 나는 눈을 비비며 K를 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 짐이 생각보다 엄청나다. 무거운 카메라 2개와 큰 삼각대, 짐벌까지.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은 카메라 장비도 덕후 수준. 드론과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만 챙긴 나보다 장비 무게가 2배는 되는 녀석. K는 내가 이미 잠을 자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요즘 재미를 붙였다는 Vlog를 찍기 시작했다. 대화의 절반이 욕이요 나머지 절반은 음담패설인 K가 존댓말을 쓰며 영상을 찍다니. 뻔뻔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친구가 브이로그 빌런이라니!


K는 일본 여행 내내 영상을 찍겠다면서 나에게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혼자 주절주절 떠들기도 했다. 결과물이 기대되면서도 두려운 것은 왜일까. 나고야 주부 국제공항은 정말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깔끔했다. 우리는 짐을 찾고 공항과 이어진 역사로 이동했다. 나고야 시내의 중심지인 '사카에' 까진 메이테츠 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오타쿠는 일본 기차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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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토종 메이드 인 코리아 오타쿠 선생님께선 메이테츠 선 열차에 타는 순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매일같이 찾아본 애니메이션 속 갬성 열차를 실제로 탑승해서 그런 듯하다. 몇 번의 일본 출장을 왔던 나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공항부터 시내까진 약 870엔 정도 비용이 발생했다.


올 때마다 놀라는 비싼 일본의 교통비와 아날로그 기차표... 참고로 국제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하는 메이테츠 선은 완행/급행/특급 등으로 종류가 나뉜다(소요시간은 4~50분). 당연히 생략하는 역이 많은 특급열차가 더 비싸다. 한 가지 조심해야 하는 것은 모든 열차가 시작 지점에서 철로를 같이 쓰기 때문에 자칫 열차가 헷갈릴 수 있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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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목적지인 사카에까진 결국 도착하지만 급행 비용을 지불하고 완행을 타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처음엔 급행 티켓을 사고 실수로 완행열차에 탑승했다. 그러나 방송을 들은 K가 급히 "야! 이거 완행이야!"라며 얼른 내리자 했다. 일본어를 조금 하는 친구를 데려오니 참 편했다.


고맙다 K야. 그리고 축하한다. 너 이제 모든 음식 주문과 의사소통 담당이야.


출장을 빙자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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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 체크인할 호텔은 도미인 프리미엄 사카에. 일본 나고야 여행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있는 브랜드 호텔인 도미인 호텔은 가성비와 청결 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대욕장(목욕탕)도 있어 온천도시가 아니더라도 입욕이 가능하다. 숙취로 힘들어했던 난 숙소 체크인을 하자마자 욕장으로 달려갔다.


아담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던 대욕장. 같이 간 K는 유난히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야 왜 안 들어가?"하고 물어보니 K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일본에는 혼탕이 있지 않나?" 일본문화를 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K가 이런 말을 하다니. 실소가 터졌다. 음흉한 K를 작은 소리로 나무라며 그건 스테레오 타입이라 질책했다.


왜인지 실망한 K와 함께 건장한 남성들이 있는 남탕에서 목욕을 마친 뒤 시내 명소를 몇 개 가기로 했다.



미션 : 오타쿠를 만족시켜라(feat. 나고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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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 오타쿠 K와 여행을 즐기기도 해야 하니 일본스러운 무언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고성 등 역사명소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벚꽃시즌이기도 하고 숙소에서 지하철로 3 정거장 내외로 가깝기도 하여 나고야 성을 가기로 했다.


나고야성은 오사카성과 더불어 일본 3대 성으로 손꼽힌다. 우리도 한 번쯤 들어본 핫토리 한조라는 닌자가 이곳에 있었다는 설명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성 부지 안에서는 닌자 분장을 한 배우들이 시간대마다 출몰해 보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우리의 브이로그 빌런 K는 정신없이 짐벌까지 세팅해 촬영을 시작했다. 날씨도 화창하고 벚꽃도 만개했을 때라 평일임에도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다. 확실히 나고야는 한국인들에겐 인기 많은 곳은 아니다.일본인 혹은 중국 단체관광객이 명승지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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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 하는 탄식을 내뱉고 대충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K가 걸음을 멈췄다. 녀석은 기모노인지 유카타인지 전통의상을 입고 소풍을 나온 듯한 자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흉한 K의 눈매가 한 층 더 음흉해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음흉한 생각엔 야구방망이가 처방전이리라... 하지만 난 오타쿠인 K가 난생 처음 실제 기모노를 보며 막 시작한 상상의 나래를 존중해주기로 했다.


제발 저 녀석이 일부 몰지각한 한국 개인방송인처럼 현지 여성분들에게 쓸데없는 말을 걸지 않길. K를 지켜보며 난 나고야성의 맛난 간식, 은어구이를 하나 사 먹었다. 다행히 K는 곧 내 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런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염화미소'


불교의 복잡한 개념이긴 하지만 쉽게 풀어 말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다. 나는 말하지 않아도 K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무언가는 없었겠지. K는 눈으로 말했다.


"왜 난 이 곳을 남자랑 온 것인가"


나도 눈물이 났고 K도 울먹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의 출장을 빙자한 나고야 우정여행은 오늘부터 시작인 것을. K와 내일은 나고야 외곽에 위치한 '시라카와고'를 놀러 가 보기로 하며 씁쓸하게 회포를 풀었다. 오늘따라 기린 생맥주가 쓰게 느껴진 것은 기분 탓이리라.


맛집으로 구글에서 검색된 호루몬 야끼 집에서 우리 테이블 주위로 모두 커플인 것도 기분 탓이리라.


분명 그럴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K는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나고야 여행이 처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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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시내는 분명 큰 도심이지만 그다지 관광자원이 많이 없다. 오아시스 21과 나고야 TV타워를 둘러보면 사실상 메인 여행지는 둘러본 셈이다. 호루몬 야끼, 돈가스 등 맛집이 많으니 얼른 시내를 둘러보고 맛집 투어를 시작해보자. 호텔은 다양하게 있는 편이지만 일본 호텔답게 협소할 뿐만 아니라 선택지도 좁은 편이다. 우리가 숙박한 도미인 프리미엄 사카에 호텔이 지리적으로도 시설적으로도 우수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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