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는 없거든.
후우, 후우.
언 손에 입김을 불어본다. 차갑게 얼어붙다 못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굳어버린 손을 비벼보고, 주물러보고, 애써 녹여본다.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손끝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오래된 손목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괜히 바빠진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 소리가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듯하다. 오늘따라 가로등의 불빛이 유난히 깜빡인다. 괜히 신경을 긁는다. 별것 아닌 일에도 심술이 난다. 톡, 톡, 발끝으로 바닥을 차며 걷는다. 발에 걸리는 자잘한 돌맹이들 마저 성가시다. 도로록 굴러다니는 깨알 같은 모래알갱이 소리마저 또렷하게 들리는 밤이다. 고요한 밤. 그래서 더 고독한 밤.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 손에 들린 비닐봉투가 바람에 흔들리며 부스럭거리는 소리만이 나와 함께 걷는다.
새까만 골목길 끝, 목적지에 도착한다. 터덜터덜 계단을 오른다. 숨이 조금 가쁘다. 문 앞에 비닐봉투를 내려놓고 찰칵, 인증샷은 필수다. 타닥, 타다닥 문자를 남긴다.
「고ㄱ객ㄴㄴ」
“에이씨.”
얼어붙은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다시 타닥타닥.
「고객님, 주문하신 음식이 도착했습니다.」
겨우 문자를 남기고는 서둘러 골목길을 빠져나온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치지 않는 관계들. 그게 오늘 밤의 규칙 같다.
화려하게 치장된 조명들이 번쩍이고,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그 소리들이 오늘은 유난히 퍽 행복하게 느껴진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풍경 같다.
“사장님, 127번 배달 가져갑니다.”
나는 또 다른 가게의 음식을 싣고 다시 달린다.
동네에서도 유명한 대단지 아파트. 정문에는 떡하니 ‘배달원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참 재수없는 아파트다. 한참을 돌아 뒷구멍 같은 후문 귀퉁이로 출입한다.
“배달원 출입금지 시킬 거면 배달은 왜 쳐먹는 거야…”
나지막이 욕을 내뱉고 입구로 향한다.
똑똑.
답이 없다. 다시 한 번 현관을 두드린다.
똑똑.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 결국 벨을 눌렀다.
벌컥—
“아저씨! 벨 누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애기 겨우 재웠는데 깨면 책임질 거예요? 글을 못 읽는 거야 뭐야. 앞에 붙어 있는 이거, 이것도 안 보여요? 아기가 자고 있으니 벨 누르지 마세요!! 아저씨 글 못 읽어요?”
“죄송합니다. 노크했는데 답이 없으셔서…”
“언제요!!! 노크 소리 듣지도 못했는데, 아 진짜 짜증 나서.”
봉투를 홱 낚아채듯 받아 들고 문은 그대로 닫힌다. 남겨진 나는 주먹을 꽉 쥐고 한숨을 푹 쉰다.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삼킨다. 늘 그래왔듯.
벌써 열한 시가 넘었다. 라이더는 점점 많아지고 콜은 점점 귀해진다. 후우— 연신 담배 연기를 뿜으며 화면을 내려본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하고 집에 가자. 그렇게 다짐하면 이상하게 또 콜이 뜬다. 어김없이, 나는 또 달린다. 끼익— 무단횡단자.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술을 얼마나 쳐마셔야 차도인지 인도인지도 모르고 저렇게 비틀거리며 길을 건널 수 있는 걸까. 맛탱이가 갔네, 갔어. 심장이 쿵 내려앉은 채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서둘러 배달을 마치려 했는데, 젠장.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빨간 짬뽕 국물로 물들어버린 비닐봉투에서 뜨끈한 매운 냄새가 진동한다. 아뿔싸. 아까 그 무단횡단자 때문에 했던 급정거 때문이겠지. 설명할 말도, 변명할 힘도 없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만신창이가 된 하루를 등지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거친 숨을 내쉬며 겨우 열두 시 전에 도착했다. 몸에 밴 냉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집 안은 숨을 죽인 듯 고요하다. 이 고요함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끼이익— 방문을 열어보니 두 사람은 이미 꿈나라로 떠난 지 오래인 듯하다. 고른 숨소리, 아무 걱정도 없는 평온한 얼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된 하루의 끝이 조금씩 환해진다. 나의 사랑, 나의 전부. 쉼 없이 달려온 하루를 조용히 보상받는 기분이 이런 걸까. 그래, 더럽고 치사해도 결국 나를 다시 밖으로 내보내고, 또다시 버티게 하는 힘은 여기 있다. 이 작은 방 안에. 꼼지락거리며 뒤척이는 아이의 작은 손가락마저 희미한 불빛을 머금고 빛이 난다. 세상에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이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함께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촛불을 불고, 트리를 꾸미고, 반짝이는 전구를 바라보며 서로를 꼭 안아주는 그런 평범한 일상. 남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그 장면을 오늘의 우리는 갖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채 하루를 흘려보냈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어쩌면 나만큼이나 고된 하루를 보냈을 아내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넘긴다. 깊이 잠든 얼굴에 닿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어쩌면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하찮은 위로일지도 모를 이 손길이,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조금은 따뜻하게 닿기를 바라며 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