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도 해가 떴습니다. 내일도 해가 뜨겠죠. 그다음 내일도.

by 온오프

연말이 되면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시원섭섭해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마음이 어떤지 느낄 새도 없이 하루가 저물어버렸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그게 뭐라고. 그냥 늘 사는 하루 중에 하루일 뿐이었다. 나의 1년이 어땠는지를 떠올리려 하면 가슴 한편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그래서 아예 회상 따위는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해는 바뀌었다.


새해의 의미 따위 없이 그저 하루가 밝았다. 늘 그렇듯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나를 깨웠다. 아이를 품었던 그 느낌, 뱃속에서 느껴지던 태동은 아직도 생생한데 왜 잠을 깨우는 목소리들 앞에서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에 답은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부랴부랴 아침을 준비한다. 숟가락 세 개, 요거트 세 그릇. 골드키위와 딸기를 잘게 잘라 넣고 그래놀라를 톡톡 털어 넣은 아침 식사. 각자 떠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오물오물 먹는 아이들의 입을 바라보다가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조는 내가 있다. 이제는 그것마저 루틴이 되어버렸다. “엄마 졸려요?” 아이의 말이 얄밉게 느껴질 정도로 피곤한 1월 1일의 아침이었다.


다 먹어갈 즈음 영양제를 준비한다. 칼슘, 유산균, 철분, 종합비타민. 세 개씩 나란히 놓고 한 명씩 차례로 먹인다. 왜 인간은 손이 두 개뿐일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녀석이 오물거리며 삼키는 동안 다른 녀석의 입에 영양제를 탈탈 털어 넣는다. 손이 바쁘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꼭 일이 생긴다. 주르륵 - 그새 우유를 잔뜩 쏟아버린 막내를 보며 내 표정이 굳어버린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한숨이 나온다. 일이 하나 늘었다.


비타민을 하나씩 입에 물려주고 한 명씩 욕실로 데려가 세수하고 손 씻고 양치하고 머리까지 다듬어준다. 첫째와 둘째를 후다닥 준비해 내보내고 나면 막내 차례다. 아직 기저귀를 차는 아이, 엉덩이까지 씻겨주고 나서야 아침 세안이 끝난다. 그러면 또 한 차례 전쟁이 시작된다. 옷을 벗은 채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몇십 번쯤 반복한다. 두 손은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아이들 옷을 입히며 마음이 급해진다. 헐벗은 채 신이 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빨리 옷 입혀야지, 저러다 감기 걸릴 텐데, 그러면 또 아플 거고, 열나면 내가 밤새 봐야 하고,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어린이집을 못 가게 되면 온종일 또 애랑…. 그럴수록 내 마음은 출발 신호를 놓친 경주마처럼 앞뒤 없이 달려간다.


가까스로 아이 셋을 다 입히고 나면 손발톱을 깎는다. 일주일에 한 번, 손톱 서른 개, 발톱 서른 개. 아, 내 손발톱까지 하면 총 여든 개구나. 혹시라도 건조할까 얼굴에 크림을 듬뿍 바르고 선크림까지 바르고 나면 외출 준비가 끝난 것 같지만 아니다. 또 전쟁이다. 겨울이라 겉옷을 세 번 입혀야 하고 모자 세 개를 챙겨 씌우고 신발 세 켤레를 꺼내 신겨야 비로소 외출 준비가 끝난다. 물론 마스크 세 개도 빼먹으면 안 되는 계절이다.


우리 집은 아파트 2층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또 시작이다. 큰아이 둘은 계단을 마구잡이로 뛰어 내려간다. 아이들과 외출할 때면 기본 옵션처럼 매고 있는 백팩과 손에 들린 짐들 때문에 아이들을 붙잡을 수는 없다. 황급히 막내를 안고 따라 뛰어 내려간다. 어디서 이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건지 가끔은 스스로도 신기하다. 그렇게 셋을 카시트에 태운다. 그래, 이제야 드디어 외출 준비가 끝난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아침 외출 직전까지의 일만 나열했을 뿐인데도 또 한 번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모두 쓴다면 그건 일기가 아니라 대하드라마가 될 것이다. 새해 첫날이라는 의미는 이미 내게 부질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요즘 내 하루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날과 가지 않는 날로 나뉜다. 그 하나로 내 하루의 온도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날은 식탁 앞에 앉아 내 밥을 먹지 못하는 날이다. 아이들이 남긴 끼니를 욱여넣고 하루 종일 빨리빨리 해치우기 바쁠 뿐이다.


최근 온 가족이 A형 독감을 앓았다. 나를 위한 휴식은 역시나 없었다. 아이를 케어할 사람은 오직 나이기에 큰아이와 함께 후딱 수액 치료만 받고 다시 육아로 돌아왔다. 첫째가 낫고 나니 둘째, 셋째가 연달아 독감 양성이었다. 아픈 아이보다 육아가 먼저 걱정되는 나는 여전히 못난 엄마였다. 내 몸이 지치고 힘든 게 먼저라 방학이 달갑지 않고 긴급보육을 하루도 빠짐없이 맡긴다. 그러고도 혹시 우리 아이 혼자 있지는 않을지, 내가 마지막에 하원하는 엄마는 아닐지 해가 지는 게 두렵다. 그럼에도 이번 겨울방학, 나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긴급보육을 신청해 두었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전혀 계획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말한다. 애 셋을 낳고 키우다니 대단하다고. 그럴 때마다 멋쩍은 웃음을 짓지만 그 웃음 뒤에는 늘 죄책감이 함께 있었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말 그대로 키울 뿐이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되려 나를 돌보는 순간들이 더 많다. 그래서 나를 ‘삼 남매 엄마’라며 추켜세우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또 주말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하는 엄마, 일요일 밤이 되면 내일 아이들에게서 해방된다는 생각에 입이 찢어지게 웃어버리는 엄마. 남들이 대단하다고 여겨서는 안 되는 그런 부족한 엄마다.


요즘 나는 부쩍 내 그릇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아이 셋을 혼자 보는 날이면 꼭 셋 중 하나는 다친다. 크고 작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내가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마음이 자꾸만 부서진다. 단단해져야 하는데 그럴 겨를도 없이 생기는 흠집들이 곧이어 산산이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 매일 내가 남길 유서에 한 줄씩 추가되는 기분, 우울과 상실, 후회와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휘감는 날이다. 그럼에도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 모든 감정은 또 무너진다. 이걸 단순하다고 해야 할까,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나를 살게 하는 건 결국 아이들이라는 걸, 너희가 없는 하루, 아니 1분 1초도 내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안다. 무수한 좌절 속에서도 “엄마 최고야”, “엄마 사랑해”라는 말들이 나의 내일을 또 살아내게 한다는 것도.


실컷 울며 글을 써 내려가다가 나지막이 속삭여 본다. 사랑한다고. 정말,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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