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법을 아는 아이의 졸업

빛나는 너를, 이제는 더 오래 바라본다.

by 온오프

두 번째니까 더 잘하고 싶었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단단히 마음을 준비했음에도 그 시작은 결국 눈물로 얼룩진 이별이었다.


“시우야, 엄마 동생 낳고 올게. 동생 데리고 올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고…”


다시는 못 볼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내 생을 돌아봐도 손에 꼽을 만큼 깊고 아리고 오래 남는 이별이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너의 어린 눈망울은 이 상황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저 나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엄마 빠빠, 빠빠”


겨우 열두 달을 살아온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는 길, 발걸음은 느릿느릿 해지고,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자꾸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너를 처음 품에 안았던 날, 처음 옹알이를 하던 순간, 처음 이유식을 먹던 날, 처음 걸음을 떼던 그때까지, 너의 ‘처음’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그리움을 주머니 속에 가득 구겨 넣은 채 나는 또다시 스스로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는 고통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처음과는 전혀 다른 결의 고통이 나를 집어삼켰고, 지옥 같은 시간의 끝에서 나는 또 하나의 생명을 품에 안았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첫째와의 만남과 달리 이미 알고 만나게 된 생명은 더 깊고 더 선명하게 다가왔고, 그래서 더 달콤했다. 정말 그 노랫말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온 신경은 이미 내 곁에 있었던 아이에게로만 향했다. 물론 둘째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랑의 크기와 방향이 조금은 달랐을 뿐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아이 둘을 혼자 키워야 했다. 그 시간은 가시밭길이라는 말로도 부족했고 하루하루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찢어내는 시간이었으며, 그 고통의 가장 깊은 곳에는 늘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끝없이 이어졌고 결국 나를 무너뜨리곤 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는 겨우 태어난 지 여섯 달 된 너를 형과 같은 어린이집에 보냈다. 보통은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지만 너에게는 그런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낯선 공간에서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도 너는 그저 방긋방긋 웃어주던 아이였고, 누군가는 말했다. 이 아이는 정말 사랑받을 줄 아는 아이라고. 그때는 그 말이 그저 좋은 칭찬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너는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아이가 아니라 사랑에 목마른 아이였다는 것을. 같은 간식을 주면서도 형에게 먼저 내밀었던 나의 손길,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형의 부탁을 늘 먼저 들어주던 순간들, 그 모든 작은 장면들이 너에게는 차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말하지 못한 서운함들이 조용히 쌓여갔을 것이고, 그 시간이 너를 사랑에 목마른 아이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아직도 울게 된다.


너는 늘 책 읽는 시간이 되면 선생님 무릎에 먼저 올라앉는 아이였다. 선생님의 말에 가장 크게 웃고 가장 먼저 반응하던 아이, 사랑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먼저 건네는 아이, 놀이를 할 때면 표현을 아끼지 않아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거워지는 아이였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행복할 수밖에 없었고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였다. 그게 너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아이였다.


그런 너에게 나는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 지금도 돌아보면 너 하나만을 위해 살아낸 시간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고, 어떤 순간이 너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을지 쉽게 짚어낼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아프게 한다. 그래서 너는 늘 나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아이였다. 이름을 떠올리면 코끝이 먼저 시큰해지는 아이, 미안함이 먼저 밀려오는 아이. 그런 네가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어린이집 졸업식은 따로 성대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간단하게 졸업장을 수여하고, 맛있는 간식 시간을 가지는 정도다. 그래서 나도 특별히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았고, 그저 아이 졸업 기념으로 단둘이 나들이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졸업식 당일 방문을 요청했다. 뭐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무슨 행사가 있나 싶은 마음으로 가볍게 방문했다.


원장님은 나와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리고는 커다란 꽃다발과 상장을 건넸다. ‘최고의 부모님 상’.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도우미를 구하면 나는 늘 두 발 벗고 나섰다. 그건 내가 봉사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아이에게 소홀했던 내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한 자기 합리화였을지도 모른다. 텃밭에서 무 뽑기 행사를 하던 날, 흙밭에 뒹굴며 아이들과 함께 무를 뽑았고, 배추를 수확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키즈카페로 나들이를 가던 날에는 마치 내가 광대가 된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 무수한 장면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우와, 엄마. 꽃다발 예뻐요.”

“정말? 엄마는?”

“엄마도 예뻐요.”

“고마워, 너무 고마워 우리 아들.”


한아름 꽃다발을 품에 안고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로 나눈 짧은 대화가 나를 또 한 번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너,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너,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너. 그렇게 아이의 졸업식을 보내고 나니, 내가 받은 이 과분한 상장의 이름처럼 살고 싶어졌다. 최선을 다하는 엄마로 살아왔다고 믿어왔지만, 이제는 그 ‘최선’을 넘어서 너에게 ‘최고의 부모’로 남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