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서 아이가 사라진 순간, 내 세상은 무너졌다.
우리 가족은 매년 고성공룡엑스포를 찾는다.
작년에도 발가락에 실금이 가서 통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탄 채로 갔을 만큼
아이들이 공룡에 진심이었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면
그 모든 불편이 아무렇지 않게 잊혔다.
그래서 올해는 꼭 건강하게 함께 가야 한다고
나는 수없이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올해는 특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했다.
작년에는 시부모님과 막내동생까지 동행해서
어른 다섯 명이 아이 셋을 돌봤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 셋에 우리 부부 둘.
경험상 어른 둘이 아이 하나를 보는 게 가장 이상적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1:1은 되어야 안전하다.
그러나 이번엔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없었다.
우리는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며 차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이 이제 제법 말을 알아듣고
상황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으니 괜찮을 거라 믿었다.
엑스포에 도착한 순간부터
아이들의 얼굴은 햇살처럼 환하게 빛났고,
다양한 체험을 하고 전시관을 둘러보며 즐거움이 이어졌다.
두 번의 퍼레이드까지 관람하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오늘은 무사히, 끝까지 행복하게 지나가겠구나’ 안심했다.
하지만 오후 네 시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덮였고,
사람들은 우산을 꺼내거나 비닐을 덮으며 일제히 짐을 챙겼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쉬워했지만 더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출구 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한쪽 귀퉁이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건
쓰러진 사람과 응급조치를 하는 모습.
방금 전까지 축제와 웃음으로 가득 찼던 공간이
빗줄기와 함께 순식간에 잿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그 풍경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낯설게 다가와,
현실이라는 감각을 잠시 잃었다.
나는 둘째와 셋째의 손을 꼭 붙잡고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편은 첫째와 함께 유모차를 반납하러 갔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남편이 내게 물었다.
“첫째는?”
“오빠랑 같이 있었잖아!”
“아니, 나랑 안 있었는데?”
머리가 하얘졌다.
아니, 머리가 하얘지기도 전에
나는 곧바로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다.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모조리 바닥에 내팽개치고,
아이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달려 나가는 남편을 보고
나는 둘째와 셋째를 부여잡은 채 반대편으로 달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 순간 내 마음을 설명할 단어는 없었다.
불안, 초조, 절망… 그 모든 단어로도 부족했다.
온몸의 세포가 무너져내리고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고통.
나는 그제야 ‘사람이 미쳐간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알았다.
나는 속으로 수십 번도 더 외쳤다.
“내 모든 걸 내줄게.
내 목숨도 기꺼이 바칠게.
그러니 제발, 제발...”
아이 둘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고
목이 쉬도록 이름을 불렀다.
주변은 빗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어지러웠지만,
내게는 오직 아이의 이름만이 들리고 있었다.
이러다 영영 못 보는 건 아닐까.
그 두려움이 몰려오자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머릿속은 새까맣게 타버렸고
이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방송을 요청해야 하나,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아무것도 판단되지 않았다.
“찾았다!!”
남편의 목소리가 빗속을 뚫고 들려왔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너져내릴 뻔했다.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참으려 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도 한참을 떨며 울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뒤 시간을 확인하니, 고작 5분.
짧다면 짧은 그 5분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영원을 건너온 기분이었다.
엄마라는 자리에 선 모든 이들에게 단언할 수 있다.
로또 1등? 일확천금?
어떤 행운보다도, 내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