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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오프조이 May 27. 2019

아르바이트 콜렉터의 삶.

가벼워지고 싶어요.

성인이 된 스무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 콜렉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홀어머니를 둔 장녀의 삶이란,

나의 아버지는 20년 전에 돌아가셨고. 당시 내 나이 12살이었던 것 같다. 장녀로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나에겐 식당을 운영하시는 홀어머니와 중증 건선으로 고생하는 남동생이 있다. 근 몇 년간 많은 것들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시작점은 대학생 때 '교환학생'에 합격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포기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성인이 된 20살 때부터 나는 '아르바이트 콜렉터(part-time Collecter)'였다.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등록금은 학자금으로 나라에 빌리면 됐지만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 생활을 해야 했다. 소시지 공장에서부터 택배 아르바이트까지. 홈플러스에서는 1년 정도, 그 이후에는 사무직 단기 아르바이트를 이어가며 개인 용돈을 벌어 생활했다. 틈틈이 했던 아르바이트를 세어보자면 약 스무 가지 정도였던 것 같다.


** 그동안의 아르바이트를 얼핏 세어보았다.(기억나는 선에서)

- 소시지 공장/설날 택배 배송/부가가치세 서류 보조/비즈니스 폼 홈페이지 제작/나이키, 퓨마, 남성복 전문, 여성 속옷, 아웃도어 의류 판매직/연구소 자료 취합/한의원 데스크/박람회 안내 및 통역/화장품 성분분석(재택)/보험회사 비서/블로그 바이럴/채점 아르바이트 등



#인생의 공백을 설명할 때면,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했고 취업 노선에 뛰어들었지만, 남들처럼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토익, 스피킹 시험, 한국사,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 등의 수험 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아르바이트를 했어야만 했다. (당시 토익학원은 종일반은 20-30만 원 정도 필요했고, 토익 시험비는 5만 원, 스피킹은 8만 원이 필요했다.)

간혹 면접에서 그동안의 나의 공백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질문과 조우할 때면 나는 너무 작아졌다. 시험비를 벌기 위해, 학원을 다니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나의 '인생의 공백'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질문이 힘들었던 이유는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어렵고도 힘들었던 삶이 타인에게 불쌍하게 비칠까 봐'였다.



#'아르바이트 콜렉터'의 장점은,

그럼에도 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면서 나름 내가 배운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사람과의 대화'가 어렵지 않다. 정말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회사원들, 마트의 아줌마들, 택배 기사님들, 공장 사람들, 프리랜서, 한의사, 보험 설계사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나누었던 여러 주제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낯선 이'와의 대화가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들과의 대화들이 내 안에 스며들어 타인들과의 대화에 언제든지 꺼내어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의 첫 시작은 늘 어렵고 두려웠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내 성격은 수업시간에도 손들고 질문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르바이트는 내가 모르는 것들의 집합체였고 나는 일을 배워야만 했고, 모르는 것들을 질문해야만 했다. 이제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처음부터 내가 모르는 것을 오픈하고 질문을 하는 것이 그 일을 더 일찍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방법이다.



# 나의 웃픈 에피소드 : 하루 만에 아르바이트 주급을 탕진한 이유.

취준생 때, 보험회사에서 비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오전에 보험 설계사들의 보험증권을 준비하고 팀 스케줄 관리를 하는 업무를 했다. 당시 나의 주급은 10만 원 남짓이었고, 당시 오픽(영어 스피킹) 시험을 약 8만 원 정도에 등록했다. 금요일 오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후 영어 스피킹 시험을 보러 갔었다. 수험생들이 하나둘씩 모여 스피킹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의 시험 자리는 맨 뒷자리였다. 시험은 시작되었고, 이상한 느낌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의 화면 속 에바(오픽 시험을 설명해주는 여자 캐릭터)는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다른 수험생들의 에바는 머리를 푼 상태였다. 그리고 에바가 샘플 질문을 하는데, 나에게 "오늘 날씨는 어때요?"라고 한국말로 또박또박 물어보는 것이다..... (이때부터 무엇인가 잘못됨을 느끼고)


오픽 스피킹(영어) 일 때의 에바입니다. (기억해두셔요)

 

 '화면의 오류인가, 내가 자리를 잘못 착석한 것인가' 의문이 들어 손을 들었다. 손을 들자 시험 감독원이 내 자리를 찾아왔고, "제 화면 캐릭터가 다른 사람들이랑 달라요!"라고 물었더니 시험 감독원은 나에게 "혹시 중국인이세요?"라고 물어왔다. "아니요, 전 한국사람인데요." 대답했고, 시험 감독원은 수험자 리스트를 확인하고는 나에게 "한국어 시험을 신청하셨네요."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홈페이지에서 언어 선택을 '한국어'로 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영어 스피킹 시험이었지만, Question은 한국어/영어 선택할 수 있구나.' 생각하며 호기롭게 클릭했던 '한국어 능력 평가 시험'이었던 것이다. 이 일을 듣고 친구들은 "왜 한국어 말하기 시험 AL(Advanced Low) 최고등급 받아오지"라고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 없었다. 나의 일주일치 주급이 하루의 실수로 몽땅 날아가 버렸고, 나는 다시 8만 원이라는 다음 주 주급을 미리 당겨 시험을 등록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어리석은 실수를 생각하니,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에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아까운 내 돈... 왜 에바는 머리를 묶고 있고 난리야!"







'가벼워지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스스로 가벼워지고 싶어서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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