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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네랑 Feb 10. 2024

Way Maker-4. 나의 육아일지

내 아이를 위해 방향을 틀다.

둘째가 만으로 3살이 되고 정부에서 엄마들의 사회생활 권장을 위해 15시간 무료였던 학비를 30시간으로 늘려주는 시스템이 제공되었다. 단 주당 16시간 이상 일하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조건이었다.


덕분에 full time으로 둘째가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둘째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순하게 혼자도 잘 노는 아이여서 그랬는지, 첫째 때 와는 달리 걱정과 미안함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만 세 살이 되고 영어를 1도 못하던 아이를 영국 어린이집에 보낼 때, 첫째도 그랬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한정된 데이터로 보편화시키려 했던 오류였고 그 둘의 기질이 다름을 간과했던 나의 안일함이었다.


내가 바빠서 놓쳤던 걸까?


난 우리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고 노력했다 생각했는데 나의 둘째는 생각보다 예민했고 자신을 불편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 아이는 항상 양보해 주던 형덕에 자기 걸 양보하는 법을 몰랐고, 하던 일을 멈추고 선생님말을 듣는 게 어려운 아이였다. 행동이 느렸고, 산만했으며 겁이 많았고 고집이 셌다.


어느새 이 아이는 학교 생활 적응 못하는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문제아라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학교를 픽업할 때마다 아이는 구석에서 울다 잠들어 있었고 매일 오줌 지린 바지가 봉투 안에 들려있고 얼굴엔 여기저기 스크레치가 나있었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해도 마음이 미어지게 미안하고 안쓰럽다.


학교 부속 어린이 집이었던 그곳의 담당 선생님은 무표정이었고 웃는 인상은 아니었는데, 아이 픽업하러 갈 때마다 그 표정으로 우리 아이가 잘못한 점들을 나열하였다.


외국인으로서 영국의 교육환경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어디까지가 부모로서의 권리이고 어디까지가 치맛바람인지 감이 잘 안 왔다. 내 아이를 위해 어디까지 내가 어필할 수 있는지 헷갈렸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이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데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 아이가 fussy 한(유난스러운) 엄마를 둔 아이로 인상을 남기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이야기할 때 내 아이를 마냥 옹호하는 것보다 내 아이를 위해 같이 노력하겠다는 자세로 내가 내 아이를 많이 신경 쓰고  support 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나와 같이 신경 써달라 계속 부탁했었다.


그렇지만 반복적인 부정적인 피드백에 계속 듣다 보니 지치고 스트레스가 되었다. 어느 날은 하도 답답해서 선생님에게 물었다.


"Is there anything he's done good today? " 애가 잘한 건 하나도 없냐고...

.

.

.


그녀는 언어 장벽을 이해한다 했다. 하지만 내가 본 그녀는 이 아이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를 돕기 위해 나눴던 방법들은 적용하지 않으며 매일 아이가 잘못한 부분들을 나열하는 그녀에 대한 나의 신뢰는 바닥을 쳤고 아이를 도울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할 줄 몰랐기에 사람들의 표정으로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했던 이 아이는 그 표현에 예민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나는 shift로 매일 다른 시간대의 일을 나가야 했고 아이에게 일관적인 훈육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남편이 있었지만 아이가 고집모드로 들어갈 땐 훈육을 해보지 않던 남편에게 이 아이를 이해하고 훈육하는 건 무리였는지 아이의 요구를 쉬이 들어줘버리곤 했다.


그뿐 아니라, 일을 하러 가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할 정도로 정신을 쏙 빼놓고 오니 집에 오면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 총동원해야만 애들을 케어할 수 있었고, 나의 피곤함은 육아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노력한다고 했지만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이미 나의 한계치를 넘었던 것 같다.


7~ 8개월의 시간을 선생님에게 부정적 피드백을 듣고 여러 상담을 하며 기다렸지만, 더 이상은 늦어지면 안 되겠다 싶었다.


또 다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한지 정해야 했다.

더 이상 학교만 의지 할 수 없었던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사회화라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아이를 누구보다 아끼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부모이니깐, 지금은 아이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엄마의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


Store Manager는 처음부터 현실적이지 못한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도 포기하는 게 싫었다. 실패라는 느낌이 들까 봐 두려웠고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한 뭔가를 한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뭔가 맞지 않는 단추임은 은연중에 계속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하는 게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억지로 끼워 넣은 단추는 결국 튕겨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Lunch time controler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았다.


이거다!


아이가 불안감이 높은 상태인데 엄마가 학교에서 보이면 조금이라도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학교에서 일하면서 학교 안 분위기도 살필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결정을 했고 바로 다음날 사표를 냈다.

마음이 되려 후련했다.

이게 맞는 거였다.


아이를 잘 돕길 바라셨을까...?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길이 열렸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다 좋으시니 오해없으시길.. 그 당시 Nursery(어린이집) 선생님도 누군가에겐 좋은 선생님이었을것이다. 단지 우리 아이를 위한 선생님은 아니었을뿐...


나중에 아이가 year 3 (만 7~8)쯤 되었을 때 나에게 말하기를 ,

 " 엄마 Nursery 다닐 때 그 선생님은 나를 싫어했어. 나를 보고 웃어주지 않았어. 그래서 슬펐어. "

.

.


엄마도 슬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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