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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네랑 Jan 19. 2024

Way Maker -2

나를 알아가다.

 2011년 1월


신랑에게 얘기하고 퇴사를 하였다.


그 맘때 나의 안일함은


 'Engineering job 쯤이야! 내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 일이니... 다른 거 해보고 안되면 돌아오지 뭐...' 정도였다...


 어쩌면 안일함보다는 자존심 센 현실 도피용 변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패션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용감히(?) 퇴사를 하였고, 한국의 도매사들을 컨택하여 레깅스 및 기본 패션템들을 떼어와 영국 ebay에 팔기 시작하였다.


'Ebay에 물건을 팔았다'

문구만 보면 간단하지만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일의 진행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업자등록을 위해 사업계획서를 써서 제출해야 했고 은행에 비즈니스 뱅크를 열기 위해 온갖 서류를 제출해야 했고, ebay에 비즈니스 계정을 오픈하여 사진 찍고, 안 되는 영어로 주저리주저리 list up 하고 customer service를 하며 리뷰 품앗이를 하여 리뷰를 쌓아 올려갔다.


발송, 고객관리, 재고관리, 회계관리 등을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다는 게 순간 내겐 도전이었다. 


긴장됐지만 재미있었고,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지만 열정적이었다.


내 능력 안에서 컨트롤 가능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다시 설레게 하였다.


사업 초반엔 무난한 것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고 과감한 컬러와 스타일의 옷들로 대량 오더를 했었고 한국의 small size와 영국에서의 small size 가 다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패착으로 재고가 쌓이기도 했었다.


여름시즌엔 다들 여행 다니느라 바쁜지 수입이 대폭 줄었고, 겨울시즌은 크리스마스 시기가 다가오면서 보온성 좋은 Thermal 레깅스들과 노르딕 패턴의 옷들이 크리스마스 점퍼와 함께 인기가 많아 순수익이 꽤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단기간에 ebay에서 100% positive 리뷰 축적하며 Top-rated Seller가 되어 있었다.


당시 리뷰들... 다행히 아직 계정이 살아있네요. ㅎㅎ


on/off-line 시장조사도 하러 다니며 바빴고 온라인 샵뿐 아니라 종종 오프라인으로 *local market에 *Stall을 대여하여 직접 팔기도 하였다.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었지만 열정 덕이었을까? 주인장 각오였을까? 나는 당당했고 사교적이게 코디도 해주며, 마치 시골장터에 트럭 몰고 나온 쾌활 아저씨들처럼 자신감 넘쳤더랬다.


경험하기 전까진 알지 못하는 육아의 세계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생기면 대~충 키우면 되지...' 했다.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워간다는 일이 어떤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고,

나의 행로의 큰 변수가 되었다.


사업시작 한지 얼마 안돼 첫째가 생기고 만삭의 몸으로 유모차 끌며 우체국을 왔다 갔다 하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아 맘은 급한데 잠투정 많던 첫째 아이는...

야속하게도 재울 때마다 기본 두 시간씩 걸려 애간장을 태웠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진 못하는 성격이라 아이 재운 후 책상에 앉아 그날의 일을 마무리하곤 했다. 너무 피곤하지만 과정이 나에게는 '나만의 시간'으로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밤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객, 재고, 회계관리 하였고

그러다 애가 깨면 재우다 같이 잠들기도 하고...

 

그렇게 사업 시작한지 3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둘째가 생겼다.  


둘째가 태어났을때 첫째도 아직 아기였다는걸 그땐 자주 잊곤 했다.. 왜 그랬을까..


성격상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도, 도움을 받는 것도 어려워하는 편이라 아이 분만부터 육아까지 혼자 감당하며 사업을 병행 한다는 건 역부족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욕심은 또 많아서 사업만큼 내 아이도 잘(?) 키우고 싶었다.

둘 다 놓치진 못하는데, 둘 다 내 뜻대로 되지도 않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참.... 치열했다.


(현실 육아) 체험 삶의 현장

온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손을 덜 타니... 매출에서 그 결과가 보였다. 

당장 내 눈앞에 두 살 터울 남아들을 돌보기에도 벅찼고 말 그대로 손 2개, 몸뚱이 1개 밖에 없다는 사실이 살면서 처음으로 부족하고 불편하다 느꼈다.


*Semi-detached house에 살던 나는, 2층 계단을 남자아이 둘 안고 오르락내리락하자니 팔다리가 아팠고 (*bungalow스타일로 너무 이사 가고 싶었다) 우체국 가는 빈도 수도 줄어들었다.

퀵배송을 자랑하던 나의 샵은 영국의 여느 샵들마냥 느긋해져 갔다.


결과적으로 고객응대도, 세일즈 처리도 smooth 하지 않았고, 특별한 마케팅이나 이벤트 없이 고객이 알아서 찾아와 주길 바라는 안일함은 안정적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특히 옷 사업이다 보니 시즌별 재고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시장조사 및 오더 넣기 위한 시간 조절은 풀타임 육아맘의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나를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도 잘 못하는 쫄보였고,

뭔가를 과감히 내려놓지도 못하고 내 손에 다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 욕심쟁이였지만,

에너지가 쉽게 바닥나는 본투비 저질체력의 소유자였다.


전적으로 사업에 집중할 수 없었고 사업에 대한 욕심이 내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둘 중 하나를 포기 해야 한다면 육아는 절대 그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특히 이 영국 땅에서 엄마찬스 없이 사교육에 아이를 맡긴다는 건 나에겐 사업보다 더 큰 도전이었고 두려움이었다.


여담으로..

영국의 어린이 집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아이를 돌봄에 있어 그 기준이 다르다 해야겠다.


영국의 교육은 'Health&Safety 근본아래 한 아이가 커서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다'에 focus 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만 3살 된 아이들에게 일일이 달라붙어 외투를 입혀 주거나, 그 아이를 위해 가방을 챙겨주거나, 줄줄 흐르는 콧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물론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할 수 있게 방법을 알려주는 정도의 도움으로 제한된다.



영국학교에서 일하면서 느낀 바,  아이가 자람에 있어 독립성/사회성의 기초 교육으로 너무도 중요한 교육의 시작이었음을 배운 부분이었다. 못하고 어리기만 할 것 같은 내 아이들은 clear 한 지도와 서포트 안에서 못할 것만 같던 일들을 어느 순간 스스로 다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고 미안한지...

'도와준다'는 명목하에 어른들이 아이들의 배울 기회를 빼앗고 있었던 것 같아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 러. 나.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나의 육아 마인드는 아이들의 콧물을 닦아주고 옷을 하나하나 입혀주며 내 아이만 바라봐 줄, 내 마음에 콕 드는 사설 어린이집(Nursery)를 찾고 있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깨닫고 영국문화를 받아들이기로 타협하면서 새로운 기준으로 다시 visiting 을 시작하였고 그 중 제일 분위기 밝은 곳으로 선택하였다.


'손이 부족'하고 나의 저질체력으로 인해, 만 18개월이었던 첫째 주중 15시간 파트타임으로 Nursery(어린이집) 에 보내게 되었고, 둘째는 만 세 살이 되어 Nursery (학교 소속 어린이집)갈 때까지 나와 함께 하였다.


만 세 살부터는 정부지원을 받지만 그전에는 사비가 꽤 들기에  첫째를 풀타임은 보낼 수 없었고, 있었다 해도 보내고 싶진 않았다. 파트타임으로 보내는 것도 미안하던 때라 풀타임은 옵션에 없었다.


만세살 전에 다녔던 유아원. 그래도 좋은 보육원분들이 많아서 감사했음.

세상의 모든 맘들 RESPECT!


육아의 장벽은 모든 엄마들이 느끼듯 높고 멀었다.

직장맘이든 풀타임 육아맘이든

세상의 모든 맘들은 열심으로 일하고 최선으로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항상 미안하고 죄인이 된다.  


뭐 하나라도 잘하고 싶었는데...

육아에서 잘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묘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깨달았다.


아!

나는 멀티 플레이어가 아니였구나...

...






*local market :  영국에는 지역별로 로컬 마켓들이 활성화돼있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런던의 코벤트 가든도 로컬마켓의 한 종류라 하겠다. 코벤트 가든처럼 1년 내내 여는 마켓도 있고, 주말이나 주중 특정일로 정기적으로 여는 곳도 있고, 이벤트성으로 팝업 마켓들이 있기도 하다. 내가 다닌 곳은 주로 집 근처 정기적으로 오픈하는 로컬 마트들 위주였다.


 *Stall :  로컬마트에서 본인의 테이블을 가져와 셋업을 하기도 하고 마켓 진행자에게 일정 기간별로 스톨- 테이블을 대여하여 세팅하기도 한다. 자릿세만 내거나 테이블대여비시 그 가격을 포함하여 일당 혹은 주당으로 대여한다.


*bungalow :  보통 다리가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위한 구조로 단층이 기본 구조이다. 오래된 집이 많지만 요즘에는 정부 허락하에 많이들 개조하여 2층으로 올리는 추세이고 내부공사까지 깔끔하게 해 놓은 집들도 많다. 보통은 오래된 집이 많지만 옛날 집들이 가든이 넓어 소유지가 넓은 편이고 내부 상황에 따라 가격 차이가 다를 수 있다.


*Semi-detached : 단독 주택을 반으로 나눠 두 집이 붙어있는 형태이다.  양쪽 집의 한족 면이 붙어었다 하겠다. 하여 층간 소음보다 벽간 소음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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