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지나간 것들의 따뜻한 흔적

by 온새미로

그리움은 시간을 거슬러 오는 감정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들고,

고개를 뒤로 돌려

이미 지나간 무언가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 자리에 없는데,

지금 여기에 없는 그것이

이토록

마음을 흔든다.


그리움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 진하다.

바라볼 수는 있지만,

손에 잡을 수는 없기에,

더 오래 남는다.


그리움은 따뜻한 감정이다.

아픔이 섞여 있긴 하지만,

그 아픔마저도

사랑했던 시간의 증거라

함부로 지울 수 없다.

차라리 그 따뜻한 통증을

그리움이라 부르는 게

조금은 낫다.


기억은 흐릿해지는데,

감정은 선명해진다.

그리움은 그런 방식으로 다가온다.

어느 날 갑자기,

익숙한 냄새 하나에,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구절에,

손끝처럼 스치는 바람에 실려

마음 한가운데 도착한다.


그리운 건 무엇일까.

사람일까, 계절일까, 풍경일까.

아니면 그때의 나 자신일까.

사실 우리는 대부분

'그때의 나'를 그리워한다.

조금 더 순했고,

조금 더 믿었고,

조금 더 뜨거웠던 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돌아가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 장면들은 이상하게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정확한 대사도 없고,

분명한 배경도 흐릿하다.

그런데도 마음속 어딘가를

조용히 울린다.


그게 그리움이다.

말로 설명되지 않고,

이유를 묻기도 어려움 감정.

그저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것처럼

마음에 머문다.


그리움은 말수가 적다.

함부로 털어놓을 수 없고,

아무 말로도 위로받기 어렵다.

그래서 그리움은

혼자 있을 때 가장 깊어진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게 된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그때 나를 기억하긴 할까?"

"그 장면이 나만의 기억은 아니었기를."


그리움은 원망과 다르다.

지나간 것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을

조금 더 오래 품고 싶음 마음.

그 안에서 무엇이 내게 남아 있었는지를

천천히 확인하는 일이다,


가끔은 그리움이

자기 위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잊지 못 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고,

그 감정 하나가

텅 빈 하루를 버티게 만든다.


그래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무엇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니까.


그리운 사람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리움이 깨질까 봐.

그 감정을 꺼냈을 때

상대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봐.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그리움을 마음에만 두고 산다.


그리움은 어쩌면

사랑보다 오래 남는다.

사랑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는 끝나기도 하지만

그리움은 시작도 끝도 없다.

그저 흐른다.

마음속 시간의 강을 따라

계속해서 흘러간다.


사랑은 결국

수많은 그리움을 품고 살아간다.

돌아갈 수 없는 집,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

그리워도 닿을 수 없는 거리.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가끔은 말하지 못한 말이 그립다.

그때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왜 웃었을까.

왜 울지 않았을까.

왜 먼저 손을 잡지 못했을까.

그 모든 '하지 못한' 말들이

그리움이 되어,

밤마다 마음에 다시 울린다.


그리움은 과거만을 향하지 않는다.

때로는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한

막연한 기다림이기도 하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

아직 겪지 못한 장면,

그 낯선 풍경을 미리 그리워하는 마음.


그러니까 그리움은

시간이라는 직선 위에 고여있는 감정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오가는

감정의 안개 같은 것이다.


그리움이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모든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깨달음은 슬프지만,

동시에 삶을 사랑하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리운 장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움은 마음속 작은 서랍 하나에

조용히 접어 넣어야 하는 감정이다.

함부로 꺼내면

너무 많은 기억이 쏟아지고,

너무 많은 감정이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그 서랍을 연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장의 장면을 꺼내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 장면 속엔

우리의 가장 찬란했던 날들이 담겨 있고,

가장 순수했던 웃음이 있고,

가장 아팠던 마음이 있다.


그리움은 잊지 못하는 감정이 아니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 마음,

지나갔지만 아직 머물고 있다고 느끼는 마음.


그래서 나는

그리움이 있는 사람을 믿는다.

그들은 쉽게 떠나지 않고,

쉽게 미워하지 않고,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리움은 단단한 감정이다.

부드러워 보이지만,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다.


사랑이 시작이라면,

그리움은 그 사랑이 남긴 흔적이다.

그 흔적은 아무도 모르게

가슴 한가운데에 남아

때때로 뜨겁게, 때때로 아득하게,

삶을 울린다.


지나간 것들은 모두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우리 곁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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