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과외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과외중개사이트에 이름을 올렸다.
대학생으로서 가장 가성비 높은 알바였다.
주요과목은 영, 수였고, 대학생활 내내 다양한 학생들을 맡았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진 않을 수 있다.
학교 근처 어느 계단 많은 주택에 살던 아이도 있었고, 회기역 근처 빌라에 살던 아이도 있었다.
건대역 비싼 아파트 꼭대기에 살던 아이도 있었고, 잠실역 근처 아파트에서 늦둥이 아기 동생과 함께 살던 아이도 있었다.
그 중 나의 실패담으로써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를 꼽자면,
잠실 새마을시장 골목에 어느 주택에 살던 중학생 여자아이였다.
주로 고민은 영어, 수학이지만,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전반적인 공부습관을 도와달라고 하셨다.
첫날은 아이와 영어, 수학을 공부하고 나왔다.
그런데 두번째 가던 날, 어머님께서 내가 맘에 든다면서 국어, 과학도 도와달라고 하셨다.
국, 영, 수, 과. 이렇게 4과목을 하면 수강료는 많이 주시겠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영어, 수학만 해도 일주일에 2시간씩 2번은 하는게 보통인데... 국어, 과학까지 하면 수업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왔다.
"저희 애는 다른 학원은 안 가니까 선생님 시간에 다 맞출께요"
과목마다 각각 다른 학원을 가느니 전부 한 사람에게 맡기는게 편하다는 생각이셨다.
하지만, 나는 국어, 과학은 가르쳐본 적도 없고, 더군다나 지금 하고 있는 다른 과외들 때문에 시간이 영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어떻게든 안되겠느냐며 매달리시는 걸 거절하지 못했다.
결국 승낙을 했다. 지금 같았으면 국어나 과학에 대한 시중 문제집 중 아이의 수준에 맞는 걸 고르면 되었다. 그런데 당시 나는 불필요한 완벽주의 때문에 모든 교재를 내가 만들려고 했다. 영어나 수학은 내가 만들 수 있어도, 처음 가르치는 국어, 과학을 교재까지 만들려고 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교재가 학생에게 도움이 될리도 만무했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인터넷을 뒤지며 밤새 국어, 과학 교재를 만들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4번을 그 집에 가서 수업을 했다. 결과는 예상하시는 대로다. 나는 곧 스스로 지쳐서 과외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대학생으로서 첫 학기, 아무리 놀지 않고 과외알바만 한다고 해도, 나에게도 시험이 있고 학교과제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해내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적당히 시중교재를 쓰면서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고, 가르칠만한 역량이 안되면 맡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데, 당시에는 나는 너무 미숙했다.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 교훈을 배웠음에도 20대의 어리숙한 나는 이후로도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또 한명 기억나는 아이는 건대입구 근처 비싼 아파트 42층에 사는 중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아버지가 과외선생을 구하면서 우리 학교 앞에까지 오셔서 나를 면접을 보셨다. 아이에 대한 욕심이 상당하시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아이는 좀 맹한 구석이 있었다. 본래 똑똑한 아이였을 것 같은데, 수업시간 내내 어지럽고 졸려 했다. 공부에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어느날 수업에 집중을 못하길래 잠시 환기도 시킬 겸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몸이 어디가 아픈건지, 잠을 못자는지. 몇번의 수업을 지난 후에 나와 친해진 시점이었기에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의 부모님 두 분은 강남에서 유명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였고, 이 아이의 남동생도 공부를 꽤 잘했고, 친척들도 모두 의대에 다닌다고 했다. 이 부모님은 큰 딸도 꼭 의대에 보내고 싶은 욕심이 있으셨다. 원래는 그렇게 부유하진 않았지만 부모님이 열심히 돈을 모으셔서 지금 이 곳에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사를 오자마자 너무 멀미가 나고 매일 머리가 아팠단다. 엄마한테 이야기하니, "네가 부족한 줄 몰라서 그렇다. 이 정도 집에 사는게 얼마나 대단한 건줄 아느냐. 핑계대지 말고 공부해라"고 하셨단다.
나도 이 집에 처음 오던 날, 엘리베이터가 워낙 빨라 멀미가 났다. 그리고 아이 방에 처음 들어왔는데 정면에 벽면 하나가 통창이었다. 안전을 위해 열리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 창문을 통해 건대 호수가 보였고, 아득히 멀리 사람들이 보였다. 어지러웠다. 그 통창 바로 옆에 아이의 침대가 있었다. 자다가 힐끔 보면 42층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조금 예민한 아이라면, 충분히 머리가 아플 것 같았다. 아이의 마음이 공감이 되었다.
당시의 미숙한 나는 오지랖을 부렸다.
아이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아이가 진심으로 예민하고 불편감이 있는 것 같으니 관심있게 봐달라고...
그리고 나는, 그 날 부로 잘렸다.
그 학생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곳에 살면서 어지럼증은 해결이 되었을까.
아이에게는 과외선생님보다 부모님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에게 무시당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아이를 생각해서 오지랖을 부렸고,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었다.
과외 실패담의 교훈이다. 내 능력 밖의 일은 거절하자. 그리고 오지랖 부리지 말자.
지금도 과외를 하고 있지만, 학생의 이야기를 전부 부모님께 전달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때로 학생들은 부모님과 마음의 문을 닫고,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문을 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학생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개 과외선생일 뿐인 나의 역할의 경계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