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다가구 라이프
집주인은 우리가 사는 다가구 빌라의 맨 윗층에 살고 있었다. 명절마다 선물세트를 사다 드렸고, 아이와 함께 주말농장에서 기른 상추를 나눠드렸고, 이웃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다.
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집주인 꼰대 노부부는 자신들이 일이 안 풀리는 탓을 우리에게 돌리는 것 같았다. 다시는 SH를 안 할 거라는 둥, SH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둥, 걸핏하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이 집에 살면 내집마련을 꼭 하게 될 거라던 이전 임차인의 말이 생각났다. 나도 내집마련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 때 가지고 있던 청약통장이 생각났다. 대학생 때 우연히 창구직원의 권유로 2만원을 넣고 만들어두기만 했던 통장이었다. 지연된 금액과 기간을 채우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한번에 10만원씩 수십번에 걸쳐 나누어 입금했다. 그리고 지연기간이 채워지길 기다렸다.
꼰대 임대인의 집에서 산지 4년이 다 되어가던 즈음, 아이의 초등학교 문제로 이사를 가야했다. 만기 날짜는 4월말, 학교 입학 때문에 이사를 2월말로 잡았다. 만기 전에 이사를 가면 복비를 임차인이 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재계약도 한번 했고, 이사 날짜에 대해서는 2달 정도는 좋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니 큰 문제가 되진 않을거라고 인심 좋은 부동산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꼰대 임대인 부부는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들이었다.
이사가는 당일, 꼰대 노부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이삿짐 센터에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다. 남편과 아이는 따로 놀러가도록 내보냈다. 임대인으로부터 몇번 전화가 와서 복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들에 비해 말발이 약했다. 부동산과 이야기하시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삿짐이 마무리 된 후, 잔금을 받으러 부동산에 갔을 때, 임대인 할머니와 부동산 사장님만 계셨다. 상황을 보아하니 부동산 사장님이 중간에서 애를 많이 쓰신 것 같았다. 임대인 할아버지는 나에게 복비를 꼭 받으라고 노발대발했고, 그 성격을 아는 임대인 할머니는 내가 복비를 냈다고 거짓말을 했단다. 그 과정을 부동산 사장님이 도와주셨다고 한다.
어쨌든 상황이 종료됐으니 감사했다고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SH가 공동임차인으로 계약이 되어 있고, 내가 이사가는 다음 집에서도 SH가 보증금을 지원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먼저 반환 확인이 되어야 한단다. 그 일을 임대인이 직접 은행에 가서 SH계좌로 4500만원을 입금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 뱅킹으로 5분이면 끝날 일을, 이 꼰대 할머니는 나와 함께 은행에 가자고 했다. 내가 받은 지원금이니 내가 직접 입금하라며. 이삿짐센터는 짐을 싣고 출발했고, 내가 빨리 다음 부동산에 가서 잔금을 넘겨야 이삿짐이 들어갈 수 있었다. 마음이 급한데 꼰대 할머니와 함께 15분을 걸어서 은행에 도착했고,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조급한 나와 달리, 꼰대 할머니는 여유로웠다. 은행에서 기다리면서 아마도 같은 교회에 다니는 것 같은 지인을 만났다. 꼰대 할머니는 그 지인과 Sh에 대해 이야기했다. 번거롭다고, 귀찮다고, 다시는 Sh임차인 안 들일 거라고.
순서가 되었고 임대인은 직접 나에게 전표를 적어 Sh에 송금을 하게 했다. 인터넷 뱅킹이었으면 무료였을 것을 창구에서 하는 바람에 수수료가 나왔다. 임대인은 나에게 그 수수료를 내라고 했다. 그리고 급하게 은행문을 나서는데 나를 붙잡고 마지막 한 마디를 했다.
"문 앞에 그 쓰레기 버려놓은 거 있더라. 그거 그냥 안 가져가, 스티커 붙여서 신고해야돼."
"그래요? 그럼 제가 집에 가서 번호표 뽑아서 내일 와서 붙여 놓을께요."
"뭘 번거롭게 또 와. 바쁘다면서. 내가 할께. 한 5천원 주고 가."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하는지. 그리고 그 수수료는 비싸봤자 2천원 정도일텐데...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이 꼰대 할머니와 1초도 더 말을 섞기 싫었다.
지갑에서 5천원을 꺼내 쥐어주고는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아 탔다.
전화에서는 불이 났다. 부동산에서는 언제 오냐고, 이삿짐아저씨는 언제 들어갈 수 있냐고...
점심밥도 못 먹고 택시로 달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번에 새로 Sh지원을 받는 동안 꼭 내집마련을 하고 말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