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Part 3. 내 집 지키기

by 유혜

얼마나 오랫동안 공실로 두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거주자가 없을 때 곰팡이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차인 이사 다음날 탄성공사를 했다. 탄성업체가 시공 전 현상태를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사진을 본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곰팡이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실외기실을 열어보고는 매수를 반대했다던 그 신혼부부의 부모님이 이해가 되었다.


탄성상태를 점검할 겸, 빈 집을 찾았다. 그리고 드레스룸 창틀에서도 곰팡이 자국을 발견했다. 실외기실과 (욕실 옆) 드레스룸은 곰팡이가 잘 생기기 때문에 환기를 잘 해줘야 했다. 임차인은 자신이 새 집에 많이 살아봐서 서 그런 건 잘 안다고 했었다. 이 임차인은 정말 잘 아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의도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관리를 신경쓰지 않았던 것 뿐이었을까.


마루 상태도 확인했다. AS센터에서는 마루의 가운데가 변색되었다면 자재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만, 가장자리부터 변색되었다면 물기에 의한 것(거주자의 과실)이라고 했다. 가장자리부터 변색된 마루가 8장정도 되었다. 열쇠를 돌려주러 집을 방문한 B부동산에게 마루를 보여주었다.


마루를 확인한 B부동산은, 이 변색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 본인이 알 수 없고, 이 곳에는 소파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임차인 과실이 아닐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임차인이 그렇게 상식이 없는 분은 아니니까, 한번 연락해 보세요."


이 말을 나는 또 순진하게 믿었고,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나는 곧바로 AS센터에 연락하여 마루보수공사를 문의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다음 임차인이 집을 보러오기 전에 해결하는게 좋았다. 이전 임차인에게는 연락을 미루었다. 다시 연락하기 껄끄러운 일이기도 했고, 혹시나 임차인의 과실이 아닌 자재문제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일주일 후 마루 보수업체에서 와서 보고는, 이건 100% 확실하게 물을 쏟아서 생긴 변색이며, 임차인 과실이라고 했다.


나는 임차인에게 자신있게 연락을 했다. 당연히 임차인은 화를 냈다.


"잔금날 직접 안 오셨잖아요. 부동산에 다 맡기셨잖아요. 부동산에서 못 본건 그냥 감안하는 거에요. 보증금 돌려준 다음에는 끝난거라고요. 이사하고 일주일지나서 연락하시는 이유가 대체 뭐에요? 앞으로도 하자 나오면 또 전화하실거에요?

진짜 나쁜 임차인 같았으면 위로금도 달라고 했을거에요. 저희가 그 집에 살면서 as받아준것만 몇건인지 아세요? 집보여주느라고 고생한건 생각 안하세요? 그런걸 알면 저희한테 이런 전화 못 하시죠. 이건 실례에요. 자기 욕심 때문에 사람 내쫓아놓고! 기분 나쁘니까 전화하지 마세요!"


임차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B부동산을 믿고 전화한 내가 순진했다. 하지만 억울했다. 조목조목 설명하고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사날 집주인과 마주친 적이 없다. 다 부동산에서 훼손부분을 체크했다. 보증금 돌려주면 끝난거라는거 안다. 하지만 B부동산은 임차인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B부동산의 책임회피였을까? 솔직하게 나에게 마루훼손을 못 봤다고, 그러나 보증금 돌려줬으니 그냥 넘어가야된다고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내가 부동산을 탓했을까? 어차피 사례도 안 받고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이사 일주일이 지나서 말한건 마루하자업체를 기다리느라고, 혹시나 임차인 잘못이 아니라 자재문제일수도 있어서 그랬던거고. 이사비,복비는 받고 위로금은 안 받겠다고 본인들이 먼저 말했던 거고. As받아준 건 고맙지만 자신들은 주로 새집에 살아서 as잘 받아주겠다고 했었고, 사실 대부분의 as는 내가 다 받아둔 상태였고. 정작 필요한 골조 as는 짐 옮기기 힘드니 본인들이 이사나가면 하라고 했었고.


집 보여주느라 고생한건... 임차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을까. 그동안 A,B,C부동산의 정치싸움과, 임차인이 집을 안 보여준다는 이야기와, 임차인에게 무례했다는 C부동산을 손절한 일을 알고 있을까?

모든걸 떠나, 내가 임차인이었어도 저렇게 말했을까. 그동안 나도 임차인으로서 수없이 내 집을 보여줬지만 부동산과 시간협의하면 얼마든지 저녁에, 주말에, 조절하며 할 수 있는데.. "C부동산에서 너무 기분 나쁘게 해서 C부동산에는 집 보여주기 싫다"는 말을 임차인이 해도 되는 말인가?


마지막으로, 자기 욕심 때문에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이 임차인은 자신들이 원하는 33평 넓은 집을 찾아 이사할수 있었던 것이, 내가 자기들 일정에 먼저 맞춰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급하게 돈 필요하다는 사람이 가격을 올려 월세로 내놓은 것을 보고 기분이 언짢아졌을지도 몰랐다. 내 자세한 사정은 모른채.


내가 매도를 포기한건 아니었다. 임차인이 집을 안 보여준 것(+환기를 안시켜 곰팡이가 심각하게 번진 것)이 한 몫을 해서 매도가 늦어졌고, 우리는 서울에 비싼 월세를 계약했고, 마침 부동산 정책이 나와서 전세낀 매수가 불가능해졌고, 그래서 경기도 집을 굳이 헐값에 낮춰가며 팔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월세를 같이 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난, 임차인의 일방적인 비난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 때, 식탁 위에 병원에서 준 약이 놓인 것을 보았다. 마음이 많이 불안하거나 다운되거나 힘들때 먹으라고 병원에서 추가처방한 약이었다. 그 약을 삼켰다. 갑자기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차올랐다. 잠시 후, 숨이 안정되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두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어."

그제서야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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