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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Apr 12. 2017

목수는 진행 중

아. 재밌습니다. 재밌어요.


 나는 요즘 나무만 보인다.

 토, 일요일 목수일을 배우고 저녁 늦게 돌아오면. 그다음 월요일은 아예 아무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

 오전에는 퍼져 자야 하고. 쉬엄쉬엄 집안일을 하며 체력을 회복한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부분 나무 생각을 한다.

 나무색이 궁금해서 가구점을 찾아다니며 맘에 드는 가구의 나무종을 물어보곤 한다.

 같은 오크종이여도 어느 가구는 하얗고 어느 가구는 엔틱 느낌으로 매우 다운된 브라운색을 띠기도 한다.

 기분 좋은 나무색을 띠기도 하고. 어떤 건 매끈하고. 어떤 건 거칠다.

 같은 나무 종인 데도. 나무마다 색과 생김새가 다르고. 마감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달라진다.

 

 가구를 살듯 가장해서 들어갔다가. 이런저런 질문이 많아지면 매니저급-아마도- 직원이 나와 안내를 해주는데. 내가 계속 나무 종에 대해 관심을 두며 가로 새로 길이와 높이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더니 몇몇은 뭔가 눈치를 챘는지 귀챦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가구디자인 관련 앱을 뒤지다 보면 맘에 드는 구석이 있는 가구들이 눈에 띄고.

 저장해 두었다가.

 그중에 맘에 드는 구석을 적용해서 디자인을 해보기도 하고.

 그럭저럭 마무리가 된 디자인의 가구의 모형을 제작해본다.

 두께 5미리 정도의 하얀 하드보드지(스티로폼 같은)를 10분의 1 크기로 칼로 잘라낸다.

 마루탁자를 제법 크게 만들고자 해서 상판 크기를 140*80 크기로 해두었다.

 다리는 2.5센티 정도로 하고 이중각을 두어 날렵하되 튼튼하게 중심을 엑스자로 잡아주고.

 상판도 2.5센티 정도로 자르고 가장자리에 약간의 라인을 넣었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두께도 살짝 날렵하게 깎아주리라 생각했는데 실물 제작을 하고 있는 요즘. 이게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직각으로 딱딱 떨어지게 하는 게 만들기에 가장 수월하지만.

 나름 생각해둔 디자인의 느낌을 살리고자 선생님을 설득하며 내 디자인대로의 가구가 나오게끔 각을 잡아 나무를 정리해두었다.


모형이 다 찌그러졌네요..
요런 느낌으로다가..(제 작품 아닙니다.흠흠.)


 우선 상판으로 쓸 나무를 대패질하고 잘라 집성(나무를 이어 붙이는 일) 직전까지 정리해서 넣어두었고.

 이중각을 잡아 어긋나게 세워둘 다리 4개를 반듯하게 크기 맞춰 재단해두었다.

 상판의 뒤틀림을 잡기 위한 엑스자 모양의 프레임도 암수 맞춤을 깎아 맞추어놨다.

 

 


 첫 가구이니만큼 욕심을 버리고 심플하게 디자인했고.

 여러 번 고치면서 모형도 세 번이나 제작해봤더니 머릿속에 확실한 윤곽이 잡혀 진도가 쭉쭉 나간다.

 이번 주 주말에 가면 다리 네 개와 프레임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고.

 상판 집성까지 마쳐서 대패질로 면을 고르고 라인을 잡을 생각이다.

 

 

 계획대로 첫 가구가 마감되어진다면.

 사다리 책장을 하나 더 만들어볼 생각이다.

 나무를 살 때 계획한 가구의 1.5배 정도를 시켜야 한다고 해서 실패 없이 진행한다면 나무가 넉넉할 줄 알았건만.

 막상 수압대패와 자동대채(나무의 밑면, 윗면을 기계로 다듬어 깎아낸다)로 나무를 다듬었더니 3.2센티 정도의 두께였던 나무가 2.6센티 정도로 얇아져버려 허공에 날아간 나무의 양이 생각보다 엄청났다.

 실패 없이 재단을 했건만 남은 나무의 양이 너무 작아 10재 정도 추가 주문을 해두었다.


요런 느낌으로다가. 물론 제꺼 아니겠죠..
대략의 이미지를 잡아 모형..  저 치수를 잡아내느라 실물크기도 대충 짐작하며 정해가야 합니다..


 모형이 아직 심플해 보이지만.

 몇 번의 수정 후에  다듬어진 대략의 이미지다.

 키는 170. 앞길이는 50. 옆 길이 하단은 40.




맨날 나무 보러 가구 보러 다닌다는 내 말에 언니가 책 두 권을 선물해줬다.



 받은 날 저녁에 책을 어루만지며 앉은자리에서 다 봤다.

 일본 목수들의 작품이 잔뜩 실려있었는데 내가 추구하는(뭐 아직 이런 단계는 아닙니다만) 디자인과 통하는 부분이 많아 두근두근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구란.

 생활. 삶 속에서 쓰이는 가구.

 작품으로써의 가구보다는 쓰이는 가구.

 투박하지 않고. 나무의 결과 색이 살아있는.

 인위적이지 않은 약간의 곡선이나 각이 있고.

 손으로 쓰다듬고 싶어 지는 애착이 갈만한 것.

 원목의 느낌 성질 그대로.

 여름이면 휘어지고 늘어질지도 모르나 겨울이면 다시 수축되어 제자리를 찾기도 하는.

 숨 쉬는 그대로의 나무로 만들어진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고 싶다.

 

 

 

 나란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 사람인지.

 머리에 '나무'가 온통 들어와서.

 영화를 봐도 나무로 만든 가구가 보이고-미녀와 야수를 봤는데 그 뒤에 살아 움직이는 가구들이 좀 거슬리더라는- 근사한 서점에 가도 진열대로 쓰인 가구들이 보인다.

 '월넛'아이스크림으로 살까..? 하는 물음에.

 "어? 월넛? 나무 맛 아이스크림? "이라는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월넛은 목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종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호두나무죠..)

 

 

 암튼. 재밌는데.

 아직 엄청난 굉음을 내는 기계들은 다룰 때마다 긴장이 되어 콩닥거린다.

 나무가 매끈하게 깎여 나오는 걸 보면 짜릿한 성취감 같은 게 느껴져 흥분되기도 하지만.

 

 

 아참. 제가 며칠 전에 사주를 봤었는데.

 저한테 맞는 직업 중에 목수와 작가가 있다는군요.

 허허허허허.

 그 아저씨 얼굴도 잘 생기셨더만. 

 사주도 잘 보더라고 소문에 소문을 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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