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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Mar 09. 2016

우선 <장진우 식당> 그 외 몇 권

책은 재밌는데 나는 우울해요


우선 장진우 식당.

 

"나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문제아로 찍혀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사람들이 '장진우랑 놀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지내셔야 했다. 하지만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신 적은 한 번도 없다. 기가 너무 세서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고자 하는 건 한다, 안 시켜주면 안 좋아진다, 이걸 어머니도 아버지도 알고 계셨다. 사춘기가 찾아온 중학교 때 퇴학을 당했다. 그때 아버지는 나를 서울로 유학 보내시며 이제 혼자의 삶을 살라하셨다.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부모님은 내가 국악 하다가 관두고, 스튜디오를 차린 것도 잡지에 나오고 나서야 아셨다. 사진가에서 전업하여 식당을 오픈하는 것도 몰랐다."

 

 "피리 불다 사진 찍다 식당을 차린 나부터도 그렇지만, 내 주변엔 그렇게 자기 길을 바꿔온 사람들이 많다. 공학과 출신이 꽃을 만지기도 하고, 디자이너가 설거지 아르바이트부터 다시 시작하고, 민주당 비례대푠데 막걸리 좋아해서 막걸릿집을 차리고, 구글에서 일하다 그 막걸릿집 주모로 변신한 사람도 있다. 요즘은 장래희망이란 말도 사치일 만큼 처음부터 잘 다져진 길만을 찾는 분위기가 많으니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고르는 사람을 더 특이하게 여긴다. 그길은 거칠지 않냐고, 실패할까 봐 두려움은 없냐고. 그렇지만 용기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고 두려워도 계속하는 것이란 얘기가 있다. 용기가 있는 거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고. 두려움을 견디면서,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게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식당 여러 개 차린 사장님이라길래 나는 그가 좀 감각 있고 센티멘탈한 예민한 사내일 줄 알았는데, 그는 90킬로그램의 거구인 데다가 몹시 엉뚱하고 충동적이나 또 의외로 착실하게 시간을 꾸리며 사는 사람이었다. 책도 잘 쓰고, 내공도 꽤 있어 보인다. 강연도 다니고, 본인의 성공을 바탕으로 창업스쿨도 진행하며 제자들을 실질적으로 돕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국악을 전공했었고, 문제아였지만 인복은 많아 보인다. 책도 좋아하고, 음악에 예민하며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

 본인의 취미나 취향, 좋아하는 사람, 전시공간, 책들 이야기도 하고 있는데 대체로 흥미로워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음식 레시피도 종종 소개하고. 참. 아버지 회갑연을 직접 준비하며 '서울 잔치'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있는 최고 맛집-본인의 맛집-에서 음식을 직접 공수해서 했다는데 그 가게 이름들을 쭉 메모해뒀다. 꼭 가봐야지. 우선 인사동 툇마루 집 가자미식해.(아. 나 아는 집이다. 이 집)

 

-필동 필동면옥 제육

-을지로 아바이순대 야채 순대 머리 고기

-종로 순라길 홍어

-광희동 부부청대문 차돌 해장국

-무교동 용금옥 추어튀김

-서초동 영변 광어세꼬시

-가리봉 춘천옥 굴, 보쌈김치

-인사동 툇마루집 가자미식해

-약수동 진남표면옥 이북식 찜닭

-화양동 동해해물 가자미 찜

 

 우울한 날 한집씩 찾아가서 맛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사람 보니 사람만 봐도 식욕이 돈다. 그렇게 생겼다.

 

 

 나는 솔직히 나보다 어린 작가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만화예외.절대예외)

 무슨 건방이나 그런 게 아니라 이미 지난 일에 대한 공감이 새삼스럽고 내 현재 시간과의 공감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 나이 때의 말랑말랑한 감성이 이제는 좀 지겹기도 하고. 또 빠져들면 나는 흐물흐물해지니까.

 장진우가 하는 얘기는 좋았다. 사람 좋아하고 진취적인 사람이라 굉장히 힘이 넘쳤다.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지만 감성적으로는 또 비슷한 구석도 있어 보인다.

 내가 요즘 우연히 30대 초반 사람들의 글을 자주 읽고 있는데, 그들과의 세대차이랄까. 그런 게 확연히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나이 들어서도 젊고 활기차게, 새로운 걸 배우며 사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이에서 오는 세대차이는 분명 있는 것 같다.

 나와 다른 세대구나. 다른 삶을 살고. 생각이 좀 다르고. 또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 피곤하기도 하다. 솔직히는. 그 나이 제일 피곤하게 방황할 나이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이다. 나는 그 나이가 너무 힘들었다. 지금이 좋다.

 


 


 

 내가 자꾸 나이 들어감을 느끼는 건. 재밌어지는 책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거.

 그제부터 급 다운되는 맘을 다잡으러 책을 줄곧 읽고 지냈는데.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단숨에 읽히며 너무 재밌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그 시대 작가들이 쓴 책이 사실 재미가 없었다. 어렸을 땐 어렸으니까. 공감대도 없고 그 시대도 모르겠고 내뱉는 감정들도 모르겠고.

 근데 참 재미나게 읽혔다. 아. 나 나이 들었구나.

 

 

 연달아 읽은 책이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민들레 국숫집 서영남 님의 에세이집인데 좋았다.

 2003년부터 노숙인들을 위한 식당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계신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무 자금 계획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 밥을 지어 노숙인들에게 극진히 식사를 제공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쌀을 나누어주신다. 바닥이 보이는 쌀독을 걱정하며 마지막 쌀을 나눠주면 놀랍게도 딱 그 두배 이상의 쌀이 가게 앞에 도착한다. 지금까지 매일매일을 그렇게 가게를 지켜오고 계신다.

 그분의 무한한 사랑이 감동스러웠다. 살아있는 성인을 뵙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난 이런 기적 같은 얘기가 좋다.

 

 

 <황석영의 밥도둑>은 이제 읽을 건데 무척 기대가 된다. 딱 봐도 재밌어 보인다.

 

 

 

 문제는 나다.

 몇 권의 책들이 줄줄이 단숨에 읽혀서 참 재밌다 행복해하면서도 한 권이 딱 끝나는 순간 다시 우울모드다.

 봄인데 추워져서 그런가 날씨 탓도 해보지만 이건 순전히 내 탓이다. 어릴 적부터 이래 왔다. 답이 별로 없다. 뭔가에 크게 즐거워지거나 하지도 않거니와 책 읽으면 보통 업이 되어야 하는데 바로 다운이니 이게 좀 심각하다.

 

 사실 어제는 교보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를 읽고 가슴 충만하게 감동한 상태로 2000원짜리 따끈한 샌드위치까지 먹고 너무 행복했었다. 신랑한테 고맙다고 카톡까지 보냈었는데. 신랑이 행복하게 지내라길래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먹고선 매우 고조되기까지 했었는데. 이게 이렇게 뚝. 또 떨어지면 답이 없는 거다.

 

 예전엔 극단의 조치로 손바닥만 한 스테이크를 사 와서 한 조각씩 구워 먹기도 했다. 그건 극단의 조치. 단박에 상승. 업!

 지금은 고기가 소화가 잘 안된다.

 아. 어제는 커피도 비싼 커피를 두 잔이나 연달아 사 먹었는데.

 이거 도무지 답이 없다. 없어.

 극단의 조치를 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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