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좋은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수 Jan 29. 2016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이 책 좋다. 단박에 사버렸다.


 이 책 좋다. 서점에서 한 페이지 딱 읽고 바로 사버렸다.

 솔직히 잘 모르는 작가였는데 느껴지는 내공이 대단타싶어 찾아보니 시인이시란다. 아. 어쩐지. .. 진짜.

 

 좋은 문구를 집어 가며 읽었는데 단박에 다 읽고 필사하다 보니 다시 봐도 참 좋다. 때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글귀도 있고, 아득히 허공에 멍 때리며 뭔가를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말 많은 사람이 싫다. 말이란, 말을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만 하면 된다. 잊을 만하면 상에 올라앉는 도토리묵같이. 깍두기보다는 조금 더 크고 두부 전보다는 살짝 작은, 침묵을 아껴 잘라 내놓은 듯한 도토리묵같이."

 


 

"책을 많이 읽어도 정신의 키가 안 자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대개 누굴 만나면 대화를 하지 않고 상대에게 제가 본 책을 읽어댄다. 타인은 책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 흔히 그런 건 아니다. 책을 먹고 책을 눈다고나 할까. 세상에 아름다운 배설물은 없다."

 

 뜨끔하다. 나는 단지 읽은 책이 좋으면 소개하고 싶어 책 얘기를 했었다. 그게 내 주요 취미이자 관심이고, 좋은 책은 또 너무 좋으니까.

 그러나 한편, 책을 읽어댔었던 것도 같아 뜨끔하다. 배설하듯 보였으려나.

 그래도. 평소 별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지는 않으니, 또 주로 친자매인 언니에게 읽어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언니는 내 얘길 듣고 몇 권의 책을 사보기도 했다. 좋다고도 했다.

  


"의문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다.

 대답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나는 건 끔찍하다. 더구나 단 하나의 대답을 가진 경우엔."

 



"나는 가슴이 무너졌어요.

 나는 얼굴이 썩어갑니다.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에요.

 (...)

 파랑새 꿈꾸는 버드나무 아래로.."

 

 가슴이 무너진다. 뉴스 화면조차 돌려버리고 외면하고자 했었다. 너무 끔찍하고 악몽을 꿀 것 같아. 내가 물속에 잠기게 될까 무서웠다.

 기사가 계속 나고 서명운동도 하고 누군가는 바른말도 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었을 텐데 몽땅 다 채널을 돌려버렸었다.

 내가 물속에 빠질까 봐 무서웠었다.

 


"치부를 숨기듯 영예를 숨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영예를 자랑하듯 치부를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자기 PR이라니.

 그러고 수줍어서 어떻게 다니나.

 나 잘 해요, 나 좀 봐줘요, 나 쓸모 있어요... 이것은 노예의 목소리가 아닌가."

 

 저기 작가님.. 뭔가 더 심오한 의미를 담으신 글이겠지만.

 저는 자기 PR을 잘 못해서 손해 본 사람의 입장으로 이제와 생각하니 좀 후회도 되고 그럽니다만.

 나 몰라주는 사람들 원망도 좀 했던 것 같기도 한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내 얘기를 안 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날 알아봐 줄 수 있었겠는가 말입니다..

 나 되게 잘해요. 말고. 나 정말 이 정도는 해요. 똑 부러지게 요 정도는 되는 사람입니다.. 정도면 안될런지요.

 날 몰라주던 사람들... 내가 날 보여주질 못했거나, '이 정도'도 못했던 탓이겠지요..

 원망, 사과합니다.

 


"나도 내가 대충 살고 말리라는 걸 안다.

 노후를 걱정하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그리고, 작가님.. 제가 전직 PB로써, 현재 시부모의 노후봉양으로 제 노후가 휘영청 흔들리는 며느리의 입장으로써 단호히 말씀드리자면.

 본인 노후를 신중히 고민하시어 준비를 어서어서 시작하시는 게 가장 대충 살지 않는 모습 중 한 가지 아닐까나요.

 부디 명심하시어. 불행한 부인, 불행한 자식, 불행한 며느리 만들지 마시기를.

 



"오천 원짜리 돼지머리 국밥에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낮부터 취해서, 웬일인지 그 만 천 원을 안 내려고 버티는, 혼자 장사하는 할머니한테 한참을 야비하게 행패 부리는 주정꾼을 나무라서 내보냈다.

 밤이 되니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오늘 실연했는지, 그의 누가 죽었는지, 해고당했는지, 정말 만 천원이 없었던 건지 몰랐지 않나. 나는 요즘 너무 겁이 없다. 내가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말을 줄였기 때문에 능숙해 보인다. 말을 줄이는 건 우선 불필요한 말은 빼고, 더 적합한 말을 찾는 일이다. 그다음의 말들의 결합과 배열에 창조적 변형을 가해 구조적으로 압축시키는 것. 말과 침묵의 합이 시의 말이다. 뭔가 다 말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다 말했다는 믿음으로 참아야 한다. 다 말했다는 느낌을, 결코 다 말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으로 참아내야 한다. 그 말들은 오래 남는다. 정말 할 말이 생기면 시 쓰는 이는 더듬게 된다. 그 더듬거림은 낯선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어려서 알던 모국어를 오랜 세월 뒤에 새로 기억해내야 하는 이민자의 그것에 가까운 듯하다.

 그는 더 잘 더듬거리려고 애쓰는 이상한 말더듬이다."

 

 아. 작가님.. 아니 교수님. 찾아가 뵙고 인사드리고 그 밑에서 글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싶어 진다.

 아껴가며 읽었는데 단숨에 읽혀버렸다. 아무래도 나는 이 분의 펜이 될 것 같다. 다른 시도 찾아 읽어보려 한다.

 이 밖에도 좋은 글이 너무 많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