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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Nov 11. 2017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

 위로받게 됩니다. 어차피 각자 자신의 시선대로 읽게 되겠지만요.

 그녀는 유명한 작가라고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지은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이미 수십 권의 책을 낸 성공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말대로 '런던 도서전의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고, 안데르센 상의 후보로 선정된 바 있고, 작품이 영화가 되어 국내 애니메이션 역사의 어떤 기록을 갖게도 되었고, 책이 100쐐를 찍고 100만 부를 넘기는 일도 있었던'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작가시다.
 나도 마당을 나온 암탉 정도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이름은 잘 몰랐었다.
 그녀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라는 이 책을. 그저 서점에서 기웃거리다 글이 좋아 집어 든 책이었다.


" 작가 마누라의 남편들은 평생을 같이 살아도 모르는 게 있다. 작가는 아내로 살기 싫어한다는 것. 설명해봐야 말다툼 밖에 안되니 표현조차 섣불리 안 하지만 하루에 스무 시간 정도는 복수와 배반이라는 욕망이 가슴에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것."(P100)

".. 이런 기분으로 나더러 거길 가서 뭘 하란 말인가. 제대로 화낼 줄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더 분노가 치밀었다. 거기 도착하기 전에 죽어버렸으면! 앞차라도 들이받아 버렸으면!"(P101)


 나는 저런 뜬금없는 생각들이나 과격한 분노의 순간들에 공감이 간다.
 정말 저런 순간이 있다. 
 내가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에게 이글거리는 분노가 느껴지는 순간의 감정들이 너무 과격해 나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상황들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너무했나 싶은 순간도 있고. 대체로는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그 이유조차 기억이 안 나지만.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사람과 계속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내 기준에서 정확히 따져보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닫는 순간 맘이 평화로워졌다.
 상대가 뭘 잘못했는지. 그 잘못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그걸 용납할 수 있는지. 뭐가 진실인 건지.
 이런 건 다 그다음의 문제였다.
 


"김장 김치가 맛있을 것 같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했으니까. 내일은 출판사 미팅에 나가야 한다. 다른 출판사 대표인 학교 동기도 만나야 한다. 이건 모두 남들은 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일들이다. 그러나 내게는 살림살이처럼 일상이다. 배추를 절여놓고도 영화를 보러 가는 아줌마 선미의 일상이다. 내게는 출판사 대표와 갖는 미팅이나 김치 담그는 일이나 똑같이 최고의 일상이다.
 내가 사랑하는 일상이다."(P199)

"나는 지금 가난하다. 텅 빈 원점에 있다. 그런데도 부채가 엄청난 이 상황에서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그것도 남편과 둘이라 비용이 두 배다. 우리는 여행에 필요한 품목도 마음껏 준비하지 못했고 두둑하게 환전할 수도 없다. 낡은 운동화를 그냥 신기로 했고, 짐을 최소화하고, 사진이 주목적인 남편에게 꼭 필요한 렌즈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준비하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책을 수십 권이나 내고, 더 이상 신인 소리도 듣지 않는 위치에서 벼량 끝에 선 기분이라니.
 내일 아침이면 길을 나선다. 주머니 가난한 자의 여행이다. 마르고 빈 주머니 같은 내 속에 무엇이 들어와 고이기는 할까. 나는 그저 묵묵히 걸어보고 싶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순수하게 그저 바라보고 싶다."(P267)


다른 이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내게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나 구질구질한 현실까지 까발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솔직함에 위로를 받는다. 무기력하고 나태해져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내 일상에 자괴감을 느끼며 구질구질한 몰골로 책을 읽고 있었나 보다. 며칠 째 외출도 삼가고 씻지도 먹지도 않고. 아무 의욕도 없이 지내는 내 일상에 진저리치고 있었다.
 결혼기념일. 그나마 내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나 먹기 위한 뭇국이라도 끓여 댄 건. 오늘이 나와 신랑의 결혼기념일 이여서 그랬다. 기념할 만한 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좀 씻고 제대로 점심을 차려 먹자 싶어서.
 근 한 달 가까이 외출도 귀찮고 먹는 것도 귀찮아 집에 처박혀 있다.
 너무 허기질까 봐 가끔 밥을 데워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해서 김을 싸 먹거나 꾹꾹 눌러 주먹밥을 해 먹는다. 종일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아서인지 배고픔도 잘 느껴지질 않는다. 나가지 않으니 씻지도 않고. 저녁쯤에 킁킁거리며 내 몸 냄새를 맡아보다 새벽녘에 씻고 나와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한다.



"원래 가슴에서 이야기가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나는 살맛이 난다. 씻지 않고도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고 아무도 부럽지 않고 세상이 막 빛나는 것처럼 느껴진다."(P270)


 아. 얼마나 행복한 순간일지 감히 짐작이 간다. 
 행복할 것이다. 이야기가 살아 꿈틀거릭고. 그걸 얘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
 
 브런치 P.O.P라는 코너에 책을 출판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기에 호기심에 들어가 봤다.
 여기 브런치에 글 끄적이는 사람들 중 자신의 책 한 권 내보고 싶은 꿈을 가진 이들이야 얼마나 많겠는가. 부끄럽지만 나도 내 못난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가슴에 품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매뉴얼대로 글들을 다운로드하여 펼쳐보니 마치 책의 형식대로 제법 틀이 잡힌 꼴이 보였지만.
 거진 900페이지 가까운 글들을 편집하고자 찬찬히 첫 페이지부터 읽어 내려가자니. 
 어찌나 내 글들이 볼품없고 가식적이고. 허세 쩔고 부끄러운지.
 편집이라는 단어 자체를 적용하기도 뭐해졌다.
 그저 쓰레기 같은 글이쟎어. 이런 걸 누가..라는 생각까지 들어 참담해졌다. 심지어 그 글들을 적어도 수십 번은 더 읽어왔는데. 왜 이 글들이 책의 형식으로 바뀌어 펼쳐지자 이렇게 부끄럽게 느껴지는지.


 글쎄. 내가 이렇게까지 비참해하면 내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께 참 죄송스럽지만.
 사실. 난 내 글과 많이 다를지도 몰라요.. 죄송합니다. 




"나 많이 힘들어. 쉬고 싶어. 이즈음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가 고개를 끄덕여줄까. 넌 그래도 작가쟎아. 책도 영화도 기록 세웠다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그럴 줄 짐작하기에 나는 잠자코 견디기로 했던 것 같다. 사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니까. 평생을 쓰며 책 읽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어떤 강연이나 인터뷰는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홀로 버려진 듯 서러울 때가 많고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전한지 모를 일이다. 광화문 네거리의 한 무리 사람들 틈에 끼어서 찬 바람 맞고 서 있는 것처럼."(P278)


"얼마 전 독일에서 온 리트프롬의 대표 아니타 자파리와 미팅을 했는데 그때 질문 가운데 잊히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당신은 인세로 생활이 가능한가?"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던 것 같다. 그녀의 다른 질문들이 내가 작가로 오늘까지 사는 동안 숱하게 들었고 또한 대답해온 것들이라 인상적이지 않기도 했지만 이 질문은 처음 만난 외국인이 꺼내기에 다소 
노골적인 것이라 더 그러지 않았나 싶다. 넉넉하지 않아도 생활할 정도는 된다고 하려다가 왜 그런 걸 묻는지 되물었고 이번에 방문해서 만난 작가들 대부분이 이것의 곤란을 털어놓았다는 답을 들었다."(P352)


 중간중간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곤란함이 묻어나는 솔직한 대목들이 있었긴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수십 권의 책을 낸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생활고를 토로해야 한다면 이 땅의 수많은 작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지. 
 궁금하고. 또 한편으론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기도 하다.
 순수하게 '작가' 활동만으로 생계가 해결되는 이는 정말 극히 일부라는 걸 알고 있기는 했다. 신문에 일러스트를 연재하던 꽤 유명했던 작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일도 있었고. 본인이 좋아하는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도 있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작가가 작품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너무 짜증 나고 가슴이 아프다. 근데 그게 또 위로가 되니. 글이 쓰레기인지 내가 쓰레기인지.



"무심코 지나가다 낯선 무엇을 얻는 일. 시선을 잡는 어떤 상황, 생각지도 못한 경험이 하나의 의미가 될 때 얼마나 기쁜지. 오늘도 나는 막연히 그런 기대를 좀 했다."(P310)


나도 저런 기대를 갖고 매일을 살고 있다. 무언가를 보거나 읽거나 걸을 때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들. 경험들. 거기에서 비롯되어 다시 연결되는 삶의 경험, 우연, 즐거움, 혹은 기적 같은 행운.



"글이 안 써질 때는 그냥 쉬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하는데, 창작이라는 건 불씨를 지켜야 한다는 심정으로 현재까지의 진행을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져야 답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뜯어먹으며 살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P292)





 이 책에는 좋은 글귀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만.
 제가 요즘 좀 심란한 일이 있고. 그게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해서. 못난 마음만 삐죽거려 삐딱하게 시선이 가고 글도 날카롭네요. 책은 좋았습니다. 위로받았으니까요.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고. 그저 지금 좀 그런 상태이니. 
 이 글을 읽고 불편해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조금 있으면 또 부끄럽고 찌질한 일상으로 행복하게 돌아올 예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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