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제가 덕이 없어서 그런 거랍디다.
"아이러니하게도 힘든 일이나 훌륭한 일을 하면 오히려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만의 덫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을 했어. 정말 고생했단 말이야'라고 생각하면 오만해지기 쉽습니다. 오만한 사람은 미움을 받지요. 또 인간관계가 나빠져서 운이 달아나버립니다. 힘든 일이나 훌륭한 일에는 '오만의 덫'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모처럼의 노력과 고생이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P18)"
"아무리 유능하고 영향력이 있어도 혼자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만 해지는 것이 인간의 슬픈 특징 같습니다. '내가 해줄게'가 아니라 '제가 맡아서 하겠습니다'라는 겸손한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있어도 별로 운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부디 겸손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보세요.(P21)"
시부모님이 오랜만에 집에 다녀가셨다.
금요일 오셔서 토요일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시고, 일요일 다시 내려가셨다.
간만에 오신 시부모님을 위해 집을 치우고 잠자리를 봐드리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했다.
화기애애한 시간이 지나고 토요일 오전 일찍 옷을 차려입고 결혼식장으로 출발하려는 찰나.
어머님이 오셔서 부주 돈을 얼마 준비했냐고 물으셨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범한테 물어보세요."
신랑이 있는 방에 들어가셨다 금방 나오셔서는 다시 내게 물어보신다.
"부주 돈을 그리하면 안 되는데.. 내한테 예단비를 30만 원을 보냈더라. 그러니 우짜노. .."
아범한테 얘기하셔요. 부주 돈은 아범이 알아서 하는데요..
다시 총총걸음으로 신랑 방에 들어갔다 나오신 어머님은 '세상 억울한 얼굴'이시다.
그러니까. 예단을 받은 게 있으니 그 돈에다 얼마라도 더 얹어서 부주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모르는 척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타려는데 어머님이 한참을 가방을 뒤지시더니 빨간 봉투를 하나 내미신다. 이걸 보태서 하라며 내미시는데 신랑이 버럭 짜증을 낸다.
차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하는데 좀 지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시부모님이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시고 나는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답을 한다.
이런 상황은 지난번 친척 결혼식장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었다.
알아서 부주 돈을 준비한 신랑에게 어머님은 얼마를 할 거냐 물어오셨고.
신랑이 얼마얼마 제법 넉넉하게 준비했는데도 거기다 얼마를 더 얹어야 한다고 꾸중처럼 나무라는 것이다. 그럼 신랑은 제 어미에게 짜증을 내고. 어머님은 또 '세상 억울한 얼굴'로 '쟤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시다.
혼주이신 친척분이 평소에 시부모님을 찾아오실 때마다 20만 원씩 용돈을 드렸다고 한다.
아버님의 사촌동생이시지만 형편이 좀 좋으신 편이라 아버님 용돈이라도 하시라고 봉투를 드렸던 모양인데 어머님은 그 용돈 받은 값을 부주에 보태려는 것이다.
그때 받았던 용돈, 결혼식장에서 받은 모든 부주는 당연히 시부모님이 받아 모두 쓰셨다.
그리고 그 빚들은 아주 당연히 신랑의 몫이 되었다.
정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아주 당연한 건 아니지만 내 형편이 이러니 니들이 알아서 해라 하며 모른 척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그 순간. 나는 모른 척 있지 말고.
"어머님, 그럼 그 예단받으신 30만 원 어머님 몫으로 내시고 저희는 저희대로 할게요.
왜 세상 억울하신 얼굴이신 거예요..
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당연하지 않아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아요." 하고 똑 부러지게 말했어야 했나. 그러면 차라리 미운 맘이 덜했을지 모른다.
당연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결혼한 순간에도 신랑은 집안의 빚을 떠안고 내게 왔었다.
아버님 사업실패로 빚 독촉에 시달리던 어머님을 대신해 본인이 신용대출을 받아 어머님께 드린 돈이 이천만 원이었고. 조부모 묏자리 옮기신다고 또 천몇백.
결혼 후에도 친척에게 진 빚을 대신 또 이천만 원 갚았다.
서방님 돌아가실 때 빚잔치 수천도 우리가 했고, 장례식장 비용까지.
시부모님 집 담보대출 칠천만 원, 집수리비 이천오백만 원.
매달 생활비, 보험, 세금, 경조사비까지 모두모두 당연하게 우리 몫이었다.
매번 그 '세상 억울한 얼굴'로.
시어머님은 아들을 채근하며 야속해했다.
아들로서 부모를 부양하려는 부분에 대해 비난하지는 않는다.
본인의 부모이나 지긋지긋해하기도 하고, 또 돌아서면 맘 아파하며 눈물짓는 신랑의 여린 맘을 잘 알고 있다.
모질지 못한 내가 시부모님의 부당한 요구에 질질 끌려다니며 상처받고 있을 때, 옆에서 모른 척하는 신랑을 야속해하며 원망한 적도 있었다. 왜 나서서 바람막이가 되어 주지 않는지, 왜 저 부당한 요구들에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 하는 건지 무능해 보이는 신랑이 저주스러웠었다.
신랑은 언제 끝날지 모를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무거운 책임감과 답답함을 그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감추고 꿋꿋이 일해 왔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그런 신랑에 대한 원망은 없다. 그저 측은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보일 뿐이다.
그는 스무 살부터 어머니의 보호자였고, 무능한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어야 했다.
돈 없어 겪는 무수히 많은 비참한 상황에 놓여 봤었고,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치유되지 않은 사춘기 시절을 맘 속에 품고 산다.
나는 시댁을 위해 이렇게 많은 희생을 했쟎아. 하며 때때로 신랑에게 고마워하라고 몰아세웠다.
내게 더 잘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내게 더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왜 내가 힘들어하던 시절에 내 앞에서 막아주지 않았냐고 원망도 했었다.
무뚝뚝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저 신랑은 매 순간 내게 고마웠지만. 내가 저렇게 몰아세울 때 슬펐을 것이다. 창피하고 답답하고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승진을 하고, 월급을 탈탈 털어 모두 모두 내게 가져다줬을 것이다.
나는 오만했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이고 시댁에 이렇게까지 헌신했으니 너는 나에게 더 잘해야 해. 하며 요구했다.
어른들한테 잘 하면 복을 받는다는 그 어르신들의 말씀에도 "그래서 그 복이 언제 오는 건데요?" 하며 따져 물었다.
시부모님의 염치없음을 비난하고 더 이상 맘에서 우러나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시부모님의 염치없는 바람을 가끔 우스개 말처럼 신랑과 농담처럼 주고받으며 허탈하게 웃는 경우는 있지만. 진심으로 그분들 앞에서 따뜻하게 웃어본 일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분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더라면 나는 시부모님을 좋아했었을까.
우리가 허덕이며 최대한을 해드리면. 항상 그 이상의 몫을 바라시는 그분들을. 그러려니.. 하면서 이해하게 될 날이 과연 오기는 할 것인가.
처음 저 글귀를 읽었을 때 나는 거부감이 일었다.
'나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을 했어요. 근데 계속 괴롭기만 해요. 맘이 힘들고 그분들이 밉습니다. 그게 다 제 탓이라고요..'
근데 차차 무슨 얘기인지 머리로는 이해하게 됐다.
내 가슴은 여전히 오만함이 작동 중인가 보다.
괴롭고, 밉고. 한숨이 나오고.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을 손에 넣으려면 '덕'이 필요합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재산은 자신의 힘 만으로 모을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연히 사업에 성공했다고 해도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직원이나 거래처 등 많은 사람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은 떠나가겠지요. 그렇게 되면 반대의 힘이 작용해서 돈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
부자들은 많은 사람들 덕분에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만을 위해 돈을 써서는 안 됩니다. 도움을 준 이들과 함께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덕을 지니고 있다면 이미 행복해진 것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돈보다도 덕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P159)"
'타인의 잘못을 너무 몰아붙이게 되면 악운을 부르게 된다'편에 보면 작가의 고백이 있다.
"도덕적 과실이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과실은 때로는 정말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속죄하지 않으면 행운은 결코 손에 쥘 수 없습니다.
무서운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속죄도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저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을 셋이나 죽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으로 판가름할 수 있는 종류의 살인은 아니지만, 제가 한 일 때문에 사람 셋이 죽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고백하려고 합니다.(P80)"
첫 번째 희생자는 채권 추심을 의뢰받고 독촉한 채권자였다. 제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채권자에게 약속 위반을 질책하며 반복적으로 재촉을 했고, 일주일 후, 채무자는 자살했다고 한다.
두 번째 희생자는 재판에 나온 70대 증인 남자였다. 그 증인의 말에는 모순이 있었고, 모순점을 엄격하게 추궁하는 과정에 증인은 법정에서 쓰러졌고, 병원에 실려간 후 이틀 뒤 사망했다.
세 번째 희생자는 딸의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만난 어머니. 본인의 혈통 탓에 딸이 결혼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하소연하는 의뢰인의 집을 방문했고. 3시간의 상담 후에 저녁식사를 권하는 의뢰인의 권유를 거절하고 나왔다고 한다. 그저 배가 고프지 않았고, 일이 많아서였다고 하는데. '변호사에게까지 차별을 받았다. 죽는 수밖에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한다.
변호사도 참 괴로운 직업이겠구나 싶어 착잡했다.
머리 하얀 인자하신 선생님이 빙긋이 웃으며 해주시는 말씀 같다.
결코 만만치 않았을 순간들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매사 감사해하며 덕을 쌓아온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좀 갈 길이 멀다.
매사 감사해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좀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