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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Dec 08. 2019

부러움과 질투,
선택했던 상황에 대한 후회

그러하다...

 

어렵게 얻은 휴가 날 미뤘던 일을 처리하러 은행에 갔었다.

인증서를 새로 까느라 OTP를 꺼냈는데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내 주요 거래은행은 내가 다녔던 은행이다.

이 은행은 가뜩이나 많지도 않던 지점을 우수수 없애버려 일을 보려면 맘먹고 찾아가야 한다.

지점이 많이 없어지다 보니 대부분의 직원들은 콜센터로도 많이 이동했지만,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지점에서 같이 일했던 지인들을 한두 명씩 마주치곤 했었다.

화장도 안 하고 운동화 신고 털레털레 찾아간 곳에서 10년 전 같이 일했던 차장님도 만나고, 같이 일했던 동료도 만나고 하다 보니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 당황스러움이.



 이번엔 혹시 또 누구를 만날까 싶어 지점에 들어갈 때 고개를 푹 숙이고 번호표를 뽑은 채 구석자리에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전 시간이라 비교적 손님도 많지 않았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아 다행이다 싶은 찰나 띵동 내 번호가 울렸다. 얼른 처리하고 가야지 하는 순간 창구엔 낯익은 동기가 떡하니.


 빤히 쳐다보는데도 "고객님~" 하는 그 친구의 사무적인 미소에.

 "동기, 어이 나 동기.." 했더니 한동안 날 빤히 쳐다보았다.

 "아.." 하며 알아보는 눈치였는데.

 "애기애기 하더니 얼굴이 사모님이 됐구나.." 하며 아는척을 했다. 어이 동기, 자네도 .. 만만치 않네만.

 반가운 마음에 소곤소곤 안부를 묻고, 신분증을 내밀며 OTP 재발급을 부탁했는데 이 친구는 쉬지 않고 신세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나 퇴직할 때 퇴직할 걸 그랬다며(내 퇴직이 현재까진 마지막 명퇴였다) 이 나이에 창구에 앉은 것도 그렇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너무 많다며 후회가 된다고 했다. 너는 승진이라도 하고 그만뒀지, 자기는 언제 승진할지도 모르겠고, 동기 중에 승진 못한 사람이 세 명인데 그중에 한 명이라고 구구절절. 첫째가 이제 초등학생이고 실은 얼마 전에 둘째를 낳아 복직한 지 일 년 정도 됐고 집에 똥 기저귀 차고 있는 아기가 있다며 급기야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

 어어.. 창구에서 울면 어떡해..

 휴지를 뽑아 눈가를 훔치면서도 "아이 왜 승인을 안 해줘.." 하며 책임자가 있는 자리로 뛰어간다.

 돌아온 동기는 타닥타닥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날 쳐다보며 어찌 지내냐 하길래.

 나는 퇴직하고 놀기도 했지만, 지금도 알바를 하고 있다고. 신랑 외벌이 돈으로 생활은 해도 모이는 돈이 별로 없는건 빤하다고. 집에 있으면 생각만 많아져서 우울증 비슷한 것도 온다고. 어차피 일해야 하는 상황이면 계속 버티라고. 나 알바하는데 지금 휴가라 은행에 온 거라고 얘기를 했다.

 어디 사냐, 전세냐 .. 이것저것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던 중에.

 "아이구. 손님 밀려서 땡기라고 하네.. " 하길래 뻔히 아는 상황이라 벌떡 일어나 인사하려는 순간.

 "근데 나 너보다 한 살 언니야~" 하는데 눈물기가 싹 가셔 있었다.


 기계에서 통장정리까지 하고 건물을 나서는데 맘이 짠했다.

 지점이 없어지고 필요 없는 인원이 많아지니 매년 승진자가 굉장히 적었다. 실은, 굳이 승진을 시킬 필요도 없겠지.

 그나마 승진을 하기 위해선 모두가 싫어하는 영업을 해야 했다. 그것도 실적을 아주 우수하게 올려서 누구나 그 사람의 이름을 인지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면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관리직이나 사무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승진자가 한 명 정도거나 아예 없었다.

 처음 콜센터에 발령을 받아 가는 이들은 더없이 심란하고 비참하다 했었지만, 이젠 너도나도 그곳에 모여 비슷한 일을 하고 있고 퇴근은 훨씬 빨라져 오히려 만족도가 높아졌다. 높은 직급에 있으시던 분들도 어쨌든 예전의 연봉을 받으며 다니고 있으니 오히려 퇴직자 중에 그분들을 부러워하는 이도 생겼었다.


 나보다 한 살 많으면 40중반인데 결혼을 늦게 했거나 늦둥이를 낳았구나 싶었다. 둘째라 한없이 이쁘고 귀엽겠지만 역시 이 나이에 갓난쟁이의 엄마라고 하니 앞으로 입히고 먹이고 가르칠 일이 까마득하겠구나 싶었다.

 나는 동기 중에 나이가 많은 쪽이었는데, 생일이 빠른 76이라 그냥 76 하고도 말을 트고 75 하고도 말을 트곤 해서 족보가 좀 꼬여 있었는데 20년 지난 지금까지도 나이를 기억한 게 웃겨서 혼자 키득거렸다.




 알바를 하며 갑을병정 중에서도 저 끄트머리 취급을 받곤 있지만. 예전 직장에 붙어 있는 동기가 부럽진 않았다. 나는 지금도 예전 직장에 들어가면 그때의 그 긴장감이 떠올라 털이 쭈뼛 선다.

 지난번 지점에 방문했을 땐 얼떨결에 상담실에 들어갔다가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생을 만났더랬다. 나보다 2-3살 어린 그 친구는 승진을 위해 이 지점에 왔고, 열심히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약간의 예금을 찾으려던 내게 상품을 권유하며 슬쩍 운을 뗐었다. 그 옆방엔 또 내가 잘 아는 언니가 PB로 있다고 했는데 그분은 마침 휴가여서 다행이었다.

 누구보다 그 상황을 잘 아는 나로서는 여간 맘이 불편한 게 아니다. 내가 정말 돈이 많다면 그 친구를 위해 원하는 상품을 빵빵 가입해주고 싶지만, 내 돈은 푼돈이고, 내 관리자가 다른 지점에 따로 지정이 되어 있어서 내가 가입을 해봤자 그 친구에게 별 도움이 되진 않는다.

 옆방 언니는 방카만 판매하는 PB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 만약 방카를 가입한다면 조금 도움이 되겠지만, 지점 차원에선 또 푼돈이다. 큰 고객은 몇 억씩 움직이니까.

 이래저래 그 친구의 고충을 듣노라니 예전 상황이 생각나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로 돈을 챙겨들고 지점을 도망쳤었다.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


 얼마 전 은행권에서 판매했던 DLF가 문제가 되어 원금이 허공에 사라졌다는 기사를 접했을 땐 정말이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상품을 좋아해서 나도 가입하고 손님에게도 권유를 꽤 했었다. 다행히 그때는 원금이 손실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진 없었지만, 퇴직 직후 그 상품의 결과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원금이 통째로 사라지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안타깝게도 존재한다.

 5년에 한번쯤의 주기로 투자 상품 시장이 휘청하는 시간이 도래했던 것 같다. 그 중간에는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이제는 투자 상품 쪽에는 관심을 두진 않는다.




부러움과 질투. 내가 선택했던 상황에 대한 후회.

이것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게 있을까.


나는 살아오며 누군가를 크게 부러워 한적 없었노라 자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내 자만이었다. 나는 크게 위태로운 순간 없이 운 좋게 적절한 상황을 맞이하며 술술 흘러왔던 것이다. 부러움과 질투 따윈 모를 정도로 내가 잘난 게 아니라 그저 최선을 다해 달려본 적 없어 기대가 적었던 것이고. 별로 노력하지 않았으니 적당히 결과에도 만족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도 요즘엔 가끔 부러움과 질투를 느낀다. 후회도 한다.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사춘기 딸을 키우며 배운다.

다 맞은 로또를 나만 피해 간 것 같은 집값 상승을 보며 땅을 치며 후회를 하기도 한다.

세상 쿨한척했지만 실은 더없이 예민한 내 성격을 고백한다. 나는 친구를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들과의 교류 속에서 어느 순간 질투가 느껴지면 말도 안 되는 잘난 척을 했던 것 같고. 그게 또 자괴감으로 남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대화가 많은 날엔 집에 와 후회를 하고 내가 무슨 잘난 척을 했나 자꾸 반성을 하는 게 피곤했다. 잘난 게 별로 없다는 것도 그러했다.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란진다 해도>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줄리 입 윌리엄스는 1976년 1월(나랑 동갑이다) 땀끼에서 선천성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맹인으로 태어난 손녀를 죽이려던 할머니 때문에 안락사 당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살아난다. 이후 베트남 내전을 피해 이주한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

 수술을 통해 일부 시력을 회복한 그녀는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간다. 여전히 불편한 눈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하버드  법학 대학을 졸업하며 변호사가 되어 세계적 로펌에  들어간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두 딸을 낳고 뉴욕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된다.

 하지만 서른일곱 나이에 결장암 4기 진단을 받았고 5년의 투병 끝에 작년 3월 사망했다.


 그녀는 투병 중에 이 책을 썼다. 강인한 그녀가  투병 중에 겪은 분노, 공포, 혼란들을 쏟아낸다.

 질투와 시기심도 내뱉는다. 아이의 학교 앞에서 웃고 떠드는 평범한 엄마들에게 분노하고, 심지어 암에 걸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돌아온 이들도 시기하고, 왜 자신의 아이는 엄마를 잃게 될 터인데 그들의 아이들만 부모를 잃지 않을 자격이 주어졌는지 분노한다.

 자신이 죽은 뒤 남편에게 찾아올 두 번째 여자도 미워한다. 자신의 아름다운 두 딸을 사랑으로 키워주길 바라면서도 근사하게 공사해둔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신의 옷장에 옷을 걸게 될 그녀에게 질투한다.

 그녀가 느끼는 분노, 공포, 질투, 혼란 앞에 나는 내 어리석은 감정들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삶이 끝나는 순간에 내가 느끼게 될 감정이 어떤 것일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실재 내가 살고 있는 삶은 평범하고.

나는 그리 잘난 게 없고.

자만했다, 우울했다, 혼란한 감정 속에 살고 있지만.

또 어느 날엔 감사하고. 겸허해지고. 반성한다.

오늘은 특히 그랬던 것 같다.

모쪼록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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