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이 꺼지는 순간에 대하여
베이커리를 하던 시절, 나는 색을 고르는 일을 좋아했다.
버터크림에 색소를 섞을 때.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휘젓고, 전등 아래에서 확인하고, 다시 한 방울을 더하는 일련의 과정.
너무 짙으면 인공적으로 보이고, 너무 옅으면 존재감이 사라진다.
딱 맞는 농도를 찾는 일은 레시피로 배울 수는 없었다.
매번 눈으로 확인하면서, 손의 기억으로 점점 익혀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과 닮아 있다는 것을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감정에도 농도가 있다. 그리고 어떤 감정은 아무리 저어도 섞이지 않고 가라앉아 있다.
루이는 네 번째 세션까지 한결같았다.
단정했고, 논리적이었고, 자신이 왜 피곤한지를 다섯 가지 이유로 정리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이유들을 들으면서 매번 같은 지점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 사이사이에 있는 것. 루이가 말하지 않은 것들. 반죽에서 마치 공기를 빼는듯
정교하게 감정을 빼낸 문장들.
다섯 번째 세션이었다. 루이가 주말 얘기를 꺼냈다. 아주 짧게.
"저번 주말에 가족 모임이 있었어요."
그리고 멈췄다.
나는 기다렸다. 루이가 창밖을 봤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표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표정을 만드는 무언가가 꺼진 것 같았다.
버터크림에서 색소가 서서히 분리될 때처럼, 잘 섞인 것 같았는데 경계가 생기는 그 순간처럼.
루이의 얼굴이 그랬다. 여전히 앉아 있고,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안에 누군가가 없는 것 같은. 나는 그것을 마음속으로 회색이라고 이름 붙였다.
색이 빠진 것이 아니라, 색을 만드는 무언가가 잠시 스위치를 내려버린 상태.³
"· · ·"
여섯 번째 세션. 나는 루이가 앉고 나서 지난번 가족 모임 얘기를 꺼냈다.
"지난번에 가족 모임 얘기 하다가 멈추셨어요. 그날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지금 표정이 방금 전이랑 달라요."
"그래요?"
"가족 모임 얘기가 나오면 뭔가 멈추는 것 같아요. 혹시 알아채셨나요?"
"몰랐어요."
몰랐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멈춘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그 반응이 오래되었다는 뜻일테니까. 어릴 때부터 특정 상황에서 감정의 스위치를 내리는 것을 반복해온 사람은, 그것이 자동으로 작동하게 된다. 의식하지 않아도, 선택하지 않아도. 그냥 가족 모임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내부에서 조용히 무언가가 닫힌다.
"가족 모임에서 주로 뭘 하세요?"
"... 그냥 있어요. 밥 먹고."
"말은 많이 해요?"
"오빠가 많이 하고요. 저는 적게 해요."
"원래부터요?"
"...네. 원래부터."
원래부터. 그 두 글자가 오래 작업실 안에 오래 머물렀다. 원래부터라는 말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간을 지우는 말이다. 시작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그 시작이 지금의 자신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 루이에게 가족 안에서 말을 적게 하는 것은 성격이 아니라 오래된 적응이었다.
어느 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배웠고, 그것이 쌓여서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된 것.
나는 그것을 그날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⁴
그날 세션이 끝나고 루이가 나가고 나서, 나는 한참을 작업실에 앉아 있었다. 회색이 오는 얼굴이, 오래 남았다. 나는 루이의 회색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 언제였을까를 생각했다. 마치 버터크림에서 각자의 색이 빠지는 것은 느닷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씩 분리된다. 한 방울씩. 루이의 회색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단번에 되돌리기 어렵다. 다만, 분리된 것은 작은 하나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그렇게 보인 날이 있었다는 것. 바로 오늘이 그날이었다.
크림이 분리될 때는 소리가 없다. 겉으로는 여전히 멀쩡해 보인다.
그런데 표면을 살짝 건드려보면, 결이 다르다.
루이의 회색이 그런 것이었다.
만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분리.
그러나 분리는 되돌릴 수 있다. 그저 다시 젓기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기록: 여섯 번째 세션
루이에게 가족 모임에서 주로 뭘 해요, 라고 물었을 때 잠깐 뜸을 들이다가 '그냥 있어요' 라고 했다.
그냥 있다... 가장 친밀해야 할 공간에서 그냥 있는 사람이 있다. 그 공간이 편안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혹은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오래 알아왔기 때문에.
루이가 어느 쪽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냥 있는다'는 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 자연스러움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참고 문헌 · 02
³
Jung, C. G. (1964). Man and his symbols. Doubleday.
융은 억압된 감정 복합체(complex)가 특정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 모임'이라는 단어가 오래된 감정 복합체를 건드리면서, 의식이 자동으로 스위치를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오래 훈련된 심리적 보호 반응이다.
⁴
Adler, A. (1927). Understanding human nature. Greenberg.
아들러는 인간이 자신의 생활양식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너무 오래되어서 '원래부터 그런 사람'으로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라는 말이 나올 때 — 만들어진 역사가 시작된다. 원래부터인 것은 없다. 어느 날, 어떤 이유로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