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문을 열던 날

좋게 끝내는 사람

by 소하

루이를 처음 소개해준 사람은 예전 베이커리 단골손님이었다. 전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제 지인인데요, 한번 만나봐주실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엔 좀 힘들어 보이는데, 본인은 괜찮다고만 해서요." 나는 그 말의 끝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본인은 괜찮다고만 해서. 오랫동안 괜찮다고 말해야 했던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정말 괜찮은지 아닌지를 스스로 알기 어려워진다.¹


루이는 약속 시간 정확히 5분 전에 도착했다. 문을 열기 전 한 박자 멈추는 것을, 나는 창문 너머로 조용히 보았다. 베이커리를 하던 시절에도 그런 손님들이 있었다. 가게 문 앞에서 잠깐 멈추고 들어오는 사람들. 그 멈춤 안에는 결심이 담겨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 라는 물음이 아니라,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가 보겠다는 작은 다짐 같은 것.


달 그 락.

루이는 들어오자마자 작업실을 조용히 훑어보았다. 이젤, 물감, 말라붙은 붓들. 그리고 한쪽 구석의 오븐. 그 앞에서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말 없이 향하는 시선이 가장 정직한 첫 문장이다.


앉고 나서 루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사실 상담 같은 거 잘 모르고요. 소개를 받아서 왔긴 한데, 딱히 뭐가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그냥, 요즘 좀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게 문제인 건지도 잘..."


"피곤한 게 언제부터였어요?"


"한... 이삼 년?"


이삼 년을 물음표 없이 말하는 사람. 나는 그것을 받아 적었다. 세션은 오십 분이었다. 루이는 그 시간 동안 팀장 얘기를 했고, 올해 기획안 얘기를 했고, 후배 지안 얘기를 했다. 조리 있었다. 문장이 완성된 채로 나왔고, 결론이 먼저 나오고 근거가 뒤따랐다. 마치 잘 정돈된 보고서 같았다. 나는 듣다가 한 번 끼어들었다.


"루이씨 얘기를 듣고 있는데요. 지금 하신 얘기는 모두 다른 사람들 얘기예요."


"...그게 다 저한테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라서요."


"맞아요. 근데 그 일들이 루이씨한테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아직 안 하셨어요."


"...잘 모르겠어요, 사실."


그 말이 오십 분 중 처음으로 정직한 문장이 되었다. 나는 그것 역시 받아 적었다. 잘 모르겠다는 말은, 이미 알고 있지만 꺼내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진짜로 닿지 않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맞춰 정리해온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하여 먼저 알아차리는 능력을 잃어버린다.²


· · ·


세션이 끝나고 루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오븐을 다시 봤다.


"저기, 실제로 써요? 오븐."


"가끔요.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요."


"..."


루이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죽을 치대는 손처럼, 사람의 마음도 어떤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부드러워지는 때가 있다. 루이는 아직 그 무언가를 만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주 조금 알아본 것 같았다.


좋게 끝내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정리하고, 감정이 터지기 전에 이미 수습해두는 사람들. 루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단함처럼 보였다. 그러나 단단함과 굳어짐은 다르다. 케이크 위에 너무 두껍게 덮인 슈가 반죽처럼, 겉이 단단할수록 안의 부드러운 제누와즈는 숨을 쉬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참고 문헌 01

¹

Adler, A. (1927). Understanding human nature. Greenberg.

아들러는 인간이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과정에서 특정한 생활양식(lifestyle)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어린 시절 불평등하거나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강함을 유지하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취약함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괜찮다"는 말의 반복은, 그 생활양식의 조용한 언어일 수 있다.

²

Freud, S. (1923). The ego and the id. Hogarth Press.

프로이트는 자아(ego)가 이드(id)의 충동과 초자아(superego)의 요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중재한다고 설명했다. 감정 억압이 반복될 때, 자아는 그 억압을 '정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억압의 실패가 아니라 — 오히려 오랜 억압이 성공적으로 작동해온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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