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쌓이는 것들
사람은 익숙한 것을 반복한다.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오래된 패턴일 때는 특히. 레시피를 외운 손은 생각하지 않고도 같은 순서로 움직인다. 의식하지 않아도, 선택하지 않아도. 그냥 손이 기억하는 대로. 관계의 패턴도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으로 움직인다. 왜 이렇게 되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이미 같은 자리에 와 있다. 같은 아픔 앞에,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또 서 있다.
열두 번째 세션. 루이가 지안 얘기를 꺼냈다. 기획팀 후배. 루이는 지안에게 많이 투자했다고 했다. 기획안을 함께 다듬고, 발표 전날 밤에도 남아서 봐줬고, 지안이 팀장에게 칭찬받는 날이면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고. 그런데 지안이 다른 팀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말을 꺼낸 날부터 루이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천천히, 소리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어요. 억지로 끊은 게 아니라."
"지안이 뭔가 잘못한 게 있었어요?"
"아니요. 지안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죠."
"그럼 루이씨는 그날 어떤 기분이었어요?"
"...별로였어요. 근데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원래 그런 거니까."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으면서 잠깐 멈추었다. 루이의 가장 오래된 문장이었다. 다락방 안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지는 밤에도, 아무것도 아닌 거야. 밥상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오르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닌 거야. 학교 행사에 아무도 오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 말이 어린 루이를 살아남게 해준 주문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루이도, 여전히 같은 주문을 쓰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밤새 잠을 못 잔 사람.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름이 없을 뿐이다. 이름 없는 감정은 말을 통하지 않고 몸의 감각으로 간다. 잠이 오지 않는 밤으로, 이유 없이 무거운 어깨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오후로. 루이가 이삼 년을 피곤하게 지냈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날 루이가 돌아가다가 문 앞에서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지안이 그 말을 꺼낸 날 밤에는 어떻게 지냈어요?"
"...잠을 좀 못 잤어요."
"아무것도 아닌데 잠이 안 왔어요?"
"...그러네요."
루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나갔다.
다만 연약하다는 말을 공격으로 받지 않은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오늘은.
설탕은 크림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크림에서 설탕이 빠지면, 맛이 전혀 달라진다.
감정도 그렇다. 이름 붙이지 않아도 거기 있다. 없다고 말해도 몸 안에서 계속 일을 한다.
잠을 빼앗고, 어깨를 무겁게 하고, 이유 없이 긴 오후를 만든다.
참고 문헌 · 06
⁸ Freud, S. (1923). The ego and the id. Hogarth Press.
억압된 감정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신체 증상으로 표출될 수 있다. 수면 장애,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는 억압된 감정이 몸을 통해 내보내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