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을 처음 만지던 저녁
어떤 날은 세션이 끝나도 루이가 바로 나가지 않았다. 문 앞까지 갔다가 한 박자 멈추는 것을, 나는 받아 적던 노트에서 눈을 들어 조용히 보았다. 멈추는 것은 루이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루이는 대체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사람이었다. 이야기가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서고, 일어서면 바로 나가는 사람. 그 동선이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문 앞에서 멈추었다. 뭔가를 두고 간 것 같은 사람처럼, 뭔가를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 사람처럼.
나는 먼저 묻지 않았다. 준비된 것은 스스로 나온다. 성급하게 꺼내면 다시 닫힌다. 빵 반죽을 너무 이른 시간에 오븐에 넣으면, 겉은 구워지는데 속은 아직 날 것이다. 기다림이 레시피의 일부인 것처럼, 침묵도 세션의 일부다.
"오븐... 써봐도 될까요? 오늘."
"물론이요."
"뭔가 만들고 싶어서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지 모르겠지만 만들고 싶다는 말.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목적을 먼저 정하지 않고 손이 먼저 향하는 쪽으로 가겠다는 것. 루이에게서 처음 듣는 종류의 말이었다. 루이는 늘 이유가 먼저였다. 왜 피곤한지, 왜 힘든지,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들은 언제나 논리적이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유가 없었다. 그냥, 손이 먼저 알고 있는 것. 나는 밀가루와 버터, 달걀, 소금을 꺼냈다. 레시피는 주지 않았다. 탁자 위에 재료들을 놓고 말했다.
"마음대로 섞어봐요. 틀려도 괜찮아요."
"틀리면 어떻게 해요?"
"그냥 다시 하면 되죠. 반죽은 원래 여러 번 해요."
루이는 처음에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넣었다. 밀가루가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면서 잠깐 멈췄다. 차가운 것을 예상했는데 부드러운 것이 왔을 때의 그 잠깐.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넣었다. 손바닥 전체로. 버터를 더했다. 치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이 고르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리듬이 생겼다. 손이 기억을 만드는 순간이 있다. 루이의 손이 그렇게 달라지고 있었다. 평소 무릎 위에서 꽉 쥐어져 있던 손이, 반죽 안에서 처음으로 펼쳐졌다.
한 시간쯤 지나 오븐에서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과자들이 나왔다. 두께가 제각각이었다. 모양도 들쭉날쭉했다. 레시피 없이 만든 것이니 당연했다. 루이는 그것을 보다가 —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뭔가를 참는 웃음도 아니고, 상황에 맞추어 꺼낸 웃음도 아니었다. 그냥 나온 것.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갑자기 나온 것.
"이만저만 나쁘지 않네요."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이만저만 나쁘지 않다. 칭찬도 아니고 감탄도 아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루이가 처음으로 맛으로 알아버린 것이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가 작업실 안에 천천히 번졌다. 오래 닫혀 있던 것이 처음으로 향기를 내는 것처럼.
기록: 열 번째 세션
루이의 손이 반죽 안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루이가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까지 루이는 세션에서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말을 정돈하고 감정을 조율하고 표정을 관리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을 내려놓았다. 밀가루 안에 손을 넣으면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몸이 편하고 생각이 조용해지는 시간이었다.
참고 문헌 · 05
⁷ Jung, C. G. (1964). Man and his symbols. Doubleday.
융은 창조적 행위가 무의식을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언어 이전의 소통이다. 말이 닿지 못하는 내면의 층위에 손이 먼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