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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Nov 15. 2023

철학의 기본 3-step 이해 방법

형이상학,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

군대는 남성 화장품의 경연장이다. 땡볕에의 노출, 훈련을 위한 위장크림, 훈련장에서의 온갖 먼지들로 인하여 피부 건강에 관심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썼던 화장품 라인 중에는 Clinique라는 회사의 3-step 스킨케어 라인이 있었는데 스킨→로션→수분크림의 순서대로 발라야 효과가 좋다는 라인업으로 기억을 한다.


앞서 철학의 한 가지 정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구체적인 철학 분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철학도 다른 학문들처럼 그 자체 내부에 여러 전문 분과로 나눠지고 있는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핵심 영역을 따지자면 다음 3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형이상학→인식론→윤리학으로 나아갈수록 조금 더 현실적인 수준의 문제를 다루고, 응용의 성격이 강한 영역이라고 생각을 한다. 따로 발라도 좋고, 셋 중 한 두 개만 발라도 좋지만 스텝을 밟아 3개 모두 사용하면 좋은 화장품처럼, 형이상학부터 시작해서 인식론, 윤리학까지 철학의 기본 3-Step을 간단히 검토해보려고 한다.


먼저 '3-step'인 이유를 이야기하면,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으로 이어지는 이 스텝이 어떤 철학 체계를 이해하는데 설명이 쉬운 논리적 흐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자의적으로 설정한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이해도 가능하고, 3가지 영역 간의 경계가 명확하게 칼로 자르듯 나눠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인지해야 한다. 3가지 영역 각각을 정말 어이없는 수준으로 단순하게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것만 추려본다면 아래와 같다.


1. 형이상학 : 세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2. 인식론 :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가?

3. 윤리학 :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일단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인식한 뒤, 행동하고 살아가는 인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가장 핵심적인 철학 질문들이라고 본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세세한 답을 직접 묻고 사유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특정 시대의, 특정 사상의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에 의지하여 살고 있을 뿐이다.


한 철학 체계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위 3가지 질문에는 답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 사상도 엄연한 하나의 철학 체계로 이해해 볼 수 있다. 3-Step으로 어떻게 나눠지는지 보자.


1. 형이상학 : 신이 존재한다. 이승과 저승의 구분이 나뉜다. 가톨릭은 이승-저승 사이에 연옥도 가정한다. 육체적 죽음 뒤에 부활이 가능하다. 현실은 불완전하고, 천국은 불변하고 완전한 세계이다.


2. 인식론 : 불완전한 감각기관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 이외에 말씀 또는 계시로도 세계를 파악 가능하다고 본다. (잘 아는 것처럼 현대 과학에서 인정하지는 않는 방법이다.) 불완전한 현실이 아닌 천국의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중세를 거쳐 신을 이해하는 주요한 개념적 기반이 된다. '신=이데아'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3. 윤리학 : 이승에서의 선행을 바탕으로 사후에 복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현재 행동의 목표가 현실에만 100% 놓인 것이 아니라, 사후를 고려하여 행동한다.


굉장히 거칠게 나눈 분석이다. 하지만 세계-인식-행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체계 간의 차이를 명확히 알기 위해, 다른 생각도 한번 분석해 보자. 대상은 다음 우리 속담에 담긴 사상이다. 속담에는 한국인의 사유 원형이 일부 녹아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에 담긴 내용도 3개 영역 순서대로 살펴보자.


1. 형이상학 : 이승이라는 단어를 미루어 보면, 반대("저승")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도 현실이 아닌 열반 세계를 "피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기독교처럼 저승이 이승보다 나은 게 아니라, 이승이 낫다고 본다.


2. 인식론 : 불완전한 현실과 완전한 천국(사후)의 구분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여러 요소들 간의 총체적인 사건 영향에 대한 인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실을 초월한 이데아를 추구하는 것보다 현실 여러 요소 간의 관계, 조화 속에 상황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좋은 방법을 강구해 나가려고 한다.


3. 윤리학 : 현재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죽음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현세에서의 입신양명과 발전이 중요하다. 내세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부차적이다. 제사를 통해 조상을 기리는 것도 현실에 복을 가져다주십사 하는 기복 행위이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철학자들은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에 대해 자기들만의 답을 해두었다. 중요한 것은 칸트와 같은 한 명의 철학이 유일한 진리가 아니며, 어느 철학자의 체계를 갖다 댄다고 해도 '진리'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각자 자기의 철학 지평 내에서 살아가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또 체계로서의 철학과 실제 자기가 삶에서 적용하는 철학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3-step 분석이 의미 있는 이유는 철학 논의에 있어 각자의 입장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유효한 질문이 되기 때문이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은 다르다. 따라서 이들 간에 건설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어느 지점에서 차이가 명확한지 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좁혀질 수 있는 지를 먼저 확인해 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로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언어의 사용법만 동일할 뿐 다른 '세계'에 속한 지구인과 외계인의 소통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 '3-step' 순서가 철학과에서 배우거나 철학 교재에 나오는 기초 개념 같은 것은 아니며, 나 스스로의 공부에 도움이 됐던 방식을 한번 재구성해본 것이다. 철학자가 이러한 단계를 의식하고 자신의 철학 체계를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3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철학자나 철학사를 읽으면, 서로 다른 철학 사상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읽기에 편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 기회에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각각에 대해서도 다뤄볼 예정이다. (보통 논리학까지 추가해서 4개의 기본 철학 영역으로 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다.)



Image by terimakasih0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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