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과학철학, 관찰, 실험, 이론 의존성, 귀납, 반증주의
철학 초보인 한 애독자가 과학철학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래와 같이 답을 하려고 글을 써본다. 당연히 물어봐 주신 분은 아무도 안 계신다. 쉽게 쓰는 데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리를 하면서 오류가 많이 발생했을 게 분명하다. 이 글을 읽고 흥미가 생겼다면 참고 문헌을 훑어보길 추천한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최소한 필자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미리 읽고 오시면 좋다. 물론 필수는 아니다. 이 글의 순서나 논지는 다음 책에 크게 빚을 졌다. (그럼에도 책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거나 요약하진 않으려 노력했다.) 글을 읽고 더 읽을거리가 필요하시다면 이 책을 보시면 된다. 철학 교재들이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술술 읽히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생각보다 잘 읽힌다.
* 참고 문헌
앨런 차머스, [과학이란 무엇인가?] (신중섭/이상원 역, 서광사, 2003)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철학이다. 과학도 사회과학이나 다른 영역이 아닌 '자연과학'을 주로 다룬다. 과학 내부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서 외부에서 과학에 대해서 바라본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나, 과학적 지식은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귀납을 이용해 보편적인 법칙을 만드는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다라는 과학 방법론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지금 과학 철학을 처음 접해보는 것은 아니다. 철학을 통해 패러다임이나 과학 방법론에 대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비판적으로 따져볼 수 있게 된다.
통상 과학의 지식은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귀납을 이용해 보편적인 법칙을 만드는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상식적인 문장을 먼저 검토해보려고 한다.
과학 지식이 아예 없던 때를 가정해 보자. 관찰 자체도 이미 특정 지식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유명한 토끼-오리 착시 그림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토끼와 오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순히 시각적으로 본다는 의미에서 관찰은 가능하지만 어떤 개념틀도 없는 상태에서 이 그림이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 알기가 어렵다. 또 오리만 아는 사람에게는 이 그림은 절대 토끼 그림이 될 수 없다. 이미 관찰은 특정 이론이 전제되어 있어야 주어진 현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실험도 마찬가지다. 실험 도구를 만드는 것 자체가 특정 지식을 전제하지 않으면 만들 수도, 또 실험을 통해 도출된 수치나 현상을 해석할 수 조차 없다. 예를 들어 온도계는 엄청 간단한 도구이지만 온도 변화에 따른 수은의 부피 변화, 그리고 눈금의 배열 등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만들 수도, 온도를 읽어낼 수도 없다.
이처럼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과학 지식이 출발한다고 하는데, 태초에 과학 지식이 하나도 없던 때에 어떻게 관찰과 실험에서 출발해서 지식이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하기가 좀 어렵다. 그래도 꾸역꾸역 관찰과 실험을 통해 법칙을 만들고, 유의미한 지식들을 쌓아나가게 되었다고 일단 받아들이고 넘어가 보자.
A라는 백조가 하얗고, B라는 백조가 하얗고, (...) 1000만 번째 백조도 하얗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면 우리는 귀납적으로 '모든 백조는 하얗다'라는 결론을 귀납적으로 도출한다. 그런데 몇 마리의 백조를 봐야 저 법칙을 도출하는데 문제가 없을까? 즉, 100% 참을 보장할까? 귀납적 추론으로는 100% 참임을 보장하지 못한다. 오히려 해당 법칙을 깨뜨리는 데는 '검은 백조' 한 마리만 있으면 된다는 게 골 때리는 일이다.
과학적 지식이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귀납을 이용해 보편적인 법칙을 만드는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다는 명제는 이제 위태위태해 보인다.
혹시나 철학에 관한 중급 이상의 독자라면 "백조"라는 단어 자체에 '백'(하얗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명제가, '백조'의 의미상 논리적으로 참이지 않냐고 따질 수 있다. 그런데 해당 사례는 영미권의 사례로서 "swan"의 번역어이다. 여기에는 하얗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에 위 사례 설명은 유효하다.
관찰이나 실험이 이미 이론의존적이며, 귀납에 의해서 과학 지식이 100% 참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방법론을 과학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고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분명 과학은 잘 작동하고 있는데, 참이 아니고 잠정적인 참 정도로 후퇴를 해야 할까? 과학을 과학이게 하는 방법(귀납)은 불완전해 보이지만, 과학과 비과학을 확실하게(100% 참) 나눌 수 있지 않을까라고 고민한 철학자가 있었다. 칼 포퍼라는 철학자이고, 이들 그룹을 반증주의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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