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패러다임, 과학혁명, 반증주의, 임레 라카토슈, 연구 프로그램
가장 유명한 철학 개념 중 하나지만,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자.
지배적인 과학 이론 체계가 있다. 과학계에서 '정상 과학'(=패러다임)의 지위를 받으며 잘 작동한다. 자잘한 반론이 나와도 곧바로 이론을 버리지 않는다. 반론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기존 이론의 미세 조정을 통해서 정상 과학을 계속 유지해 나간다. 그러다가 기존 체계에 맞지 않는 사례들이나 증거들이 속출하고 결국 위기에 빠지게 된다. 기존 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해 내는 새로운 이론 체계가 등장하고, 기존 체계와 새 체계 간의 경쟁이 시작된다. 치열한 경쟁이 지나고, 새 체계가 힘을 얻게 되어 '정상 과학'의 지위를 새로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과학 혁명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2편에서 반증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계 1. 한번 반증되었다고 바로 과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한계 2. 과학이 진짜 반증주의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는가?
패러다임 이론으로 반증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검토해 보자.
한계 1 검토 : 정상과학(패러다임)은 반증이 나와도 쉽게 포기되지 않는 것을 미루어보아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고 보인다. 실제로 과학은 반증 사례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이론을 바로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기존 이론 체계를 다시 검토하고 수정하여 더 강력한 이론으로 진화해 나간다. 이것이 실제 과학사에 가깝다는 것이고 '패러다임'으로 충분히 이해 가능한 내용이다.
한계 2 검토 : 반증주의는 과학사에서 실제 일어나는 모습이 아니라 이래야만 한다는 당위적인 모습을 제시했다. 반면 패러다임은 실제 과학의 역사적 사실을 잘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가령 대표적으로 천동설(프톨레마이오스)에서 지동설(코페르니쿠스)로의 전환 사례가 그렇다. 지금에 와서야 지동설이 정설이지만 당시에는 천동설이 기존에 먼저 있던 이론이었다. 천동설 당시 점점 반론 사례가 나오더라도 행성 궤도를 덕지덕지 수정해 나가면서까지 천동설을 심화 발전 시켜나간다. 그러다가 점차 위기에 빠지게 되고 결국 경쟁 이론인 지동설이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그렇지만 토마스 쿤의 이론도 한계에 부딪힌다.
토마스 쿤은 과학 혁명에 의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게 되는 기준이나 결정은 과학자 사회의 합의에 의한 것으로 본다. 더 나은 과학, 진보된 과학, 올바른 과학이라고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따로 두지 않는다. 과학은 점차적으로 진보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패러다임의 전환이나 과학 이론의 전개 과정이 과학자 사회에서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면, 합의가 곧 진보를 낳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론 간의 경쟁에서 승리한 이론이 반드시 진보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이미 합의에 의해 도출된 결론이라고 해서 반드시 더 낫거나, 정의롭거나, 진보적이라거나, 올바르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다.)
'과학 혁명'으로 굵직한 이론 체계의 전환에 대한 설명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전체 과학사를 과학 혁명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는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패러다임 전환, 과학 혁명을 설명하기 위해 딱 맞는 사례만 가져다 쓰거나, 또는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도 '패러다임' 개념을 억지로 적용했다는 비판이다.
반증주의뿐만 아니라 패러다임의 한계도 드러났다. 철학(또는 모든 학문?)은 대개 이런 식이다. 주장 A가 제기된다. 곧 한계가 드러나고, 그에 대한 반론 B가 나온다. 하지만 한계가 또다시 드러난다. A와 B를 종합한 이론 C가 다시 나온다. 또 C의 반론이 나온다. (…) 끊임없는 과정이다. 반증주의와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연구 프로그램'을 이야기한 임레 라카토슈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반증 사례가 하나 발견된다고 해서 바로 그 과학 이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과학 이론의 진보가 과학자 사회의 합의에 달린 것이 아니도록 하는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수립하려 했다. 이를 통해 반증주의와 패러다임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논의 과정 모습 그대로, 또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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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에서 계속, 발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