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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Jan 11. 2024

이불킥 극복법

나만 나한테 관심이 있다

연말연시 술자리. 술이 또 들어가고 괜히 분위기를 타서 꼭 안 해도 될 내 맘 속의 이야기들을 한두마디 한다. 그리고는 후회를 한다. 나이도 먹고, 부모가 되고, 직장 생활도 조금은 했다고 생각하는데 (남이 제발 모르기를 바라는) 하는 짓은 20대 학생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아, 자려다 누워서 갑자기 온몸이 쪽팔림에 달아오르더니 스스로 아오! 이불킥이다.


이불을 한두번 차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할 나만의 노하우가 쌓여오긴 했다. 하지만 요즘 며칠간 특히나 나만의 방법을 다시 절실히 찾게 된다.


(만약 범죄를 저지르거나 도덕적인 비난이 가능한 정도라면, 그것은 이미 이불킥 수준이 아닌 법의 처분과 개인적인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이니 논외로 치자.)


이하는 그 비법이다.


1. 1차 원칙은 나만이 나의 지난 말과 행동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그날, 나는 다른 사람이 얼마나 기억나는지? 생각보다 기억나는 게 없고 별게 없다. 내가 개차반으로 혼자 특이한 사람이지 않은 이상, 내가 남을 기억하는 그 수준 정도로 남도 나를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2. 만약 나 혼자 이상했던 게 명백하다면 어떻게 하냐고? 유체이탈을 해버린다. 대한민국-아시아-지구-태양계-우리 은하-전체 우주로 확장시켜 보자. 내가 놓인 이곳이 물리적인 크기로나 우주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얼마나 좁은 곳이고 한순간인지를 상상해 본다. 그나마 마음이 좀 나아진다.


3. 그냥 나는 그 일을 잊어버린 것처럼 뻔뻔한 표정을 짓는다. 어쩔 수 없다. 뭐 별수 있나. 무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술자리에서의 실수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맨 정신에 이야기해 주진 않는다. 만약 진지하게 잘못에 대한 지적이나 조언을 한다면 그냥 들으면 될 일.


그래도 숨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회사 무단결근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도망갈 곳은 없다. 애초부터 그 이상의 잘못이라면 이미 회사에서 출근을 막았을 것이다.


4. 앞으로의 언행과 관계에만 집중한다. 과거를 자꾸 떠올려봐야 나만 피곤하다. 같은 언행을 또 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나의 언행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면 될 뿐.


5. 별일 아닌 것이 이해는 되었는데 그래도 쪽팔린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여전히 이불킥 나온다면? 다행히도 우리의 뇌는 컴퓨터 저장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잊힌다. 정확히 1년 전의 같은 날짜에 내가 했던 행동과 생각이 기억나는가? 내 것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남의 행동과 말은? 다시 말하지만 내가 큰 피해를 주거나 실례를 범한게 아니라면 그냥 아 그랬었나? 하고 말 수준일 것이다.



그래서 이불킥 나올 언행을 뭘 했는지 궁금하시다면? 들어보셔도 진짜 별 것도 아닌 일인데 왜 걱정하냐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다시 1번으로 돌아가서, 애초부터 타인은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좀 맘이 놓인다.


Image by mintchipdesigns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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