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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Apr 11. 2024

갑자기 만나자는 '벙개'를 선호하지 않음

미리 좀 불러 주세요

- 프리츠야, 오늘 점약 있어? 우리 이렇게 몇 명 같이 갈 건데.

- 아, 네! 선약이 있어요.

- 그럼 내가 밥 한번 산거다!


띠용. 또 예민해진다.


우선, 내가 밥 한번 산 거다라는 말에 대하여 살펴보자.


1. 밥을 얻어먹지도 않았는데, 얻어먹은 일이 되어버렸다.


진짜로 한번 얻어먹은 걸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내가 나중에 한번 보은의 의미로 밥을 사자고 해야 하나? 뭐 약속 없어 보이니까 그냥 하는 말인 줄 안다. 그렇지만 빚을 진 거 같아 영 찝찝하다. 잊지 않고 반드시 갚아야 할 것만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순수한 호의로 챙기려고 하는 데서만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2. 나의 선약보다 당신의 제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만약 그냥 하는 말이라면 그냥 지나가면 좋겠다. 안된다고 하면 아? 안 되는구나 하고 끝나면 된다. 굳이 한번 산거라고 덧붙인 것을 좋게 해석해 주면, 나의 거절로 인한 민망함을 벗어나기 위함이려나? 그래,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겠지. 그렇지만 자신의 거절당한 민망함을 가만히 있던 선약 있는 사람에게 전가한 기분이 든다.


다음은, 그냥 벙개 일반에 대한 이야기다.


3. 그럴 거면 미리 나도 같이 시간 조율해서 약속 잡으면 되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되면 말고 식으로 갑자기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니 딱히 내가 엄청 심심한 정도가 아니고서는, 나의 아무리 사소한 계획이라도 포기하면서 까지 갑자기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는 않는다. 나도 할 게 있었고, 내 계획대로 시간을 쓰고 싶으니까. 할 게 없고 약속이 없었더라도, 아무것도 안 하려던 게 내 계획이다.


4. 거절해야 하는 찝찝함도 생겨난다.


갑자기라도 밥을 같이 먹자는 말이 호의인 줄은 안다. 하지만 거절하는 거 자체가 유쾌하지는 않은 경험이긴 하니 찝찝하다. 꼭 호의를 거절한 거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 위의 3처럼 그럴 거면 진작 시간을 조율해 줬으면? 하는 생각도 같이 든다.


5. 1:1 만남은 갑자기 하게 돼도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여럿이 이미 모인 자리에 갑자기 끼는 건 거의 매번 불편하다.


1:1이 괜찮은 이유는 그 사람과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고, 만남에 다른 관계의 맥락이 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몇 명이 뭉친 곳에 내가 갑자기 끼게 되는 경우는 좀 불편하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끼리 약속을 잡은 맥락이 있었고, 대화 흐름이 있었던 상황에서 나는 겉돌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혼밥이 싫다면, 그렇게라도 같이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나는 프로 혼밥러다. 아, 이럴 거면 내가 왜 같이 먹는다고 따라왔지...라고 속으로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벙개에 거의 응하지 않는다.



좋을 땐 모든 게 즐겁고, 나쁠 땐 모든 게 싫은 법이다.



Image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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