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자꾸 흘려요

다도 수업 06. 얼룩져도 괜찮아

by 미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땐 장비에 마음이 먼저 가고, 일이 잘되지 않을 땐 연장 탓을 하는 건 중생의 당연한 순리인가 보다. 내 손에 꼭 맞는 다호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수업 초반부터 뭉글뭉글 올라오더니, 물을 따를 때마다 자꾸 흘리게 되니 또다시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장비라도 좋으면 다도가 좀 잘되려나' 하는 마음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수업에서 선생님께서는 "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다호를 비롯해 전기주전자나 다해와 문향배 등 물을 담는 다구를 다룰 때마다 자꾸 물을 흘리게 된다. 잘해보려 애써도 물의 뜨거움과 무거움, 때로는 속이 보이지 않는 재질 탓에 물양을 가늠하지 못해 다포(茶布)를 적시기 일쑤다.


경험이 쌓이면 좀 나아지기도 하지만 방심하는 찰나 어김없이 물을 흘린다. 그렇다고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따르기만 하는 것은 왠지 형식만 남은 죽은 다도처럼 느껴진다. 선생님의 당부는 단순히 물을 흘리지 말하는 뜻은 아니다. 어떤 다구를 만나든 그 순간 깨어서 행다(行茶)를 하라는 말이다.


뚜껑이 있고 불투명한 재질의 다호 안에 물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눈으로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니, 보이지 않는 것은 눈으로 보지 않아야 알 수 있다. 마음을 모은다고 해야 할까, 마음을 비운다고 해야 할까, 비운 마음을 모은다고 해야 할까. 생각을 비운 마음을, 다호에 둔다.


물이 다호 표면을 타고 흐르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며 따른다. 물이 다호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 흐르는 물을 멈출 때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를 놓치면 물은 다시 줄줄 흘러내리기 십상이다. 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강박으로 다호를 급하게 기울이면 동작이 경박해진다. 일정한 물줄기가 정중앙에 떨어지도록, 그리고 물줄기를 거둔 다호가 기우뚱하지 않고 수평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중심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


차를 한 번, 두 번, 세 번, 우려 마시면서 이제 좀 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는데, 다도는 어느새 끝날 시간이다. 늘 좀 할만하면 끝이 나고야 만다.


다포에 찻물을 흘리면 얼룩이 질세라 얼른 닦아내곤 하지만, 사실은 괜찮다. 물을 좀 흘려도, 다색(茶色)이 조금 배어들어도 괜찮다. 이 서툰 흔적들도 언젠가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될 테니까.





*다포(茶布:다도 자리에 까는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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