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들어요

다도 수업 03. 향을 듣는 잔, 문향배

by 미도


다구茶具 중에는 문향배(聞香杯)라는 흥미로운 다기가 있다. 들을 문聞, 향기 향香, 잔 배杯, 이름 그대로 '향을 듣는 잔'이다. 길고 깊은 모양의 그릇을 문향배로 쓰는데, 향을 간직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나는 백화수복 원컵(180ml) 빈병을 문향배로 쓰고 있다. 문향배로 쓸만한 컵이 없어 두리번거리다 집에 굴러다니던 빈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잡기에 약간 뜨겁긴 해도 그럭저럭 괜찮다. 다도를 배운다고 해서 꼭 값비싼 다기를 갖출 필요는 없다. 이렇게 집에 있는 것을 활용하여 부담 없이 다도를 시작하면 된다.


수업에서는 주로 보이차를 마신다. 다호茶壺에 처음 물을 따르는 것은 찻잎을 씻는 과정으로, 발효되고 오래 보관된 보이차는 특히 이렇게 씻어 불순물을 없애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첫 번째 우린 물은 마시지 않는다. 다호에서 우려진 첫 찻물은 문향배에 담겼다가 곧 퇴수기(退水器)로 따라내고, 문향배에는 향만 남는다. 주인과 손님은 문향배를 돌려가며 향을 맡는다. 아니, 향을 듣는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는 차는 어떤 차일까 마음을 열고 향을 들으면, 차는 자신의 첫인상을 내보이며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를 향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문향배라는 이름은 다도 수업의 목적을 상기시킨다. 다도의 목적은 참선이다. 코로 향을 맡는다는 생각, 눈으로 본다는 생각, 입으로 맛본다는 생각은 중생의 습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면 예술가 가운데는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가 있고,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에고의 습관을 벗어나, 보이지 않는 본질을 감지하고 표현하려 하는 거다.


바닷가에 살았던 관세음보살은 바닷물이 철썩이는 소리를 듣다가 깨달았다고 한다. 문향배는 다도의 한 자리에 서서 수행자에게 속삭인다.


"차향으로 너의 본성을 보라"


어느 날 나와 도반들은 알아차릴지도 모를 일이다.


쪼르륵 흐르는 찻물소리에 선禪의 향이 나는 것을

깊게 풍기는 차향에 선禪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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