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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Jul 19. 2019

오늘은 어린이날

2017년 여름 일기

어린이를 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마냥 귀여울 수도 영악할 수도 없고 반항하기엔 부족하다. "엄마 나는 이 구름 내복이 제일 좋아, 바람이 불고 있잖아?"라는 기똥찬 말을 해 감동을 주던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어린이에 이르면 "어린이날에는 일단, 라면을 먹고 싶다"는 거만한 태도를 취한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거리에서 많은 어린이를 보았다. 웃는 어린이, 광광 우는 어린이, 짜증내는 어린이, 무표정한 어린이. 아직 어린이라기엔 모자란 어린이까지. 이 아이들이 오늘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기를 바라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겠지. 십대(초등학교 3학년)가 되어서야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나는 사실 어린이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어린이날 부모와 함께 하루를 온전히 보내야 한다는 어색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린이날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계획을 세운 부모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순간이 추억이 될 수는 없다는 진리 말이다.  


나, 그리고 아들이 기억하는 (아들) 초등학교 때의 인상적인 기억 중 하나는, 둘이 무작정 서울역에 가서 부산에 다녀온 날의 기억이다. 11월 어느 날이었는데 아마 나는 과도한 야근으로 대체 휴가를 받았던 듯 싶다. 아직 어렸던 아들은 엄마가 회사를 안가니, 자신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케이, 우리는 서울역으로 향했고, 떠났다. 그때가 처음 부산에서 지스타-게임쇼가 열린 해였는데, 게임에 눈 뜨던 어린이는 부산역 포스터를 보자마자 그곳에 가고 싶다고 했고, 엄청난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게임 코스프레를 한 누나들에게 반했을지도. 아무튼 비슷비슷하게 아들과 나의 기억 중에는 어린이날은 없다. 그곳엔 엄마로서 의무감의 자취만 남아 있다. 


그나저나 이제 노인 인구가 어린이보다 많다는데, 노인의 날을 공휴일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실버 놀이공원에도 가고 말이다. 물론 엄마아빠 대신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필요하겠지만. 명찰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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