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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Jul 04. 2020

고3의 이성교제

짐짓 아닌 척 하지만 자녀의 연애는 부모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나와 남편은 각자의 일에 정신이 없어 아들의 이성교제를 크게 살피지는 않았으나 사랑은 드러나더라. 짝사랑 전문이었던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 후 연애를 시작했다.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내가 연애하게 된 걸 엄마 아빠에게 말해야 하는 걸까?"

"음…. 글쎄. 그런데 사실 우리는 너의 사생활에는 관심이 없단다. 성적에만 관심 있을 뿐."


대부분의 엄마들은 고등학교 연애를 반대한다. 이별하면 입시(성적)에 영향 줄까 봐. 1순위가 연애하지 않기, 2순위가 내 자녀보다 공부 잘하는 상대 만나기란다. 공부하라는 말도 사생활이라 조심하는 부모 자식 사이라 연애는 더더욱 모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들은 말이 많다. 관심이 집중되니 그 대상에 대해 떠드는 시간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집에서 자주 놀았다.


희한하게도 아들의 여자 친구는 집에 어른이 없으면 오지 않는다. 아들의 행복(즐거운 교제활동)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친구가 온다니 뭔가를 챙겨주고도 싶었는데 눈에 띄게 긴장하는 여자 친구, 덩달아 좌불안석인 아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나와 남편은 낯을 가리는 편이라 여자 친구(=낯선 자)가 오면 방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도 방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 공간에 있지만 인사만 나눌 뿐. 우리도 왜 집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아들의 여자 친구는 성적이 우수한 편인데, 한 번은 학교 엄마들 모임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A가 B(=아들)와 사귄대요!"

"네? A 너무너무 괜찮은 아이인데, 그리고 걔가 완전 평강공주 스타일이에요. 진짜 B 엄마 부럽네요."


아들이 바보 온달에 가깝기는 하다. 농사를 지으며 중학교를 보내고 학력은 배우질 못해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니. 그저 2순위라 다행이라고 얼버무렸다. 아들이 바보인 것보다 여자 친구가 평강공주인 게 거슬렸다. 이 시대의 여성은 평강공주를 자처하지 않는다. 공부도 잘하고 야망도 있는 아들의 여자 친구는 남친의 공부에 신경 쓰지 않는다. 두 사람은 영감과 영향을 주고받을 뿐이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도 필요하다는 것, 밤에도 달리기를 하며 체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등등을 아들은 배운다. 최선을 다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불안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여자 친구도 배운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고1에 시작한 연애를 고3에도 이어가는 중이다.  


고3이 될 무렵 우리 부부는 우려와 놀림을 담아 이런 말을 전하곤 했다.

"이제 곧 A가 쪽지 보내는 거 아니야? 우리 대학 가서 만나, 이렇게 적은 쪽지"


아들은 웃었고 우리는 역시 태평하군 생각했다. 둘 중 누구라도 대학인이 되면 본격 신분제에 탑승하게 될 것이다. 그때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결과가 어떻게 되든 지금의  관계가 두 사람을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시켜주길 바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나에게도 오겠지. 아들이 수학의 정석을 푸는 대신에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읽어 다행이라고 여길 순간이. (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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