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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동네] #11 윤공단

by 온더트래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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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하구 다대동

-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항역 –> 도보 10분


사하구 다대동의 다대포항역엔 병원과 은행, 각종 식당 등이 모여 있다. 북적이는 이곳에서 바다 쪽으로 걸어 나가면 어느 동네 #2에서 소개했던 낫개 방파제가 나온다. 도심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만 그 분위기는 완연히 다른, 나는 그런 곳을 좋아한다. 아주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일상을 여행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찾아간 윤공단 역시 그러한 곳이다.

다대포항역 3번 출구로 나와 약 10분가량 걷다보면 왼편에 홍살문이 보인다. 그 뒤를 나오면 긴 계단이 보이는데, 이 곳에 윤공단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란히 서있다. 시원한 겨울임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긴 계단을 하나 둘 올라선다.


계단의 중턱 즈음에 도착하면 공터와 그 뒤편에 있는 비석군을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묘비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옛 사하 지역에 큰 혜택을 베푼 인물들을 기리는 비석들이다. 원래 도로변에 있었으나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이곳에 모아 그들을 기리고 있다. 설명을 읽고 다시 보니 비석이 제각각 다른 모양인 게 이해가 된다. 제각기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아오고 있던 비석들이었으니 말이다.


정상에 오르니 양옆으로 나무들이 뻗어있는 길이 나오고 윤공단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다대진을 지키다 순절한 윤흥신과 군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단. 다대진을 지킨 그들의 숭고한 죽음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1592년 4월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그들은 1761년에 관련 문헌이 입수되면서 그들의 죽음에 세상에 알려진다. 그리고 그 후 1841년 순절비가 세워진다. 그들의 싸움이 후대에 기록되기 위함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그 시간이 참 길었으리라. 그들의 귀한 죽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넓은 터를 돌아보다, 윤공단을 가만히 바라본다.


시간에는 힘이 있다. 오랜 시간을 넘어 지금의 나에게 닿은 윤공단은 평소와는 다른 시선과 평소와는 다른 기분을 가져온다. 그것은 이 비석이 담고 있는 의미와 쌓여온 시간의 무게 탓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밑쪽에 정공단이라는 곳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지나다니면서 단 한 번도 눈길 준 적 없던 정공단을 처음 찾은 것은 2013년 봄 무렵이었다. 대학교 교양 과제를 위해서였다. 따뜻한 날씨와 햇볕이 아주 좋았던 날이었는데,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정말 시간이 멈춘 듯 가만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날이 추운 겨울날 찾은 윤공단은 사방이 막힌 정공단과는 달리 공간이 열려있고 사람 사는 곳과 맞닿아 있다. 내 기억 속 남을 윤공단은 조금 쌀쌀하지만 외롭진 않은 곳으로 기억되겠구나 라는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을, 마음이 재정비되는,

오늘의 어느 동네는 윤공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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